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1

초하류 2004. 11. 12. 12:29
"두근거림이 없어졌어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


새벽3시 평소같으면 업어가도 모를 잠 삼매경에 빠져있을 나를 아직 잠 못들게 한건 이 한줄의 핸드폰 문자 메세지였다. 고작 몇바이트 안돼는 정보가 송신탑을 떠나 내 단말기를 흔들었을 뿐인데 나는 아직도 잠못들고 있다.


뭐 이런 웃기는 짜장 짬뽕 카레 같은 일이 다 있나 지금은 새벽하고도 3시이고 결정적으로 문자가 온 전화번호는 생전에 처음본 전화번호인데 난 왜 아직도 이 문자와 눈싸움 한판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 말인가


그애랑 헤이졌던 그날의 충격이 오늘 일처럼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그 또록 또록한 눈을 연속 두번 깜빡거리곤 나를 빤히 처다 보며 날린 한마디가 토씨 하나 안틀리고 내 핸드폰 액정에 디스플레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좋와 하지도 않는 커피 리필을 3번 연속으로 받고는 쓰린 속을 부여 잡고서야 소파에서 일어설수 있었다..


"으응.. 어 이게 몇시야 지각이다.."


그놈에 문자 덕분에 새벽잠을 설친 댓가는 지각이었다. 씼는둥 마는둥 옷을 걸치는듯 마는둥


자취방 원룸을 박차고 나섰다. 계단을 뛰어 내려와 자전거에 올라타고는 원수를 만난듯이 페달을 밟아 제꼈다.


그냥 마을버스 타고 다닐것을 운동 한답시고 지난달 생활비를 털어 산 자전거 덕분에 인문대 앞 자전거 주차장에 도착했을때는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인데도 셔츠가 흠뻑 젖어 기분 나쁘게 찰싹 달라 붙어 오고 있었다.


"으스스"


수업시간은 벌써 코앞으로 닥쳤지만 헐레벌떡 달려온것 치고는 막상 인문대 건물 앞에 서있자니 수업에 들어갈 엄두가 꼬리를 슬그머니 감추고 말았다.


이제 이걸 어떡한다... 난감해 질때면 늘 나오던 버릇대로 고개는 저절로 왼쪽으로 왼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딱 눈이 마주친 그 아이는 전형적인 여교 교복인 세일러복을 입은 얼굴이 갸름한 아이였다.


왜 난 그 애를 그렇게 오래 빤히 처다 보았을까? 카랑 카랑한 소프라노 목소리의 그애가 핀잔을 줄때까지 난 멍청히 그애 눈을 처다 보고 있었다.


"아저씨 여고생 첨봐?"


"어.. 어~~ 아 미안해요"


우이씨 나보다 10살은 어릴꺼 같은데 얼떨결에 나온 이 기어 들어 가는 비굴한 목소리는 뭐람.. --;;


"아저씨 그렇게 오래 처다봤으니까 핸드폰 한통화 좀 쓰자"


"어? 어 어~~ 자 여기"


"어 오빠야 뭐 나 지금 인문대 앞이나까 빨리 나와 문자 하나 딸랑 보내고 이렇게 끝낸다는거 오빠가 생각해도 존나 밥맛이지 않어? 뭐 "


덥썩


"뭐야 아저씨 변태야? 이 손 놔.."


난 그 여고생의 가녀린 손목을 두손으로 잡을수 밖에 없었다. 물론 변태라서 그런건 아니었다. 만약 0.5초만 늦었어도 인문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닦에 패대기 쳐졌을 바꾼지 한달밖에 안된 내 최신형 핸드폰을 구하기 위해서 난 필사적일수 밖에 없었다.


무슨 여고생이 이렇게 손아귀 힘이 세단 말인가.. 땀을 뻘뻘 흘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 보았다.


주위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보면서 전부 야릇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거 아닌가


아침 시간에 그것도 여고생이랑 인문대 앞에서 옥신각신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여도 할말은 없었다.


"헉"


"야 어딜 도망가 이 변태 자식아~~"


건물 모퉁이로 입 가볍기로 소문난 표박사님의 옷자락이 보인다 싶자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냅다 줄행랑을 쳐 버릴수 밖에 없었다. 고래 고래 소리 지르는 그 여고생 덕분에 아마도 표박사님은 다음 수업 시간에 내게 집중적인 질문을 퍼부을께 뻔하겠지.. 정말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