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투니버스 Day

초하류 2004. 9. 18. 12:27
유치원에서도 하루 종일 실수 연발이었다. 노래 가사도 까먹기 일수 였고 율동시간엔 친구들과 반대쪽으로 돌다가 부딪쳐서 넘어지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너무 좋은걸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아빠 엄마가 모임이 있어서 저녁 늦게 돌아 오시는 날이기 때문이다.

투니버스는 하루 종일 재미있는 만화를 틀어 주고 있는데 내가 볼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아침엔 유치원에 가야하고 3시에 마치고 집에 가서 저녁 먹기 전까지 보다 9시가 되면 어김없이 자러 가야 했다. 어쩌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기라도 하시는 날엔 재미도 없는 야구중계를 보느라 투니버스는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야구중계를 보는 아빠에게 심술이 나서 동화책을 가져다 큰소리로 읽기도 하고 아빠를 졸라 보기도 했지만 말썽 부린다고 야단만 맞기 일쑤였다.

몇 달 전부터 엄마와 아빠는 매달 하루씩 모임에 가셔서 저녁 늦게 돌아 오시곤 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씩 나는 저녁 늦게까지 투니버스를 볼수 있었다. 내게는 한 달에 한번씩 찾아 오는 꿈같은 하루 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투니버스를 틀어놓고 누워서 TV를 보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었다. 눈을 떴을 때는 아빠의 화난 얼굴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덕분에 아빠에게 종아리를 5대나 맞았지만 이번 달엔 자신 있다. 아빠랑 엄마는 모임에 갔다가 12시가 가까이 되야 들어 오시니까 지난달처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다가 잠들어 버리지 말고 딱 11시 30분까지만 보다 들어가서 자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저녁을 먹느라 숟가락을 달그락 거리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가 왔다.

"어 자기야? 아 오늘은 거기구나 알았어 나 준비 다했거든 거기서 봐"

아빠한테서 온 전화가 분명했다. 엄마는 곳 분주하게 여기 저기를 왔다 갔다 하더니 나를 불렀다.

"너 지난달에 늦게 까지 티비보다 혼났지? 오늘은 9시 되면 꼭 자야 돼 지난달엔 엄마가 아빠 말려 줬지만 이번에 또 그러면 엄마가 더 때려 주라 그럴 테니까 알았지?"

그리고 엄마는 예쁜 연두색 원피스를 차려 입고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나가 버렸다. 그리고 TV는 내 차지였다. 오늘따라 어쩜 이렇게 재미있을까.. 시간이 금방 금방 지나갔다. 엄마가 준비해 놓은 과자를 먹으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TV를 보고 있었다. 시계는 어느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째깍 째깍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서 11시 30분이 되었지만 난 좀처럼 TV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지만 시계가 11시 45분을 가리키자 난 TV를 끄고 내방에 가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이불을 덥고 잠을 청했다.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은지 체 몇분도 돼지 않아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아빠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아빠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쿵쿵쿵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내 방 앞에서 딱 멈추곤 문을 획 열었다.

"승준이 일어나봐"

"어 아빠~~"

나름대로 완벽한 자다 일어난 연기였다.

"너 조금 전까지 티비 봤지"

"아뇨 아까부터 잠들어 있었는데.. "

"저기 티비쪽에 가서 손 올려봐 따뜻하지? 너 이 녀석 이제 거짓말 까지.. 오늘은 10대다 일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