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9

초하류 2004. 12. 23. 15:30
“지난 시간에 쳤던 당시 삼백수 중간고사에서 아주 희귀한 일이 발생 했어요 .. 음.. 현덕군 어딨나? 현덕군 고현덕군..”



거짓말 아니고 딱 죽을 만큼 졸렸다. 술 마시고 얼마 자지도 못한 몸으로 4시간여를 운전해서 나경이 집에 대려다 주고는 바로 뛰어온 터라 수업이 시작되자 바로 골아 떨어 졌었기 때문이다.



“네.. 네.. “



“저렇게 수업시간에 졸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는데요 현덕군은 이번에 출제된 시 중에서 딱 두 개 있는 교재의 오타를 그대로 써 버렸어요 음 수능 수석 하는 친구들이 항상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에 위주로 공부했다고 그러더니 현덕군은 수업은 몰라도 교과서 위주로 공부 한 건 틀림 없는 거 같구만”



키득 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웃지 않는 건 나 뿐이었.. 음.. 수진이도 웃지 않고 있었다.



표교수님의 일장훈시 덕분에 내 발표는 다음 수업시간을 미뤄 졌고 나는 한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린다 해서 고화백이란 별명을 하나 하사 받았다.



“선배 도대체 주말 동안 어디서 뭘 한거에요? 전화 아무리 해도 전화기도 꺼져 있고 그렇게 꺼 놓을 꺼면서 한달 이나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핸드폰은 왜 바꿨어요? 선배 걱정하느라 내 차례도 아닌데 준비하고 있는 내가 얼빠진 애지만 선배 너무 하는거 아니에요? 이제 벌써 3학년 2학기에요 다른 사람들은 취업이다 뭐다 해서 눈코 뜰새 없이 바쁜데 선배는 도대체 어디다 그렇게 정신을 팔고 있는거에요…”



저 살벌한 표정에도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이 통할까? 고민하고 있던 내 뒤통수에 난데없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퍽”



뒤를 돌아 보니 통쾌하게 비웃고 있는 태수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 왔다.



“아이고 이 짜슥아... 이래 이쁜 수진이가 니를 챙기 주는데 니는 정신을 어디다 놓고 댕기노 그래도 다 묵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우짜겠노 밥이나 머그로 가자”



“선배는 밥 밖에 몰라요 정말 살수가 없다니깐”



매섭게 쏘아 붙이고 돌아서 가는 수진이를 우리 둘은 멍하니 처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화를 내는 수진이를 본적이 처음이라 놀랍기도 하거니와 밥을 거절하고 가버리는 수진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야 현덕아 혹시 수진이 니 좋와 하는거 아이가?”



“뭔 소리야 임마 밥이나 먹어라”



“아이다 내 의심 스러 벘는데 오늘 보이까네 딱 느낌이 오는게 있제.. 수업 시간 다 돼 가니까 안절 부절 못하던 것도 그렇고 아까 니가 야단 맞을 때 그 표정을 니가 봤어야 돼는긴데.. 얼굴이 아주 울그락 불그락 총천연 컬러 무비드라..”



“아 몰라 나 요즘 그렇지 않아도 머리 복잡한 일 많어”



“짜슥아 내가 머리는 나빠도 눈치밥만 20평생이다 딱 보마 딱이라 카이께네.. 니 수지한테 잘해래이”



“싱겁기는 밥이나 먹어라”



“참 그라고 니 그거 모르제”



“뭐?”



“니 당시삼백수 시험 친 거 있잖아 표교수님이 칭찬을 마이 하셨다 그러 드라.. 정선배 알제 조교하는 선배 있잖아 그 선배가 그러던데 이번에 당시삼백수 들은 사람들 중에 A뿔따구는 니뿌일끼라 그라든데..”



“뭐 어차피 성적이 전부 시들 시들한데 한 과목 노 난다고 별수 있냐 밥이나 먹자”



밥을 먹고 나니 다시 졸음이 쏟아 졌다. 과사로 터덜 터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엉덩이를 흔드는 바이브레이션



“선배 어딨어 나 지금 과사에서 기다리니까 잠깐봐요”



과사에는 수진이가 예상보단 부드러운 인상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밥은 먹었어요?”



“어? 어 .. 태수랑.. 넌 밥 안먹어?”



“선배 여기 선배 오늘 발표 할꺼 내가 걱정 돼서 어제 조금 정리 해 왔어요 이거 참고해서 다음 시간엔 제발 좀 늦지마”



이제 10분만 지나면 오늘 수업도 끝이다. 수진이랑 같이 듣는 디자인과 생활 시간엔 졸음은 그쳤지만 피곤한 몸 때문에 어서 집에 가서 들어 누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수업을 마치자 수진이가 슬쩍 내 쪽을 보면서 말했다.



“선배 오늘 술 한잔 어때요?”



이런 이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데 ..



“아 미안 나 어제 일이 좀 있어서 너무 피곤한데 내일 마시면 안될까?”



“그럼 할 수 없지 뭐..”



수진이와 같이 걸어 나와서 인문대쪽으로 걸어 오고 있는데 인문대 앞에 왠 눈에 익은 자동차 한데가 서 있었다. 저 저건 .. Z4



“유비 아저씨~~~”



뭐야 나경이잖아 어째서 저런 꼬마 여자애가 아무렇지 않게 무면허 운전을 그것도 교복을 입은체로 할만큼 커다란 간뎅이를 보유할 수 있단 말인가.. 곤란해..



곤란하면 늘 나오는 버릇대로 내 고개는 또 왼쪽으로 왼쪽으로 돌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 딱 마주친 얼굴… 수진이었다.



“선배 아는 애야?”



“어.. 어..”



“어 유비 아저씨 이 언니가 어제밤에 그 깔끔이란 아이디의 주인공이야?”



“어젯밤?”



수진이 얼굴은 몇주전 현덕이가 생일날 받은 소주 삼배주를 흑기사를 자처하고 나서 스트레이트로 마셨을 때 만큼 벌겋게 변해 있었다.



“야 너 뭐 하는 애야? 보아 하니 고등학생 같은데 겁도 없이 차를 몰고 다녀”



“언니 고등학생은 운전 하면 안돼?”



“당연히 안돼지 운전면허 없이 운전한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 언니도 참 답답하네 고등학생은 운전면허 못 따게 법으로 정해져 있데?”



“참 맹랑한 고딩일쎄 아니 그럼 나이가 안됐는데 운전면허…”



수진이 눈 앞에 나경이가 들이 댄 운전면허증은 마치 타이타닉호를 침몰 시킨 빙산처럼 수진이의 그 청산유수 같은 말빨의 허리를 동강 잘라 버렸다.



잉? 이게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나경이가 운전면허가 있을 수 있지? 나경이가 고등학생이 아닌건가? 그렇담 저 입고 있는 교복은 뭐란 말인가.. 머릿속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은 싸구려 이어폰줄 마냥 복잡하게 헝크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