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12

초하류 2018. 3. 14. 16:14

12. 식욕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양수검사를 하고 정상 판정을 받았지만 갈 때마다 수술 이야기를 하는 의사선생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마눌님은 산후조리원을 살피던 중 새로운 병원을 찾았습니다. 인천에서 인기 있던 산부인과 의사 분들이 독립해서 차린 산부인과가 있는 건물에 산부인과와 소아과와 연계한 산후조리원이 얼마 전에 오픈 한 것을 발견했거든요.


 


아무래도 새로 개설한 병원이기도 하고 젊은 의사 분들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도 훨씬 부드럽게 하고 출산에 대해서도 당연히 자연분만을 먼저 시도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 바로 위층에 산후조리원이 있어 조리할 때에도 산부인과나 소아과 의사선생님들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오픈 기념으로 할인을 받아서 산후조리원을 예약하면서 내친김에 병원도 옮겼습니다.


 


그런데 출산 전 검사를 하면서 마눌님의 검사 결과가 조금 나쁘게 나왔습니다.


 


“산모님, 임신 당뇨 수치가 좀 높게 나왔어요. 임신 당뇨는 거대아를 출산할 수도 있고요. 산모님도 출산 후에도 당뇨병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세요. 다음 주에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시죠.”


 


“아, 이제 맛있는 팥빙수도 다 먹었구나.” 마눌님은 더부룩한 속이 좀 시원해진다며 즐겨 먹던 팥빙수도 끊고 음식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입덧이 끝나고는 부쩍 식욕이 좋아져서 늘어난 식사량을 줄이고 간식도 줄이고 혈당에 나쁘다는 것은 다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도 했죠. 그리고 검사 당일이 되었습니다. 전날부터 금식을 했던 마눌님은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했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혈당을 올리는 이상한 하얀색 물약을 마시고 한 시간 후에 다시 검사를 해야 했습니다. 맛이 이상한지 마실 때도 헛구역질을 하며 힘들게 약을 마시던 마눌님은 다 마시고 나와 제 손을 잡고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래, 바람도 좀 쐬고 바깥이 좋지. 자기야, 여기 좀 앉아 있어요.”


“아냐. 검사 전에 많이 걸어야 좋대... 나 좀 걸을게...”


 


전날 아무것도 먹지 못한 마눌님은 무거워진 배를 손으로 보듬고 토요일 이른 시간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이야,  엄마가 조이를 늦게 가져서 엄마 몸이 좀 좋질 않네... 조이가 엄마 이해하고 좀 도와줘. 사랑해.”


 


뜨거운 7월의 태양은 조금씩 더 뜨거워져 가는데 마눌님은 10분 동안 걷고 2~3분을 벤치에서 숨을 고르고는 ‘영차’ 다시 일어나서 천천히 걷기를 반복했습니다.


 


뭐라도 농담을 하거나 나 혼자 모른 척 앉아 있거나 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하고 퉁퉁 부어서 이젠 예전 신발이 발에 들어가지 않아 새로 산 샌들을 신고, 자꾸만 따가워지는 햇볕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흥얼흥얼 노래를 하거나 조이에게 말을 건네며 걷고 또 걷는 마눌님 옆에서 느꼈습니다.


 


아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데 엄마의 사랑은 얼마나 많이 필요한 걸까. 아빠도 엄마 못지않아,  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마눌님의 손을 잡고 옆을 걷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얼마 없었습니다. 같이 노래를 흥얼거려주고, 조이에게 말을 걸 때 맞장구를 쳐주고, 가지고 온 부채로 걷다 쉬는 마눌님의 땀을 식혀 주는 정도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임신 당뇨 검사가 끝날 때까지 이제껏 건성으로 가서 꾸벅꾸벅 졸던 교회에서 이번엔 진지하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눌님도 아이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기쁘게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지금까지 제가 좀 싸가지 없었더라도 하늘같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고 마눌님과 조이를 지켜주시기를.


 


제 엉터리 같은 기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임신 당뇨 검사는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마눌님은 출산 전까지 팥빙수도 크리스피 도넛도 입에 대지 않고 음식을 조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