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류's Story

아빠, 엄마가 된다는 것

초하류 2011. 9. 7. 11:08
예정일을 이틀 넘긴 지난 일요일 별 다른 징후가 없어서 뚝섬에 그늘막을 치고 선선한 가을 바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시켜먹은 치킨이 너무 맛이 없어서 투덜 거리고 있는데 마눌님이 조금 기미가 보인다고 싸인을 보냅니다.

그리곤 핸드폰을 켜서 숫자 0을 입력하고 발신을 하더군요 뭐하냐고 물어봤더니 진통 간격을 표시 하는거랍니다. 스마트폰도 아닌데 주인이 스마트 하니까 산통 시간 기록 기능이 생겨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스마트폰 보다 훨씬 간편하게 조작 되는거 같더군요.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는데 마눌님의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 가면 가진통이라서 집으로 돌려 보낸다는데 우리도 그러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우리 짐 싸 놓은거 간편하게 챙겨서 가지고 가"

새로산 기저귀 가방에 이것 저것 챙겨 놓은 물품들중에 제대혈 키트와 카메라 아이패드 등 몇가지만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진 결과는 아직 많이 기다리셔야 겠다는 예상했던 대답.. 다시 주섬 주섬 준비를 해서 나가려는데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고 하시더니 바로 입원을 권유 하시더군요. 그때 시간이 11시 54분

조금은 썰렁한 가족분만실에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마눌님에게 링거가 장착되고 무통분만을 위한 투약기가 설치 되고 나니 이제 진짜 시작인가 싶더군요.

2시가 가까워지자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마눌님이 바닦을 기기 시작했고 무통 약물이 투여되자 통증이 많이 완화 되는듯 했습니다.

3시가 되자 자궁문이 10cm 가량 열렸고 드디어 본 게임 돌입. 산모교실에서 배운 호흡법을 시전 하면서 힘주기를 반복했습니다. 간호사들은 연신 다 돼간다~~ 움직이면 애기가 다친다, 르바이에 분만 하면서 이렇게 소리 지르면 어떡하냐.. 무섭게 다그치더군요..

간호사들의 모습은 흡사 유격장의 조교같았습니다. 눈 감으면 더 어지럽다 눈떠라. 호흡해라. 정신 차려라 다 할 수있다. 그러더니 결국 20분 남겨 놓고 저는 가족분만실에서 쫒겨 났습니다. 간호사들의 파이팅 소리와 마눌님의 신음 소리 그 와중에도 조이야(조이는 아이 태명) 미안해를 되네이는 마눌님의 목소리를 문 밖에서 듣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내려 오시고 저도 다시 들어갔습니다.

마눌님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 기운을 전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응애~ 소리가 나더니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4시 54분 여아출생이라고 이야기 하시고는 르바이에 분만법 배울때 들었던것 처럼 엄마 위에서 잠시 누워 있던 아기의 탯줄을 잘랐습니다.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따뜻한 물에 아이를 넣고 살살 목욕을 시키는데 너무 조그마하고 말랑 거려서 손대기가 무서울 정도더군요. 그런데 역시 르바이에 분만법 덕분인지 금방 울음도 그치고 눈을 떠서 주변을 살피는데 참 경이롭더군요. 이런 아이가 금방까지 엄마 뱃속에 있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구요

어쨌거나 노산에도 불구하고 5시간 만에 나름 순산한 마눌님, 그리고 태어나느라 고생한 조이 도와주신 간호사 선생님들 및 의사 선생님들 모두의 수고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제 이쁜 딸을 가진 아빠가 되었으니 모든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할꺼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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