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3

초하류 2004. 11. 16. 12:33
“와 변태 아저씨가 더 빨리 와 버렸네~~”



딸꾹 거리던 전화 속 목소리와는 달리 그렇게 취하거나 한 상태는 아니었다.



술이 쎈건가? 아니면 이제 첫잔 인가? 그건 그렇고 요즘 단속도 심한데 어떻게 버젓이 교복을 입고 술을 시켜서 마시고 있는 거지?



“아 변태 아저씨 이 학교 학생이냐고~~”



지금은 21세기지만 내 머리는 구닥다리 486PC 처럼 한번에 한가지씩 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뭐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역시나 혼자 생각을 하다 큰소리를 듣는건 땀나는 일이 아닐수 없다. 그것도 여자애한테서라면..



쌍커플진 왼쪽눈을 장난스레 일그러뜨린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코앞으로 쑥 시야에 들어오자 오면서 생각했던 멋진 대사들을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겨우 내 뱉은 말이라니..

.

“어 .. 어”



비틀려 올라가는 그녀의 왼쪽 입꼬리.. 으.. 치욕적이다. 정신을 차리자 현덕아 아까 생각했던 그 많은 대사들은 다 어쨌니 그래 자 지금부터 다시 차근히 아까 생각했던 대사를 차분히..



“오백 한잔 마시겠냐니까.. 아저씨 혹시 급하게 오느라 정신을 덜 챙겨 가지고 나온거 아냐? 크크”



이 이게 아닌데 한번 꼬인 분위기는 겉잡을 수 없이 꼬여만 갔다.



그런가 하면 아 이 분위기는 뭔가 양철북에 읹아 있던 모든 손님들은 저마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힐끔 힐끔 이쪽을 훔처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 입은 예쁘장한 여고생과 호프잔을 앞에 두고 쩔쩔 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란 아마 입장이 바꼈다면 나부터도 호기심에 힐끔 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니까..



“음.. 아까 아침엔 말야.. 학생이 잘못했지?”



“학생? 아 나..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못했네.. 나경이라고 해 허나경..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어.. 어 나 내 이름은.. 그게 ..고현덕이야”



아 이게 아닌데 지금 왜 내가 여기서 통성명이나 하고 있단 말인가 그래 정신 차리고 .. 그래.. 화장실에 간다 그러고 다시 정리를 하고 오자..



“나경이라 그랬나? 저.. 나”



“화장실 갔다 온다 그럴라는거 아냐? 유비 아저씨”



국민학교때부터 들어와서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한 별명인 유비란 호칭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 지기까지 했다.



“그래 나 화장실 잠깐 갔다가 올께 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입구쪽에 있는 화장실 문쪽으로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저 꼬마 여자애를 멋지게 응징하고 핸드폰을 찾은 후 호프집 아저씨에게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해서는 안됀다는 것을 충고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골몰해 하고 있었다.



“이봐 좁은 길에서 지나 갈려면 한쪽으로 비켜 서는 거 상식 아냐?”



어느 틈에 내 앞에는 다부진 인상의 내 또래 남자애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 미안합니다….”



툭 어깨를 스치고 그 친구가 지나가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이 급하거나 해서 들어 온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목적은 전열 재정비..



그래 오늘 아침에 내가 얼마나 당황 했었나 부터 시작해서 핸드폰을 빌려 쓴 건 너라는 사실 그리고 .. 음 그래 내가 좀 당황해서 그냥 두고 갔지만 핸드폰을 꺼두면 안돼는거 아냐 그리고 음.. 고등학생이 이런데서 술을 마시면 어떡해.. 좋와 이제 당황 하지 말고 이 대사 그대로..



심호흡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서서 그 여고생이 있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자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아까 마주 쳤던 다부진 인상의 그 남자애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어쩔껀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 남자애가 물었다.



“뭘 어떡해 같이 산부인과를 가 보자는 거지”



내게 이죽 거릴 때 와는 딴판으로 그 여고생은 표정이 싸늘한 것이 두드리면 금방 금이 가버릴 것 같이 곤두서 있었다.



“미안하지만 난 헤어진 여자친구를 따라 산부인과에나 갈 시간이 없어 니 문제는 니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거 아냐? 너 똑똑하고 잘난 얘잖아”



이런 이런 안돼 이런 분위기… 기껏 준비했던 내 대사를 까 먹어 버리잖아 ..



“하지만 결국 나도 책임은 있는 거니까 금전적 인건 내가 부담하도록 할께..”



“뭐야 또 너야 변태 아저씨 이 손 안놔?”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만약 0.5초만 늦었어도 그 애 손에 들린 500CC 맥주잔은 정면으로 약 1M정도를 날아 무표정하게 앉아서 안주머니에 손을 넣던 그 녀석의 이마를 강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목을 잡아서 잔은 테이블에 떨어 졌지만 그 속에 든 맥주는 저 옛날 아이작 뉴톤 아저씨께서 주창하신 대로 운동 하려던 성질을 그대로 이어 받아 내 오른쪽 팔과 그 녀석의 얼굴에 얇고 균일하게 도포되어 있었다 물론 급하게 시공하느라 기포가 좀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넌 뭐야 오호라.. 나경이가 고른 다음 피해자냐?”



나경이 그래 나경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여고생의 손목을 잡고 있는 나를 그 녀석이 힘껏 밀치면서 일어 섰다.



우습게 호프집 바닦에 고꾸라진 내가 일어서자 멋진 폼으로 일어선 그 녀석은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나와”



그리고는 뚜벅 뚜벅 걸어나가 버렸다.



아 이제 나는 어떡한단 말인가 호프집 주인 아저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계를 가득 매운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행하고 있었다. 물론 나경이라고 불린 그 여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는 듯 해 보였다. 아버지가 아시면 날벼락이 내리겠지만 이런 앞뒤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런 난폭한 녀석과 시비를 가리고 싶은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나경이라고 했지? 자 내 핸드폰 내놔 난 그 핸드폰 받아서 호프집 뒷문으로 나갈 꺼거든 저 무지막지한 녀석은 112 전화 하면 민중의 지팡이 아저씨들께서 친절하게 처리해 주실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내 핸드폰 이리줘”



“그래 변태 아저씨 뒷문으로 나가는게 좋을꺼야 저 사람 유도를 무척 잘 하거든..”



나경이는 순순히 핸드폰을 내 주었다.



핸드폰을 받아 쥐고 일어섰을 때 난 무척 중대한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양철북엔 …



그래 양청북엔 뒷문이 없다는 거였다.



마지못해 문을 열고 나오자 그 녀석은 양철북 앞 정문에서 자켓을 벗어서 타고 온듯해 보이는 차문에 걸쳐 두고 예상과는 다르게 차분한 얼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뒷문으로 도망치지 그랬어 맹한 친구.. “



“아 어떻게 알았어? 사실은 나 뒷문으로 조용히 가려고 했거든 그런데 너도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겠지만 말야 양철북에는 결정적으로 뒷문이 없더라구.. 아까 컵 막아준거 그냥 없던걸로 할 테니까 난 그냥 가면 되겠지?”



아 이렇게 길고 복잡한 문장을 한번에 말하다니 .. 하는 내 자신에 대한 감탄을 끝내기도 전에 그 녀석이 한 걸음 쑥 내 앞으로 다가왔다.



상체는 거의 흔들리지 않은체 체중이 자연스레 분산되어 진퇴가 자유로운 스텐스로 오른쪽 발만 자연스럽게 한걸음 내 딛은 음 나름대로 휼룡한 우자연체 로구나 하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녀석의 양손이 내 목덜미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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