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연속극] 요즘사랑 - 마지막회

초하류 2004. 12. 23. 15:35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2주간 시도 때도 없이 울려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던 전화는 이제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전화를 해 봤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날리고 음성을 남겨 봤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이 허나경이란것 전화번호 그리고 아버지가 사진작가 이고 입양됐고 나 바로전에 유도를 잘한다고 뻥친 남자애를 만났고 Z4를 끌고 다녔으며 고등학생이고 나이는 21살이라는거 정도?



아파트에 찾아가 봤지만 그렇게 으리 으리한 좋은 아파트에선 이름 만으론 아무것도 알아낼수가 없었다.



사고가 났나? 아니면 또 외국으로 가 버렸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날 만나다가 다른 녀석을 만나고 있는건가?



2주 3주가 넘어가자 이렇게 안달복달 초조해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그렇게 제멋대로인 아이가 제멋대로 같이 놀다가 제멋대로 떠난것 뿐인데 나도 그냥 신경 끄면 되지뭐.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나경이의 블로그를 들어가 봤지만 늘어가는것은 카운터뿐 새글 하나 댓글하나 달리지 않았다.



그래 태수 말처럼 내가 너무 정신을 놓고 사니까 그런 애까지 날 가지고 논거야.. 정신을.. 정신을 차리자



막상 정신을 차릴려고 생각하니 할일이 산더미 처럼 몰려 왔다.



부족한 전공공부는 둘째 치더라도 영어다 상식이다 취업준비라는건 정말 전혀 장난이 아니엇다.



하지만 나경이의 장난질에서 벗어날때에는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내 기억력이 취업준비를 위해서는 엄청난 도움이 되주었다.



난 엄청난 양의 책을 다시 없을 집중력으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물론 그 내용들이 차곡 차곡 그림파일 쌓이듯이 내 머리속에 쌓여 갔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100여통의 원서를 여기 저기 돌린 끝에 크진 않지만 어느정도 중견기업인 현제의 직장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자취방은 여전히 썰렁했다.



불을 켜고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털썩 누워서 눈을 감았다. 알콜의 힘이라니..



눈을 감자 일년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나경이 얼굴이 또렸하게 떠 올랐다.



왼쪽에만 있는 쌍커플 웃을땐 약간 올라가는 입꼬리에서 부터 머리칼 한올 한올 까지..



그애 블로그에 안 가본지도 참 오래 됐는데.. 한번 들어가 볼까?



컴퓨터를 켜고 익스프롤러를 실행 시켰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도 전혀 잊혀지지 않을 주소를 입력하고 Enter를 쳤다.



"드르륵" 한참 고물 컴퓨터 하드가 스왑을 하느라 요란을 떨다 사이트가 뜨자 팝업창이 하나 열렸다.



'뭐야 이젠 블로그에도 팝업창으로 장사를 하나?'



하지만 팝업창은 만hit 이벤트 당첨을 알리는 팝업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숨김 이벤트 페이지에는 그날 찍은 결혼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축하글이 적혀 있었다.



"음.. 아 아.. 이제부터 미래로 보낼 글을 작성 하겠습니다.



현덕오빠 내가 얼마나 고심해서 이벤트를 걸었는지 알아 줬으면 해



오빠가 내 블로그에 얼마나 자주 오게 될지 전혀 감이 안왔거든..



나 이번주 토요일에 수술하러가야해..



지난번에 산부인과에 같이 갔었잖아.. 그런데 아기집에 아기 말고 다른게 자라고 있다잖아 의사선생님이



아빠가 그러는데 난 아직 어리고 그렇게 많이 진행된게 아니라서 수술만 하면 금방 나을 수 있데



근데 믿을수가 있어야지 영화에서 보면 왜.. 환자한텐 막 병 상태를 숨기고 그러잖어..



그런데 막상 오빠한테 수술한단 이야길 하려니까 못하겠더라구..



그냥 샥 나을텐데.. 유난떠는것 같기도 하구 혹시나 .. 아주 호오옥시나 내가 잘못되면 너무 청승 맞을꺼 같아서..



그래서 말을 못하겠더라구..



야 사진 이쁘다.. 이 사진 보여주고 막 자랑할라 그랬는데..



수술날짜가 얼마 안남아서 지금 뜨고 있는거 목도리는 수술하고 줘야 될꺼 같아



목도리가 젤 쉽다는데 난 아직 쉽지가 않네.. 히히 하지만 나름데로 열심히 떳으니까 잘 어울릴꺼라고 생각해..



히히 나 사실은 궁금하고 무서워



내가 아주 호오오옥시라도 잘못되면 아무도 오빠한테 알려줄 사람이 없잖아



그런데 알려주기는 싫고 그래서 이렇게 만hit 이벤트를 쓰고 있는 거야 멋지잖아



나 사실은 오빠 땜에 무척 행복하거든.. 이제껏 만나왔던 사람들 사랑들은 뭐랄까 자동차 히터 처럼 말야 숨 막히게 덥다가도 끄면 또 금방 식어 버리곤 했거든.. 근데 오빠는 안그럴꺼 같아 온돌처럼 말야 뜨끈 뜨끈.. 히히



자 일단은 내가 말끔히 수술하고 나아서 이 글을 샥 지우면서 크하하 하고 나 자신을 비웃어 주는게 Best일꺼 같고



그 다음은?



글쎄..



오빠가 만번이나 내 블로그를 들어와서 이 글을 읽어 버리게 되는게 나은걸까 아니면 내 블로그에 들어 오지 않아서 만히트 이벤트가 알려 지지 않는게 좋은걸까?



만약 만히트 이벤트가 내 죽음을 오빠에게 알린다면 지금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난 후가 좋을까



일년 이년 삼년? 아니면 십년?



음.. 낼 모래면 수술할 사람이 죽을 생각을 하면 안돼겠지?



하지만 유비무환이니까 사람이란건..



오빠 수술하고 회복기간까지 처서 3개월 그 후에 짜잔 하고 내가 나타날께..



기다려 그리고 이거 오빠한테만 이야기 하는건데.. 사실은 나 오빠 사랑하고 있나봐 근데.. 아직은 2주 밖에 안 흘렀으니까 시간이.. 친구들 한테 말하기도 그렇고..



시간이 중요한건 아니겠지?



짜잔 다 나아서 오빠 찾아가서 이야기 할꺼야



사랑해~~



히히 오빠 잘자고..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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