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용기 감상기

이동진과 명징한 직조 논란

초하류 2019. 6. 5. 17:08

이동진씨가 쓴 영화 기생충의 한줄평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 글에 대해 명징과 직조 같은 단어가 어렵다며 좀 더 쉽게 글을 써야 한다는 논란이었다는 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글을 쓸때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쉽고 널리 쓰이는 친숙한 단어로 써야만 하는 걸까요?

물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보를 전달 하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에 누구나 알 수 있는 친숙한 말을 쓰는 것이 좋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옷을 입을때 흔히 T.P.O에 맞춰야 한다는 말이 있죠?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더워도 반바지를 입으면 어색한 공간과 시간, 장소가 있는 법입니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단순히 어떤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목적의 글이라면 최대한 쉬운 단어로 쓰는 것이 적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시간여의 종합예술작품인 영화를 한문장으로 전달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한문장은 스토리나 영화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전체를 통해 전달되는 느낌을 영화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없이 전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애초에 상당히 무리한 도전 입니다.

최신 엔진이 으르렁 거리는 스포츠카로 벌이는 경주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코너를 빠져 나가야 하는 극한 상황이라면 안정적인 주행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타이어의 그립력 마저 버리고 도로를 미끌어지는 드리프트를 사용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도전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한줄평에 단순히 평소에 잘쓰지 않는 문어투의 단어를 쓰는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한다는 것은 멋지게 떨어지는 라임과 플로우로 비트위를 질주하는 랩퍼에게 두음법칙 연음법칙 운운해 가며 가사의 문법을 따지는 것과 비슷한거 아닐까요?

물론 어떤 평론글을 보면 쉽게 쓸 수 있는것도 어렵고 전문 용어들로 체우는 통에 독자들로 하여금 눈쌀을 찌프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한줄평에서 명징이나 직조 같은 단어를 트집 잡는 것은 너무 소모적이고 지엽적인거 아닐까요?

이동진이라는 평론가가 영화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을 한줄의 짦막한 시로 승화 시킨 이 문장은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한번 찾아서라도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