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13

초하류 2004. 12. 23. 15:34
"현덕씨 아까 부탁한거 제안서 출력 끝났어요?"



"예 지금 거의 출력이 끝났거든요.. 마지막장이 쨈이 나서.. 금방 출력해서 가져 가겠습니다."



오늘도 정신 없는 하루.. 퇴근 시간은 가까워 가지만 오늘도 역시 야근 분위기였다. 연말이고 오늘은 오랜만에 태수 녀석이랑 망년회 약속도 잡혔는데..



부탁 받은 제안서를 출력해 주고 컴퓨터앞에 앉자 마자 MSN 화면이 딩동 거렸다.



"현덕아 니 오늘 8시 종로 오는거 잊지 말그라"



"알았어 지금 바뻐"



눈코 뜰세 없이 바쁜 와중이라 백수친구녀석과 msn으로 노닥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오늘 주문 들어온 물건들의 발송 상황 체크만으로도 이미 약속시간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오늘 절대 늦으면 안됀다"



아 이 끈질긴 태수녀석 니 녀석 MSN에 답하다가 늦겠다.



"알았어 지금 바쁘니까 난 Out"



MSN을 로그아웃 시켜 버리고는 출력해온 송장들과 모니터 주문현황을 꼼꼼히 비교해 나가기 시작했다.



업무를 마치고난 시각은 7시 15분 하지만 아직도 맘 편히 퇴근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박대리님 이거.. 제안서 출력 끝났습니다."



"어 그래 거기 놓고 가봐"



박대리는 모니터에서 눈을 때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해 버렸다. 그래도 사수인데 이 싯점에서 기델곳은 박대리 뿐이었다.



"저 박대리님 오늘 망년회가 있는데.. 지금 퇴근 하면 안될까요?"



"그래? 송장 체크는 끝났어?"



"그럼요.. "



이 싯점에서 뭔가 특별한것이 필요한거 아니겠어?



"박대리님 그리고 그 지난주에 말씀 하셨던 소개팅 말인데요.."



"어.. 어..그래 날짜 잡혔어?"



""그게 오늘 망년회에 가서 이야기 하기로 했거든요"



"그래? 그럼 가봐야지 안 늦었어? 얼른 가봐"



"넵 감사합니다."



다음주까지 어디서 누구를 끌어다가 소개팅 껀수를 올릴수 있단 말인가 태수녀석에게 희망을 걸어 보는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깜빡 지나칠뻔하다 내린 종로역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으로 북적거리더라도 저렇게 험악한 인상을 하고 서 있는 녀석은 쉽게 눈에 뛰는 법이다.



"현덕아 여기다~~"



게다가 저렇게 어울리지 않는 새된 목소리까지 가졌으니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녀석을 못찾아 헤멜리는 없지.



잉.. 근데 저 녀석 옆에 서 있는 저 애는 누구지?



"선배 오랜만이에요"



수진이었다. 졸업하고는 연락 한번 못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태수 녀석은 눈에 뭐가 들어 갔나?



태수는 내 쪽으로 손을 흔들면서 그렇잖아도 작은 눈을 연신 찡긋 거리고 있었다. 저 녀석은 항상 시키지 않는 짓을 해대곤 하지..



"와 현덕아 오늘은 니가 쏘는거 맞제? 여 고기 하나 더 시키도 돼나?"



태수 녀석이랑 편안하게 삽겹살에 소주나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려고 나왔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수진이 때문에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선배 저 오늘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어.. 어.. 어떻게 온거야 태수랑 연락이 어떻게 됐나부지?"



"현덕아 이기 바로 인연이라 카는거 아이겠나 여 오다가 전철에서 딱 만났거든.. 그래서 안올라 그러는걸 내가 억지로 댈꼬 왔다 그라이까네 현덕이니가 오늘 화끈하게 쏴야된다."



아 이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 시킬수 있는것은 .. 이슬뿐..



"태수야 너 안보는 사이에 말 참 많아 졌다. 일딴 한잔 하자.. 수진이도 한잔 할꺼지? "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조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만나면 술을 마시는구나 싶었다.



"수진아 니는 올겨울 날 늑대 목도리 장만 했나?"



"선배 당연하지 내가 그렇게 능력 없어 보여요?"



태수 녀석 얼굴 표정 봐라...



"그렇나.. 야 어쨌든 반갑다 작년에 졸업했는데 벌써 학교 다닐때 일이 까마득 한거 같아.."



"현덕선배는 회사일 재미있어요?"



"뭐 재미라기 보다 아직 적응하느라 정신 없어 이제 업무 파악하는 정도지 뭐"



"그래도 현덕아 니 참 대단하데이.. 요즘 왠마~~안 하믄 내 처럼 청년 실업자 되가꼬 방구석에서 빌빌 거리는 아들 얼마나 많노 말이다. 그래도 니는 이래 떡하이 취직 되가꼬 내 술도 사주고 말이다"



"선배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께"



수진이가 전화기를 붙잡고 식당 밖으로 나가자 마자 태수녀석이 손으로 나팔 모양을 만들더니 내쪽으로 하고는 지딴에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바라 짜슥아 그때 니가 딴눈만 안 팔았어도 수지이가 딴놈 만나지는 않을꺼 아이가"



"태수야 지금 네 목소리 옆자리에서도 다 들리겠다. 그리구 나처럼 쥐꼬리만한 월급에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작은 회사 다니는 사람이 수진이 눈에 차겠니?"



"짜슥이 뭘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수진이가 니 얼마나 좋와 했는지 니가 잘 몰라서 그란다"



드르륵하고 문소리가 나자 태수녀석은 힐끔 문쪽을 보더니 확실하게 부자연스런 포즈로 내게 건배를 권했다.



"선배 어떡하지 나 지금 가봐야할꺼 같아 남자친구랑 선약이 있거든 태수선배가 워낙 난리를 쳐서 현덕선배 얼굴이나 잠시 보려고 왔었어.. 다들 건강하니까 기분 좋네.. 다음에 연락하구 오늘은 나 이만 일어 설께요 선배들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구 일찍 일찍 들어가세요"



변함이 없었다. 저 따닥 따닥하게 숨쉴틈도 없이 빠르지만 또박또박 잘 들리는 수진이 목소리는



그러고 수진이가 일어서 버리자 흥이 깨진 술자리에서 태수녀석이랑 주거니 받거니 몇잔을 더 마시고는 다음날 출근을 핑계로 집으로 돌아갔다.



취업 때문에 정신 없이 백방을 뛰어 다니고 취업이 되어서는 직장 분위기 따라 가랴 낮선 업무 따라 가랴 정신없었던 탓에 잊어 버리고 있었던 지난 기억이 알콜의 힘을 타고 머리속 저 깊은곳에서 스멀 거리며 기어 나오려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