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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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류 2003. 12. 20. 12:23
그날 저녁은 유난히도 햇살이 따가웠다.



아이는 집앞 그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대나무를 자그마하고 날이 무딘

손칼로 다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이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여전히 날이
무딘 손칼로 대나무를 다듬느라 낑낑대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끔씩 다듬던 대나무를 들어선 한쪽눈을 지그시 감고 수평을 살피는 폼이

제법 엄숙한 맛까지 느끼게 했다.



그렇게 30여분을 낑낑대던 아이는 이윽고 꿈쩍도 하지 않을 것같던 엉덩이-까만

반바지에 싸여진-를 땅에서 때어 가지고 대나무를 들어수평을 살피더니

입가에 만족한 웃음을 살짝 흘렸다.



그리곤 조심스레 대나무를 벽에 기대어 놓고 시선을 마당 구석 창고로 돌렸다.
찌그러진 양철문 사이로 여러 가지 잡다한 연장이 얽혀있는 모습이 시선에
잡혔다. 아이는 창고 쪽으로 서서히 다가 섰다.



삐그덕, 양철문이 자그마한 신음을 토하며 부끄러운 속을 들어내 보였다.

아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창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잔뜩 얽힌

실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아이는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실꾸러미를 보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대
나무를 다듬던 자리로 돌아가 털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리곤 침착하게 엉망으로 엉켜있는 실꾸러미들 속으로 그 자그마한 손을 뻗어

하나씩 이리 저리 뒤져서 실꾸러미의 처음을 찾기 시작했다.



한 10여분쯤 지났을까?


마침내 아이의 한길이 조금 넘을까 싶은 실이 풀려 나왔다. 아이는 실을
대나무 옆에 늘어 뜨리고 한참 고개를 갸웃 거리다 마침내 결심 했다는
듯이 대나무의 끝에다 실을 비끌어 매었다.



몇번 당겨서 팽팽한 것을 확인한 아이는 이윽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것만 같던

바지 주머니에서 신문지에 꽁꽁 쌓인 무언가를 끄집어 내었다.



순식간에 입었던 신문지를 벗기고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그것은

낚시바늘-하얗고 반짝반짝하며 미늘이 날카로운-이었다.



여지껏 소년이 준비한 도구에비해 지나치게 차이가 나서 이질감 마저 느끼게 하는.

정성껏 줄 끝에 낚시바늘을 메단 아이는 준비된 무기를 집 뒤뜰로 가지고 가서는

굴뚝-나지막하고 흙과 돌로 투박하게 쌓아올려진-옆에 조심스레 기대어 놓고

다시 한번 낚시대를 찬찬히 살피고는 재빨리 호미를 가지고 거름더미를

파해치기 시작했다.



호미로 한번 찍어 넘길 때 마다 벌겋게 살이 오른 지렁이들이 꿈틀대며

땅속으로 도망쳐 내달렸다.



하지만 아이의 집요한 작은 손아귀를 벗어날수는 없었다.



작은 요쿠루트통에 가득차게 지렁이를 사냥한 아이는 벌떡 일어서서

집뒤편 낚시대를 챙겨들고 결전지로 향했다.



아이는 이제까지 자신이 실패한 원인을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미늘 그것이 문제였다. 닭장을 짜고 남은 철사로는 아무리 정교하게 구부려도

낚시바늘의 생명인 미늘은 흉내 낼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미늘이란게 있는지도 몰랐다.



어저께 도회지에서 온 아저씨-번쩍 번쩍하는 멋진 낚시대를 몇 개나 가지고 있고

아이가 이름을 알수조차 없는 많은 장비와 미끼를 사용하던-의 친절이 아니었더라
면말이다.



그 아저씨는 옆에서 자기 손으로 만든 낚시대로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에게

친절하게도 낚시바늘에 있어서 미늘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중요한 미늘이 달린 반짝반짝하는 새 낚시바늘을 아이에게

하나 선뜻 건내주는 엄청난 호의를 배풀기 까지 했다.



아이는 이제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오늘은 기필코 그놈을
잡으리라 마음 먹었다. 아이가 만든 양철통 어항속에 있는 엄지 손가락 만한

피라미들고 차원이 다른 그놈.



온몸을 울긋불긋한 산란색으로 치장하고 느릿하게 다가와 아이의 마음만 졸이게

하다가 늘상 미끼만 떼먹고 그 미끈한 몸을 맵시있게 수면위로 한번 솟구치고는

푸르스름하게 자신의 깊이를 알리고 있는 江心으로 모습을 감취버리는.



이제는 미끼만 떼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늘로 중무장된 신형 낚시바늘이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세 결전지에 도착했다. 아이는 자리를 잡고 요크
르트통속에 자그마한 손가락을 뻗어 지렁이를 집어냈다.



미끈미끈한 몸통을 사방으로 휘돌리는 지렁이를 아이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땅바닦에 패대기를 쳤다.



축 늘어진 지렁이를 반으로 때어가지고 낚시 바늘에 정성들여끼웠다.



아이의 발 아래 강물은 너무 맑아서 바닦의 모래를 헤아릴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맑은 물속에 떠있는 물고기들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퐁' 수면에작은 동심원들을 그리며 낚시바늘이 물속에 잠기자 이내 피라미들이

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낚시바늘을 들어 피라미들을 쫓아 버렸다. 그러기를 몇차레

드디어 놈이 저 깊은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은 지금 막 산허리에 걸린 태양이 토해낸 가쁜 숨 때문에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오렌지 색을 받은 놈의 등은 찬란한 무지개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이는 낚시대를 붙잡은 손을 하나씩 때어가지고 엉덩이에 대고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한번 힘을 주어 낚시대를 움켜 쥐고 침착하게 낚시대를 움직여

미끼를 놈의 머리위로 옮겼다.



오랜 경험으로 아이는 물고기의 코앞에 미끼를 들이대면 도망가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은 짐짓 아이의 미끼를 못본척 무시했다. 딴청을 피우며 강바닦의 모래를 쪼았다.



하지만 놈의인내심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놈은 서서히 미끼 쪽으로 움직여
갔다.



미끼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원의 크기를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래 좁혀왔다.



아이는 점점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놈이 미끼를 덥석물기만을 기다렸다.



점점 좁아지던 원이 드디어 점으로 바뀌는 순간



아이는재빨리 낚시대를 낚아 챘다. 묵직, 낚시대를 타고 전해지는 놈의 무게.



아이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조심스레 끌어올렸다. 놈은 아직도 바둥거리며

도망치려 했지만 새로운 비밀무기인 미늘의 위력에 눌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보였다.



'프드덕'



마침내 강물 밖으로 놈이 끌어 올려졌다.



아이는 성취감으로 눈을 반짝아며 놈을 잡고 늘 그랬듯이 바늘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바늘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미늘이 놈의 윗입술에 단단히 박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일순간 아이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살며시 비틀어 보았지만 바늘은 요지부동이었고 바늘을 움직일때마다

그놈은 비늘을 떨구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댔다.



물론 바늘이 밖힌 곳의 살점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손에 비늘이 묻자 초조해진 아이는 성급한 마음으로 바늘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였다.

그러자 바늘은 그놈의 윗입술을 째고 나왔다.



그놈은 벌써 몸에 힘이빠져 나가고 있었다. 당황한 아이가 그 놈을 급히 물에 넣어 보았다.



그 놈은몸을 옆으로 누이고 강물을 따라 떠내려갔다. 가끔씩 온몸을 퍼덕여 아직 살아있음을 알릴 뿐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놈은 비스듬히 기울어진 몸을바로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몇번이고 비틀었지만 한번 기울어진 몸을 바로세우기란 에당초 무리인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그놈을 향해 서서히 발을 옮겼다. 아이는 저 앞에서 비틀거리며 떠내려가는 놈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갑자기 눈앞의 사물이 확 흐려왔다. 아이는 서서히 걸음을 빨리하다가 마침내는 첨벙첨벙 물을 사방으로 뿌리며 뛰었지만 그 놈과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꼬마의 걸음으로 물살에 쓸려 내려가는 놈을 쫓기란 애초에 무리였
는지 모른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첨벙거리며 놈을 쫓았다. 그러다, 수면이 갑자기 아이의 목까지 '쑥' 차올라왔다



아이는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다. 천천히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모래로된 강바닦
은 아이의 시도를 바웃기라도 하는 듯 쑥 내려 앉아 버렸다.



'헉'



외마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눈앞은 온통 물거품이었다.



그리고............



무심한 강물이 아이를 삼키는데는 2분도 긴 시간이었다.



이윽고 강물은 요란하던 수면을 지우고 시치미를 뚝 뗀체 다시 조용히-처음부터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저위 결전지에 남은건 자그만 낚시대와 요쿠르트통에 담긴 지렁이들 뿐이었다.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