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를 시작한지 벌써 5일이 지났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몸살끼가 올라와서 가족들과 다른방에서 혼자 잤고 아침에 일어나 자가검진을 해보니 두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자가격리 등록은 병원에서 바로 해주셨고 7일치 약이 무료로 제공 되었습니다. 검진을 받으러 가는 동안 마눌님은 제가 자던 방을 다 소독하고 안방에 자가격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팠다기 보다는 정신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꺼 같은데요..
평소에 늘 수면 시간이 모자란 상태기 때문에(초 늦게 자고 아침엔 일하러 가니까..) 그 영향때문인지 밥 먹고 약먹으면 거의 기절수준으로 이틀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그리고 3일째인 월요일이 되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와서 바쁜 프로젝트 상황에 대해서는 전화로 회의도 잠깐 하고 방도 치우고 샤워도 하고 몸을 움직였습니다.
화요일엔 어느정도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고 밥먹고 약을 먹은 후에도 어느정도 정신이 유지가 되더군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졌습니다. 회사는 지금 엄청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문밖엔 딸아이가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창 밖으론 해가 떳다 지고..
태어나서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이렇게 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보낸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감옥에 가서 독방에 수감되면 이런 느낌일까요?
밥이 들어오면 먹고 음식을 치우고 약을 먹고 나면 다른 할일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유튜브를 본다던지 넷플릭스를 본다던지 작성중이던 글을 본다던지..
그러다가 스캔해둔 가족 사진들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 봤습니다.
제가 어릴적 흑백사진부터 대학에 들어가고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직장 생활을 하고 와이프를 만나 결혼 하고 재인이를 낳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50이 되어 버린 지금까지의 사진들을 돌아다 보았습니다.
우선 아버지 사진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47년생이셨으니까 지금 살아 게셨다면 아직 80도 안되신 요즘 흔한말로 한창인 나이셨을겁니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던 젊은 시절부터 3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경제적인 환경 쪽방에서 한옥을 사고 빨간 3층짜리 벽돌집을 사고 남부럽지 않은 80평 마당 딸린 단독주택을 사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사진속에 아버지는 늘 활짝 웃고 계셨습니다. 그때 사진이란건 귀한거니까요.. 좋은일 기념할 만한 일일때만 찍었겠죠.
하지만 참 뜸금없는 사진들도 많이 찍어 놓으셨더군요.
고향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 가족의 뒷모습이라던지
누가봐도 연출한 느낌이 나는 등교길 어머니에게 인사 드리는 모습~
생일상 앞에서 장난스럽게 웃으시던 모습들..
아버지는 그 시간들속에서 얼마나 행복하셨던 걸까요?
그 사진속에 웃고 게신 아버지는 켜켜히 쌓여 있는 그 시간들 어디가 가장 행복했을까요?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 보려고 해도 그 수많은 모든 순간은 그때 나름의 행복과 어려움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나 혼자라면 더 즐거운 시간들도 있을 수 있지만 나 혼자만 살아온 시간이 아니니까요..
아버지, 어머니 두명의 동생들 그리고 그 동생들의 가족들.. 한순간도 여기로 가면 정말 행복하기만 하겠다 싶은 곳이 선뜻 눈에 뛰질 않더군요
물론 지금도 마찮가지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일과 어렵고 힘든 일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는거죠
이제 수요일 저녁이 저물고 있습니다. 목요일, 금요일이 지나면 자가격리가 해제 되고 저와 사회를 가르고 있는 저 안방문을 건너 다시 생활속으로 들어가야겠지요
얼른 문을 열고 나가서 가족들도 마주 하고 싶고 큰 화면으로 영화도 보고 싶고 새로 셋팅하자 마자 얼마 들어 보지 못한 오디오 시스템도 실컷 들어 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사회를 가르고 있는 이 벽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코로나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이런 시간이 필요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말입니다.
앞으로 몸은 점 점 더 늙어가겠죠. 벌써 침침해진 눈은 말할것도 없고 아직은 문제 없다고 생각되는 온몸의 근육들과 장기들은 점 점 빠른 속도로 낡아 가게 될겁니다.
조금 더 또렷하게 행복하고 또렷하게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도 같은 속도로 줄어 들게 되겠죠.
가족들과 유럽을 20일 넘게 여행할때.. 낮선 유럽 숙소에 누워 내 인생에서 다시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 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그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내 인생에서 다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긴 시간이 주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시간이 오랫동안 그립고 나중에 내 몸이 더 이상 지금처럼 기능하지 않을때 내가 살아 온 인생을 돌이켜볼때 생각날 지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세상일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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