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10

초하류 2004. 12. 23. 15:32
“유비 아저씨 운전 면허증 첨봐?”



틀림없었다. 가증스럽게 단정한 머리와 옷차림으로 착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경이를 제외하고는 어느한곳 흠잡을대 없는 완벽한 운전면허증이었다.



“어.. 어째서 니가 나랑 동갑인거지?”



수진이가 말을 다 더듬다니.. 내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삼수 했어 왜? 고등학교 재수한 사람은 운전면허 내주지 말라는 특별법이라도 알고 있는 거야?”



도데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일까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나경이에 대한 정보가 모두 헝크러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곤란 할 때는 어째서 고개가 자꾸만 왼쪽으로 왼쪽으로 돌아 가는 것일까 씩씩대던 수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놀란 것은 수진이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 보다 그 눈 속을 생뚱 맞게 체 우고 있는 눈물이었다.



“선배 .. 뭘 봐요 여기 이 나이든 고등학생 아가씨가 선배에게 볼일이 있는 거 같네요 전 이만 가 볼 께요”



표면장력의 힘일까? 아니면 수진이의 자존심이 초인적인 힘으로 붙잡은 것일까 그렇게 그렁 그렁 고여 있는 눈물을 잘도 매달고 수진이는 또박 또박 흔들림 없이 말을 끝내고는 획 돌아서서 학생회관 쪽으로 걸어 가버렸다.



“유비 아저씨 안 갈 꺼야?”



그래 일단 어찌된 영문인지나 알자..



“어딜 가려는 건데?? 나랑 설마 지금 다시 바다가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오 유비 아저씨 이제까지 한 대사 중에 젤 마음에 드는데 지금 바다로 갈까? 이번엔 내가 운전해서.. 농담이야 무서운 얼굴 해 봤자 겁먹을 사람 없으니까 얼른 타기나 해”



완벽하게 단정한 이런 일식집은 정말 불편한 곳이었다. 나경이는 다소곳 하게 눈을 내리깔고 1시간째 지겹도록 천천히 나오는 코스 요리를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 이제 요리도 다 나온거 같은데 내가 몇가지 물어 봐도 되는거겠지?”



“그래 뭘 물어 보고 싶은지 한번 볼까? 내 나이가 이상한 거겠지?”



“그래”



“나 어릴 때 아버지가 사진을 찍으러 해외로 나가시면 곧잘 따라 나서곤 했어 물론 편안한 여행은 아니지 몇날 몇일을 사막에서 헤메기도 하고 .. “



음.. 저 왼쪽에만 쌍꺼풀 진 눈도 허공에 대고 저렇게 있으니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는군..



“이봐 유비 아저씨 듣고 있는거야?”



“어? 어.. 듣고 있지.. “



“난 유비 아저씨 한테 아직 듣지 못한 대답이 있어”



“그게 뭔데?”



“난 유비 아저씨가 좋와. 정식으로 사귀고 싶어”



또박 또박 눈을 똑바로 보면서 해도 좋은 걸까 저런 말을? 듣고 있는 나도 이렇게 고개가 왼쪽으로 자꾸만 돌아 가려고 하는데 이제는 차이가 많이 줄어 들었지만 여전히 나보다 나이가 훠얼씬 어린 꼬맹이가 그것도 여자가 어째서 저렇게 담담하게 국어책 읽듯이 말할 수 가 있는 걸까



“유비 아저씨 참고로 나 지금까지 초인적인 참을성을 보여준 거거든 가부를 빨리 이야기 해 줬으면 좋겠어”



“그.. 그런데 사람이 좋다 사귄다 하는걸 그렇게 딱 잘라서 달리기 시작 하듯이 금을 그을 수 있는거야? 난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말야.. 그.. 그 뭐시냐 그러니까 나도 니가 싫지는 않으니까 천천히.. 서로에 대해서 알아 가다 보면..”



“음.. 그건 나랑 사귀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 그게.. 저..”



“아닌거야?”



“그렇다기 보다....야.. 너 왜 그래… “



왼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무릅 걸음으로 다가오는 나경이를 피해서 비비적 비비적 몸을 틀다 보니 등이 금방 벽에 닫아 버렸다.



나경이의 날숨이 느껴질 만큼의 거리.. 더 물러설 곳도 없는데..



“고마워”



꼭 안겨오는 교복 입은 이 나이 많은 처자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등을 토닥여 주면서도 한숨이 절로 났다.



“유비 아저씨 잘 자고 들어가면 블로그 꼭 확인해봐~~”



경쾌한 엔진음을 뒤로 하고 Z3는 좁은 골목길을 날렵하게 빠져 나갔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멍한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뭐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 첫화면으로 들어갔다.



오늘 블로그 방문자는 21 명 입니다.


안부 게시판에 새 글이 있습니다.


나를 이웃으로 등록한 사람이 있습니다.








블로그를 클릭하자 이웃목록에 한명이 추가 되어 있었다.



Iamwhoiam



누굴까? 안부게시판을 클릭하자 의문은 사라져 버렸다.



유비 아저씨 나도 블로그 만들 었지롱 별로 쓸 건 없지만 그냥 유비 아저씨가 하는걸 보니까 나도 하고 싶어서 하나 만들었어 아직 뭘 써야 될지 뭘 올려야 될지 잘 모르겠네 블로그란거 미니홈피랑은 분위기도 틀리고.. 그냥 일기나 써 볼까? 나중에 생각해 봐야겠네..



‘드르르르륵’



책상에 올려 놓았던 핸드폰은 한차례의 바이브레이션과 함께 문자 한통을 내게 내 밀었다.



“여자친구가 운전을 해서 집으로 들어 갔는데 확인전화도 안하고 나 삐질꼬얍”



그 한쪽만 쌍꺼플진 나경이의 장난스런 미소가 저절로 눈앞에 떠 올랐다. 기분 나쁘지 않은 이 느낌



나경이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불쑥 하지만 차근 차근 내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