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6

초하류 2004. 11. 19. 15:28
침대와 책상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겨우 3미터도 안돼는데 어째서 이렇게 가기가 힘이 들고 오래 걸린단 말인가 내일 발표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일요일날 책상에 앉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도착한 책상에 앉자 이번엔 또 갑자기 왜 이리 지저분한 책꽃이가 눈에 거슬리는지. 이리 저리 책꽃이에 꽃힌 책들의 키를 맞춰 놓고 책을 펼치려는 순간..



책상을 울리는 강한 진동음..



일요일에 연락할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핸드폰을 받아 들자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목소리



“유비 아저씨 전화 빨리 빨리 안 받어? 어디야? 지금 뭐해?”



나경이 였다.



“어 나 지금 집인데….”



“그래? 그 집이란게 어디 있는건데?”



“그.. 그게 민국대 후문 근처지.. 그 양철북에서 … 근데 왜?”



“놀러가게..”



“노… 놀러 여길? 온다구?”



“내가 남자 혼자 있는 거길 왜 가냐? 총 맞았어? 칙칙하게 바다 보러 가자”



“갑자기 그게 무슨..”



“나 벌써 민국대 후문쪽이거든.. 얼른 좀 나와 줬으면 좋겠네..”



후문에 도착했지만 나경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에서 자동차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빠앙”



허걱.. 거기엔 선글라스를 낀 나경이가 멋진 컨버터블에 앉아 있는게 아닌가..



“이.. 이게 다 뭐야 너 아직 면허도 없잖아”



“유비 아저씨 차라는 건 말 야 면허가 아니라 키로 시동이 걸리는 거 라구”



이런 곤란한 아가씨 아니 여고생이 있나..



“멋지지? 아빠가 아끼는 BMW Z4야 설마 면허 정도는 있겠지?”



“어.. 어 면허는 .. 있지..”



“와 잘 됐다 없으면 내가 아주 용서 안 할라 그랬는데 우리 바다 보러 가자~~”



“바다? 지금?”



“그래.. 지금.. 지금 아니면 언제겠어 바로 지금이지..”



“나.. 난 내일 발표 준비도 해야 하고 또..”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경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옆구리를 댕강 자르고 들어왔다.



“관둬 그럼 내가 몰고 가지 뭐.. 여기까지 오면서 연습은 충분했고 이제 한번 맘 놓고 달려봐야지 고속도로를 말이야 헤헤헤”



저 한쪽 뿐인 쌍커플이 찡긋하면서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면 뭔가 마법이 일어 나는 걸까?어째서 거절할 수가 없는 걸까



꽉 끼고 낮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좌석에 앉아 시동을 걸자 두두둥… 뱃속까지 흔들리는 엔진소리



너무 낮은 좌석 덕에 톨게이트에서 손이 닫질 않아 티켓을 뽑는데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겨우 올라간 고속도로



“뭐해 자전거는 죽어라 잘도 밟더만.. 엑셀 좀 밟아봐.. 오빠 달려~~”



엑셀을 제대로 밟자 등을 확 떠미는 가속감 이런 괴물 같은 차가 다 있을까.. 10년도 훌쩍 넘어 덜덜 거리는 아버지의 똥차나 가끔 운전해본 내게 이건 마치 거친 야생마의 등에 올라 탄 것 같았다.



가속페달을 밟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아직 3단인데 130km를 달리고 있었고 rpm도 여유가 있었다. 몸에 꽉 끼는 시트는 처음에 앉을 때는 불편한 듯 했지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핸들에 쏠리는 몸을 정확하게 고정시키고 주고 있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머릿털이 쭈삣 거리던 속도감에 적응 하는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180이 넘어가자 앞에서 달리던 자동차들이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무섭게 시야로 달려 들었다.



엑셀에서 발을 때는 것 만으로도 속도는 몸이 쏠릴 만큼 느려졌다. 중부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길을 알리 없는 나는 인간 네이게이션으로 변신한 나경이의 멋진 안내로 전혀 순조롭지 못하게 운전 중이었다.



“어 앞에서 아니 조금 더 유비 아저씨 2km 앞이라는 저 앞에 싸인 안 보여? 어 저기 저기.. 이리로 들어가야 된다니깐.. 속도 줄여 앞차랑 너무 붙었잖아”



정신없이 달린지 4시간만에 기적같이 정동진에 도착했다. 늦은 가을 바닷가.. 쓸쓸하고 고즈녁 할 줄만 알았던 정동진은 사람으로 바글 바글 거리고 있었다.



어수선한 가계에 포장마차들.. 정동진PC방.. 하지만 나경인 그런것쯤 전혀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마치 백사장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소리를 지르고 폴짝 폴짝 뛰고 난리가 아니었다. 잼있겠는데.. 야호~~



정신없이 백사장을 뛰어 다녔다. 물론 사람들이 처다 보고 수근 대고.. 하지만 뭐 혼자서는 힘들지 모르지만 한껏 오버해서 뛰어 다니는 나경이가 있으니까 그다지 힘들지 않는건 왠 조화일까..



얼마나 뛰어 다녔을까 헥헥 거리며 백사장에 앉자 하늘이 조금씩 어둑 어둑해 졌다. 주변엔 염장성 커플들이 저마다 바짝 바짝 붙어서 서로간의 마이너스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비 아저씨 나 여기 왜 왔게?”



“어? 어.. 바다가 보고 싶었겠지..”



“맞어 바다 보려고 왔어 그리고 또 있는데.. “



“뭔데?”



왜 이렇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처다 보고 있는걸까?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려는 찰라 어 이상하다 나경이 눈이 왜 자꾸 커지지



“으갸갹”



뒤로 벌러덩 넘어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놀라운 상황 이었다. 어째서 나경이 입술이 내 입술에 닿은 거란 말인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기도 전에 나경이가 말했다. 왼쪽에만 쌍커플이 진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처다 보면서..



난 왜 갑자기 그애 얼굴이 오버랩 되는걸까.. 그러고 보니 그애도 왼쪽눈에만 쌍커플이 있었구나.. 그래 저러다 눈을 두번 연속 깜빡 거리곤



“우리 사귀자”



그래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 잠깐만 이게 무슨 어째서 내 상상이 고막을 물리적으로 흔드는 것인가 아까 심하게 과속한 덕분에 고막에 이상이 생긴 건가?



혼란해진 내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점 점 커져오는 나경이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