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11

초하류 2004. 12. 23. 15:33
“니 수진이랑 뭔일 있었나”



“뭐야 아침부터 귀찮게 왜 이래.. 절루 좀 가 임마”



태수는 첫번째 시간이 끝나고 난 후부터 줄곧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같은 질문을 앵무새 마냥 또하고 또하고 또해댔다.. 지치지도 않는 에너자이져 같은 놈..



“니 수진이랑 문 일 있었나 카이”



“야 밥 좀 먹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더라..”



“개? 개는 무니까 안 건들지 짜슥아 니가 개가?”



“무는 수가 있다 너~~”



“수지이가 우째 수업시간인데 니 옆에 안 앉는 것도 이상하고 니 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더라.. 니 수진이하고 어제 뭔일 있었제..”



“야 내가 수진이랑 뭐 뭔일이 있는 그런 사이냐? 밥이나 먹어라..”



잠깐 조용해 진건가? 태수 녀석이 끈질긴 질문 세례를 잠시 멈춘 사이 나는 급하게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강한 바이브레이션..



“유비 아저씨 뭐해?”



“어.. 지금 밥 먹는 중이야”



“그래? 나두 도시락 먹고 운동장에 잠시 나왔어 점심시간 여고란건 정말 끔찍하게 시끄럽거든 아 그리고 오늘 몇시에 끝나?”



“어 난 5시면 끝나는데 왜?”



“어.. 내가 저녁 해 줄라구..”



“뭐 저녁 니.. 니가 왜 내 저녁을 해줘.. “



“여자 친구 잖어 잘 모르나 본데 여자친구는 말야 자취하는 남자친구 집에 찾아가서 밥이랑 반찬도 가끔 해주고 그러는 거라구..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걸 다 사놓고 기다리 도록해”



“야.. 야 그런게 어딧어 나 니가 해주는거 안 먹어도 돼니깐.. “



“꼬막, 두부, 된장, 소금, 호박, 풋고추 매운걸로 두개,느타리버섯, 계란 두개 알았지 .. 하나라도 빠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 하나 빠뜨려서 확인해도 좋겠지? 그럼 있다 봐 안녕~~ 철커덕”



아 이 깔끔하고도 용건만 간단한 전화.. 그나 저나 멍한 내 얼굴을 처다 보는 태수가 뭔가 말을 꺼 내기 전에 여기를 빠져 나가야 겠는데 ..



“현덕아 누구냐 카이.. 짜슥아 니 진짜로 여자친구 생긴기가.. 그래가꼬 수지 찬기가 와 쯔슥 그래 안봤는데 완저이 프레이보이네.. “



내 주변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하나같이 내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데다 달변에 목소리까지 큰걸까..



“아냐 그런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수진이랑 내가 뭐 언제 사귀기라도 했냐? 나 수업 준비하러 간다~~ 맛나게 잘 먹어라~~”



뛰듯이 인문대 식당을 빠져 나왔지만 이제 어쩐다.. 나경이 성격에 틀림없이 오후에는 방에 처들어 올텐데..



방도 지저분하고.. 게다가 그 왈가닥이 음식 같은걸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를 짜고 매운 정채불명의 음식으로 고문하려는 생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경이가 내 방에 오는걸 막는다는건 이미 불가능 하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닳아 가고 있었나 보다.



난 어느세 집 앞 마트에서 나경이가 숨도 쉬지 않고 불러준 재료들을 바구니에 담고 있으니까..



빠진건 하나도 없겠지? 기억력 하나는 좋다니까.. 재료들을 사서는 원룸으로 힘껏 페달을 밟았다.

자 어디부터 청소를 해야 된단 말인가.. 침대를 빼고는 먼지 투성이에 .. 아 우선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속옷을 치우고..



쓸고 닦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드르륵 책상 위에서 홀로 몸부림 치는 핸드폰



“나 민국대 후문에 있어 빨리 데리러 와 뚜뚜뚜~~”



아 네.. 이제 서서히 이 간단 명료한 전화 통화에 익숙해져 버릴꺼 같은데..



자전거를 밟아 힘껏 밟아서 민국대 후문에 도착하자 청바지에 흰색 후드자켓을 입은 나경이가 보였다.



“유비 아저씨.. 좀 빨리 빨리 못와? 숙녀가 이렇게 기다려야 겠어?”



“미.. 미안 많이 기다렸니? “



“설마 나보고 지금 그 자전거 뒤에 타라는 건 아니겠지?”



이건 또 왠 트레이닝도 아니고.. 런닝을 하는 권투선수 처럼 제법 빨리 달리는 자전거를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야 이렇게 부실하면 안돼 난 부실한 남자친구는 딱 질색이란 말야 좀 더 빨리 못 뛰는 거야?”



원룸에 도착하니까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이 날 지경이었다.



“거기 화장실 세면대 옆에 빡빡 닦어 내가 다 검사 할꺼야..”



내가 사 놓은 제료를 흡족하게 바라보던 나경이는 원룸을 이리 저리 둘러 본 후 화장실 청소라는 미션을 선사했다.



이 구석 저 구석 세면대와 변기를 뽀드득 소리가 나게 닦고 나오자 오… 뭐지 이 놀라운 광경은..



보글 거리는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밥



“뭐해 너무 감격해서 그래? 빨리 일루 와서 먹어봐 “



된장찌개는 의외로 맛이 있었다.. 두부김치도 .. 하긴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때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나서는 이렇게 정식으로 밥상을 얻어 먹어 본적이 없었군.. 자취 생활을 하면서는 아에 원룸에서는 라면 이외에는 음식이라고는 만들어 본적이 없으니까..



“뭐야 먹었으면 가타 부타 말이 있어야지.. 평가를 해 줘야 할꺼 아냐..”



“어.. 어 맛있어..”



“정말?”



오늘 보니까 웃으면 눈이 반달이 되는군 예쁘다. 그런데 둘이서 머리를 맛 대고 이렇게 금방한 따뜻한 밥을 먹고 있으니까 뭐랄까.. 신혼부부같다고나… 뭐 뭐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런데 유비 아저씬 집이 지방이야?”



“아니 원래는 서울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내가 대학 들어 가고는 지방으로 도장을 옮겨 버리셨어”



“그래? 가족들 이야기 좀 해줘”



“아버진 유도 도장을 하셔 지금은 연세도 많으시고 해서 좀 덜 해 지셨지만 나 어릴때는 정말 무서웠어 새벽 4시만 되면 도장으로 끌고 가서는 한두시간쯤 나를 메치거나 조르시는걸로 몸을 풀곤 하셨지 지금은 예전만은 못하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정 하시지 지난번에 경찰서 간걸 아셨으면 난 아마 또 한시간쯤 이리 저리 메쳐지고 있었을 꺼야”



“그렇구나 그럼 엄마는?”



“어.. 어머닌 돌아 가셨어..”



“정말.. 괜한걸 물어 봤네..”



“뭐 이젠 괜찮아.. “



“어떤 분이셨어?”



“그냥 좀 소녀같으셨고 그랬지.. 내가 중학교 2학년 땐가 난 좀 무뎌서 사춘기 그런걸 못 격었거든 그래서 다른 애들은 반항도 하고 막 그러는게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나는 왜 안그럴까 하고 생각하다 하루는 나도 사춘기의 반항을 한번 해봐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지”



“그래서? “



나경이는 눈을 빤짝 이며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가을이었는데 낙옆이 바스락 거리는 길을 막 뛰어서 집에 갔어 그런데 인터폰을 아무리 눌러두 문을 안열어 주는거야.. 그래서 어머니가 어디 외출을 하셨나? 생각하면서 좀 맥이 풀리더라구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반항을 한번 해 볼라고 그랬는데 말야.. 그래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 갔지 그런데 부엌쪽에서 인기척이 나는 거야 부엌문을 열어 봤더니 어머니가 게시더라구.. 갑자기 짜증이 확 나는거야 문도 안열어 주고 벨 눌렀는데 안 들리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지.. 그런데 고개를 돌리시는 어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 그렁한거야”



“왜?”



“어머니 말씀인즉.. 가을에 낙옆이 떨어지는데 라디오에서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가 나오더라는거야 그런데 그 전주에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슬퍼서 울고 있었다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두손 들었지 사춘기를 꾸며서 한번 흉내를 내 볼려고 그랬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사춘기신거 같더라구.. 그래서 주제 넘게 흉내 같은거 내지 말고 자숙하고 살자 그렇게 생각했지..”



뭐.. 뭐야.. 이런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나.. 나경이 눈에 눈물이 그렁 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나경아 너 울어?”



“아.. 아니.. 유비 아저씨 이야기 들으니까 부러워서.. 아 다 먹었으면 이제 설거지는 아저씨가 해.“



돌아서서 잠깐 눈가로 손이 올라 가더니 휙 돌아서서는 침대에 팡 소리가 나게 올라 앉았다



“설거지 깨끗이 됐나 검사 할꺼야.. 똑바로 해”



야 빠르다 어느세 왼쪽 눈꼬리를 찡긋거리는 원래의 나경이로 돌아간 모습을 보니 아까 눈에 눈물을 그렁 그렁 달고 있던건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겨우 저녁 한그릇 얻어 먹고 이게 뭐야 너무 힘들잖아”



나경이는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로 태워 달라고 생때를 써 댔다 다행이 집이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전거로 거기다 뒤에 한명을 태우고 갈만한 거리는 아니어서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아저씨 여자친구가 어 혼자 사는 자취방에 가서 밥을 해 줬는데 이 정도는 기본 아냐? 자꾸 그렇게 말도 안돼는 소리 하면 나 삐짐 모드로 전환 하는 수가 있으니까 조용히 하는게 좋을꺼야”



아 저 카리스마 넘치는 똑 똑 떨어 지는 대사.. 정말 부러웠다



“자 인제 나 올라갈께.. 유비 아저씨 조심해서 돌아가 집에 도착하면 전화 하는거 알지?”



아파트에 도착하자 예의 깔끔한 대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내게 지시사항을 끝낸 나경의.. 어.. 눈이.. 나경이 눈이 왜 또 자꾸 커지는거지..



“나 갈께… “



주머니에 손을 꽂고 종종 걸음으로 관리실 앞을 통과하는 나경이 뒷모습을 보면서 오른쪽 뺨을 부여잡고 약 20초간 멍하게 서있었다. 뭘까 이 찌릿찌릿한 느낌은..



집을 향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엉덩이쪽에서 부르르 바이브레이션



나경이가 보낸 문자였다.



“아저씨 꼭 숙녀가 굿바이 키스를 해줄 때 까지 기다려야 겠어? 담번엔 알쥐 z(--* )z”



싱긋 웃음이 나왔다 받았으면 답장을 날려 주는게 예의겠지?



“알았어 너두 남자친구 한테 아저씨가 뭐야 오빠라 그래야지 담번에 또 아저씨라 그러면 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