창작극장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11

초하류 2018. 3. 14. 16:13

11. 나의 기도가 어디엔가 가닿기를(2011.09.05 03:30)


새벽 3시가 가까워지자 마눌님의 진통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통주사의 효과가 끝나기도 했고 조이를 만날 시간도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진을 하신 의사선생님이 곧 출산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병실은 본격적인 출산 모드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어두운 엄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날 아기가 놀라지 않게 병실 조명은 낮추고 슬리퍼 끌고 다니면서 시시껄렁한 연예계 이야기를 나누던 간호사 분들도 눈빛이 변했습니다.


 


마눌님은 제 손을 꼭 잡고 연습했던 호흡법을 리듬에 맞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히히후.” 옆에서 따라 호홉법을 하고는 있었지만 제 손을 잡은 마눌님의 손은 진통이 올 때마다 깜짝 놀란 듯이 제 손을 더 세게 움켜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흐트러지는 호흡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다가왔습니다.


 


“엄마. 지금부터 이렇게 호흡 흐트러지면 안돼요. 엄마가 호흡을 잘해야 아기한테 산소가 잘 전달되고 순산할 수 있다는 거 알죠? 자, 더 깊게 들이쉬고.”


 


이미 간호사는 아까 그 간호사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유격장에서 PT와 각종 얼차려로 몸이 천근 같은 훈련병들을 다그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코스를 완수하게 하는 조교 같다고나 할까요?


 


아기 이야기가 나오자 마눌님은 훨씬 더 집중해서 호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이 가까워 올수록 제 손을 꽉 잡는 간격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더 강해졌지만 그때만 멈칫할 뿐 마눌님의 호흡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미간을 찡그리고 어금니를 사리물고 코 평수가 넓어지건 눈가에 주름이 잡히건 제 손을 꼭 잡고 마눌님은 이 호흡 리듬에 지구의 운명이 걸린 것 처럼 집중에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3시 30분이 되자 마눌님의 산통은 극에 달한 듯했습니다.


 


“아악!  선생님, 저 못하겠어요. 아악! 저, 그냥 수술할게요. 아, 너무 아파요!”


 


극심한 산통에 마눌님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전 그냥 수술을 할 걸, 괜히 이 고생을 시켰나 하는 미안한 마음에 간호사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엄마. 지금 이거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소리 지르면 호흡이 얕아져서 애한테 안 좋은 거 몰라요? 애한테 좋은 출산하겠다고 르와이예 분만법 한 거잖아. 그런데 이렇게 소리 지르고 하면 애한테 지금 틀어 놓은 음악 소리가 들리겠어? 엄마, 정신 차려. 자, 호흡 깊게 하고 . 정신 안 차려?!”


 


모성이란, 엄마란 얼마나 강한 걸까요? 거의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소리를 지르던 마눌님은 아기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이성이 돌아온 듯했습니다. 잠시 간호사의 리드에 따라 호흡을 하던 마눌님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간호사는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빠는 이제 나가세요.”


“안돼. 안돼! 아악!”


 


제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마눌님. 저를 쳐다보며 빨리 나가라고 소리 지르는 간호사. 마눌님 허리 아래로 가림막을 설치 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물에 빠질 때 같았습니다. 모든 소리가 꾸르륵꾸르륵 하는 거품 소리 뒤에 들리고 눈앞은 일렁거리는 물거품으로 가득하고 간헐적으로 보이는 하늘과 코와 입으로 마구 들어오는 물로 막히는 숨. 힘들어하는 마눌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일도 없는 상황, 가지 말라고 도리질치는 마눌님의 눈빛.


 


결국 마눌님의 손을 놓고 분만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디든 붙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설렁 설렁 다녔던 절, 결혼하고 나서 마눌님의 성화에 따라가서 꾸벅꾸벅 졸기만 했던 교회, 부처님인지 예수님인지 하느님인지 누구든 저를 초월하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빌었습니다.


 


마눌님도 아이도 아무 일 없기만 해달라고. 임신 당뇨로 마눌님이 힘들어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