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2

초하류 2018. 3. 14. 13:55

2. 선물(준 것과 받은 것)


 


결혼하고 8년째였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처음 4년간은 주말부부여서 피임을 했지만 주말부부를 그만두고는 딱히 피임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질 않더군요.


 


한의사이신 외삼촌은 어머니 닦달에 아이 서는데 좋다는 약을 지어 주시면서 특유의 걸걸 한 목소리로 말씀 하셨습니다.


 


"너거뜰 혹시 피임하나?"


"아뇨 .. --;;"


"그라마 너거들 전에 피임 했었나?"


"주말 부부일 때는.. --;;"


"너거들 피임 그기 그냥 하는 거 같은데 조심해야 된데이.. 몸이 피임에 적응을 하거든.. "


"네 잘 알겠습니다.~  --;;"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뭐 그런 소리를 하시나 했었는데 결혼 한지 8년째가 되니까 저도 좀 걱정이 되더군요.


 


어른들의 닦달이야 그렇다 치지만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주변에서 아이를 가지려고 애쓰는데 몇 번이나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더럭 겁도 났어요. 그래서 새해 기념 외식을 하면서 넌지시 말을 꺼냈습니다.


 


"자기야 우리 이제 뭔가 좀 적극적으로 검사도 하고 해봐야 하지 않을까?"


 


"왜? 난 결혼하기 전에 다 검사했었어 정상이라고 했단 말이야.. 그리고 나 그 검사 다시 받기 싫어.."


 


"그래도 아이를 아주 낳지 않을 건 아니잖아 자 봐 지금 우리가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대학교 입학할 때 난 환갑이란 말이야"


 


스마트폰을 꺼내서 마눌님에게 들이 밀었습니다. 


 


"보라구 지금 내 나이가 38이야 그리고 당신 나이가 40이잖아 그러면 봐~ 아이가 태어나서 5살에 유치원에 들어가면 내가 44살 당신이 46이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47이고 당신은 49 대학교에 재수 안하고 들어가도 59에 당신은 61 환갑이란 말야"


 


"몰라 뭐 이따위껄 깔아놨어.. 그리고 난 스마트폰도 없잖아. 자기나 그거 많이 보고 걱정 많이해"


 


모처럼 나간 새해 맞이 외식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마눌님은 깊~~은 삐침모드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 목요일 회식자리에서 오랜만에 회사 대표님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야 초차장 인자 후배한테 전화 안 오네?"


"아~ 네.. 몇 일전에 좀 그런일이 있어서요"


"그~~래? 그럼 또 내가 후배를 위해 준비한 게 있지.."


 


대표님은 마눌님이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들으신 이후엔 회식 자리에서 귀가 종용 전화나 문자가 오면 늘 후배라며 장난을 치시곤 하셨습니다. 부스럭 거리며 가방을 뒤지시더니 종이상자를 꺼내셨습니다.


 


"초차장 이거 뭔지 아나?"


"아뇨.. --;;"


"이기 무슨 팩인가 하는 긴데 여자들이 이런 거 사소한 거 막 챙기가고 이라믄 좋~아 한다. 꼭 무슨 특별한 선물 이런 거 보다 이런기 훅 한방에 보내는 기야. 오늘 가서 이거 식탁에 슥 올리노면서 야 오다가 줏었다. 이라고.. 한번 줘봐 그라믄 땡이야"


 


장난스럽게 웃으시는 대표님에게 상자를 받아 들고 2차 맥주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


 


갑자기 뭔가가 얼굴에 날아와 꽂히더군요. 슬쩍 실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과 성난 마눌님의 얼굴이 줌인과 줌아웃 되면서 아바타 저리 가라는 4D 입체효과를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좀 과하게 마신 술에 필름이 끊어진 거죠.


 


"한번 봐봐 자기가 그렇게 말하던 검사 결과서야. 지금 그 꼴로 읽을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정상이래. 이렇게 곤드레만드레 취해 들어오면서 아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마눌님은 화났을 때 특유의 차가운 사무적인 목소리로(무슨 ARS 안내 멘트같은)쏘아 붙이고는 묵직한 이불을 제 얼굴을 향해 던져 놓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시계는 세시 반,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아직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데 왠지 그냥 잠이 들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니 대표님께서 주셨던 팩이 생각 났습니다. 가방을 뒤져보니 용케 가지고 왔더군요. 팩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 놓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가방에 들어있는 포스트잇을 꺼냈습니다. 그리곤 한 장을 때내서 한자 한자 꾹 꾹 눌러가며 썼습니다.


 


"오~ 다~ 가~ 줏~ 었~ 어~ 요~ 필~ 요~ 하~ 면~ 쓰~ 세~ 요~"


 


그 쪽지를 쓸 때까지만 해도 그 팩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을 가져다 줄지 상상도 하지 못한 체 다시 잠이 들었고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숙취에 허덕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