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잡담

음악 노동자로서의 서태지

초하류 2015. 9. 18. 14:59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서태지라는 이름은 여러가지로 상징성을 가진다. 그의 전성기 시절엔 문화와 대통령이라는 이질적인 두개의 단어를 합한 말로 대표 되기도 했다. 혁신이나 새로움이라는 이미지를 대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표절과 백워드매스킹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악마주의 같은 말로 매도 되기도 했다.


서태지의 음악적인 성취는 분명히 가볍게 여길만한것이 아니다.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명반을 꼽을때면 그의 앨범이 몇장씩 포함 되었다. 그에 반해 표절이나 단순히 최신 음악을 수입했다고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서태지를 단순히 대중음악을 하는 예술가로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하지가 않다.


서태지는 음악을 하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음악을 하는 노동자로서 자신이 받을 댓가에 대해 기존의 평가를 받아 들이지 않고 이른바 세계적인 기준을 요구했고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서태지 이전의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는 레이블의 시대였고 음악가는 레이블에 속한 직원일 뿐이었다.(그게 제아무리 유명한 조용필이거나 노동운동가를 부르는 안치환이거나) 자신이 만든 음악에 대한 저작권은 레이블에 속했고 음원이나 자신의 활동에 대한 수입도 공정하게 분배 되지 않았다. 물론 레이블에 소속되지 않고 활동하는 가수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말그대로 너무나 소수이고 영향력이 적어 전체 시스템을 변화 시킬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창작을 위한 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방송국 PD가 부르면 나가야 했고 음원에 대한 수입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계를 위해 야간업소로 통칭되는 행사를 뛰어야 했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도입부의 신디사이저는 그당시로는 차고 넘치는 최신음악이었고 부활 김태원의 그로울링은 세계적으로도 최초에 가까울만큼 전위적이었지만 그들은 단지 최신음악을 하거나 독창적인 음악을 하는 예술가였다. 하지만 서태지는 모든것이 달랐다. 그는 단순히 최신음악을 하는 대중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당시 관행에 따른 음악활동 수입의 배분이 문제가 되자 요요기획이라는 독자적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자신이 음악에 관계된 모든것들을 직접 컨트롤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음반제작과 수입이라는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음반을 발매하고 다음 음반을 제작하기 까지 활동을 쉬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활동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포함되었다.


서태지의 이런 행보 이후 방송국과 가수의 수직적 관계, 음반사와 가수의 수직적 관계가 모두 허물어졌다. 고등학생이었던 서태지가 그당시 국내 최고 밴드였던 시나위의 베이시스트가 된것은 그의 음악적인 역량이라면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시스템안에서는 철저하게 을일수 밖에 없었던 대중음악가들을 시스템과 대등한 관계로 만든것은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불합리한것을 결코 참아 넘기지 않는 그의 생활인으로서의 뚝심에 기인하는 것이다.


서태지는 단순하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서 앨범을 발표하고 홍보한뒤 공연을 하고 공연한 내용을 실황음반과 영상물로 만드는것을 편집증적으로 반복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것에는 절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쟁취한다. 그것이 음원에 대한 수익이건 사전심의건 저작권에 대한 리메이크 권리이건 상관 없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각각 서태지가 있었고 그들이 서태지만큼의 성취를 이뤘다면? 아마 우리 사회는 좀 더 그럴듯한 곳이 되었을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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