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염치가 가지는 사회적 비용

초하류 2026. 1. 23. 18:05

 

우리는 주변에서 "사람이 왜 그렇게 염치가 없냐"라는 말을 가끔

씩 듣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라 뭘 하더라도 대의명분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신경 쓰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변 신경 안 쓰고 서로 간섭하거나 개의치 않는 서양이 멋있어 보이고 'Cool'하다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주변 눈치 보면서 염치 운운하면 나이든 노친네 소리나 듣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염치는 그냥 나쁘기만 한 걸까요? 우리 모두가 염치없게 행동하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예전에 한 대중교통 좌석을 어디까지 젖힐 수 있는가에 대해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구매한 좌석에서 내게 주어진 것을 100% 누린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의자를 뒤로 최대한 젖히자, 뒷사람은 공간이 좁아져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뒤쪽 사람이 불편한 것 때문에 내가 가진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였습니다.

이런 문제는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관점에 따라 답이 바뀌니까요. 우선 내가 구매한 자리가 뒤로 젖혀진다는 건 내가 의자를 젖힐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뒤에 사람이 있고 불편한 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거나 이 자리를 판매한 운송 사업자의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 결국 대중교통의 의자는 뒷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만 젖혀지도록 고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뒤쪽에 사람이 없더라도 의자를 꼿꼿이 세우고 가야 하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대중교통이 뒤로 완전히 젖힐 수 있게 의자 간격을 넓히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수익성이 낮아져 대중교통 비용이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하면 **'편의의 총량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염치에 비용을 곱한 값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편리의 총량 ∝ 염치*비용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염치가 사회적 편의에 단순히 더해지는 요소(+)가 아니라, **곱해지는 요소( X )**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염치가 '더하기'라면, 염치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비용을 더 많이 들여서 편의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염치가 '곱하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만약 사회 구성원의 염치가 '0'에 수렴한다면, 아무리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더라도 편의의 총량은 결코 늘어날 수 없습니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비용을 들여 만든 새로운 시설이나 서비스조차 또 다른 갈등과 이기주의의 전쟁터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염치'라는 사회적 자본이 존재한다면 개인의 금전 지출은 사실상 0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염치라는 것은 개개인이 일상에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작은 행동'으로 지불되기에 그 부담이 미미하지만,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사회 전체에서 실제 힘을 발휘할 때는 그 가치와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집니다.

이처럼 거대한 '공동의 편의'를 염치 없이 오직 개인의 금전적 비용만으로 감당하려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하거나 극심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과 피해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나의 권리만을 주장하며 뒷사람의 불편을 외면할 때, 앞사람 또한 똑같은 논리로 나의 공간을 침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염치'란 타인을 위한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나의 편의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 우리가 서로에게 지불하는 최소한의 보험과 같습니다.

쿨해 보인다는 이유로, 혹은 내 권리라는 명목으로 염치를 낡은 유물 취급하기엔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도 큽니다. 조금은 번거롭고 때로는 눈치가 보일지라도, 서로의 처지를 살피는 그 '염치' 있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품격과 개인의 편의를 동시에 지켜주는 가장 경제적이고도 인간적인 해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