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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장2004.02.25 12:25
덜그럭 거리는 방탄모가 시야를 자꾸 가리지 않더라도 흘러내린 땀으로 시야는 이미 충분히

흐려지고 있었다.



벌써 13일째 여단 신기록 연짱 완전군장을 돌고 있지만 아무래도 덜컬거리는 방탄모와 익숙해 지기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직도 나를 이 지경에 빠트린 군 지위 검열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에서 멤돌며 나를 괴롭혔다.



제 54통신 대대 군장비 지휘검열을 실시하겠다.



우렁찬 스피커 소리가 연병장에 메아리 쳐졌다. 저쪽 끝부터 검열관들이 번쩍이는 눈으로 이제껏



쓸고 닦은 몇십년짜리 장비들을 샀샀이 훌터 보며 오고 있었다.



목이 바짝 바짝 타드는게 이틀전 기제실에서 얼차려는 장난도 아니었다.



"이 새끼들 빠져 가지고 꼴랑 3박4일 짜리 훈련에 베터리를 하나 잃어 버리면 아주 BCT라도 뛸려면 무전기 몇세트는 해먹겠구나 어 똑바로 안해 요령 피우지"



깍지 낀 손으로 받치고 있기엔 내가 지나치게 무겁다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줄어 드는 대신 팔 근육이 저려 오겠지



"야 정훈이 너 내일 군장비검열 전에 알아서 숫자 맞춰놔 알았어"



왕고 김병장이 나가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몇번을 거쳐서야 기재실을 나올 수 있었다.



"아 씨발 그놈에 빠때리 도대체 어디 간거야.. 그것만 있으면 정말 행복할텐데.."



내일로 다가온 군장비 지휘검열에 깨질 생각을 하니까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이러다간 다음주 휴가

는 고사하고 영창이나 안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니 저녁시간이 다 돼서도 밥맛까지 없었다.



저녁시간 군화를 닦다 말고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던 내 어깨를 누군가가 툭툭 건드렸다.



"일병 김태식"



"야 조용히해.. 나 좀보자"



한달 위 서일병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눈을 찡긋 거리며 손짓을 했다.



"야 정말 골치 아프겠다. 어떡하냐.."



"글쎄 말입니다. 정말 그 빠떼리만 나오면 정말 행복할꺼 같습니다."



그러자 서일병은 갑자기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을 쓰윽 지우더니 나를 째려 보았다.



"야 넌 그 베터리가 있을때 행복했냐? 노상 군생활 지옥 같다고 징징 대는 놈이!"



서일병의 그 말이 내 머리를 쾅하고 두드려 왔다. 그래 베터리가 다시 돌아 온다고 내가 행복해

지는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 졌다.



까짓거 최악의 사태가 영창일 뿐이고 노력한다고 해결 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닌바에는 그냥

걱정이나 말아야 할꺼 아닌가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본 군지휘검열은 빠져 나갈틈 없는 저인망에 걸린 얼치기 물고기 처럼 나를 안

절부절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 옆을 지나 무전기의 충전기를 헤아리는 눈초리에 내가 살아오면서 첨 느낄만큼 커다란 진땀이

내 등뒤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무전기 베터리에 눈이 갈 무럽 갑지기 검열관 주머니에선 귀에 익지만 전혀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느다란 얘기 목소리로 "전화 받으세요"란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정열 해 놓은 베터리를 향한 검열관의 눈이 거두어 지면서 전화 통화에 집중하기 시작

했다.



야 이런 재수가 어디 있나...



이윽고 5분 넘게 통화를 하던 검열관은 베터리와 무전기를 지나 박스카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됐건 무처님이 됐건.. 이 위기를 넘기게 해 주신 은혜 죽을때 까지 잊지 않

겠습니다.



내가 이런 말도 안돼는 기도를 아무대나 드리고 있는 동안 검열관은 내 뒤 통신 Box Car 쪽으로 이

동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검열관은 와이프와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전화 통화가 자꾸만 거칠어져 가고

있었다.



이윽고 Box Car에 도착한 검열관은 그 짜증나는 통화의 책임을 Box Car에 풀기위해 차에 장착되어

있던 통신 Box를 내려 놓으라는 얼토 당토 않은 주문을 내려 버렸다.



그리고 똥 씹은 표정으로 특장차를 부르는 통신대대장 얼굴 뒤로 울려 퍼지는 고함 소리



"야 씨발 54연대는 무전기 베터리를 Box Car 아래다 보관하나?"



그 한 마디는 나를 54연대 최장기 완전군장 구보맨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군장비 검열 무사 통과와 그렇게 찾아 다니던 베터리의 등장이 겹침으로써 나

는 두배의 즐거움이 아니라 몇십배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수 밖에 없었다.



뚜뚜 뚜뚜뚜... 오늘도 점심 시간 나팔은 어김없이 불어 오고 13일째 완전 군장의 오전은 그렇게 저

물어 가고 있었다.



행운은 언제까지 행운일까
Posted by 초하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