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12

초하류 2004. 12. 23. 15:33
"자 아~~~"



나는 눈을 껌뻑이며 입을 벌렸다.



입안으로 쏙 들어 오는 김밥, 눈 앞에는 왼쪽눈에만 쌍커플진 나경이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괘고 내 얼굴을 처다 보고 있다.



점심시간 즈음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나경이는 금방 김치볶음밥 한그릇을 먹고 나온 나를 학생식당으로 끌고 들어 와선 보기만 해도 질리게 많은 음식들을 꺼내서 진열하기 시작했다.



김밥, 김밥, 김밥.. 또 김밥...



나경이는 열심히 김치김밥, 치즈김밥, 참치김밥 등등 자신의 김밥의 분류와 맛 그리고 특장점들을 쫑알 거리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들은 모두 그냥 김밥 김밥 김밥들 이었다.



게다가 난 방금 배부르게 김치볶음밥을 먹고 난 후란 말야..



"맛있어?"



눈을 찡긋 거리며 어느세 김밥 하나를 또 들이 미는 나경이..



"어.. 어 맛있지 당연히 누가 만든건데.."



이럴때는 먹성이 좋은것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근데 오늘 학교는 어쩌구 김밥을 이렇게나 많이 싸온거야?"



"아 담탱이 한테는 오늘 오전에 병원 가야 된다고 뻥쳤어 나 오늘 이거 만드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어? 아저.. 아니 오빠 덩치가 좀 커야지. 그래서 내가 특별히 3인분이나 싸왔단 말야.. ^^ 남기면 어떻게 되는지 궂이 알고 싶지는 않겠지?"



"남기기는 정말 맛있어"



나를 처다 보는 저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웃고 있으니까 내가 먹고 있는걸 보는게 즐거운 거겠지? 그렇다면 까짓거 죽는것도 아닌데 내가 먹어 주지 뭐..



꾸역 꾸역 김밥을 넘기고 있는데 나경이 머리 뒤로 반가운 얼굴이 하나 불쑥 나타났다.



"현덕아 니 여서 머하노.. 와 이기 다 뭐꼬 니 김밥집 차맀나?"



"오빠 아는 교수님이셔?"



"교.. 교수라니오 저는 현덕이랑 둘도 없는 같은과 동기 태수라꼬 합니다. 전화 통화 하는거 마이 들었어에.."



"네.. 태수오빠 점심 먹었어요?"



"아 .. 지는 좀 볼일이 있어가 인자 묶으러 왔꺼든에~~"



"그래요? 그럼 태수 오빠도 여기 앉아서 같이 먹어요"



오 태수야 너야 말로 나의 구세주 나의 흑기사다.



"그런데 현덕이랑은 우찌 만났으에?"



"아 현덕오빠요.. 우연히요.. 현덕 오빠가 갑자기 제 손에 핸드폰을 쥐어 주고 달아나 버렸거든요.."



이.. 이런 이건 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건 명백히 사실에 대한 고의적 조작이라구



"그.. 그게 아니고"



갑자기 입으로 디밀어져 오는 김밥을 입에 물고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래에 그런데 듣자하이께네 고등학생인데 나이가 많타 카데에.."



"어떻게 아셨어요?"



나경이의 눈에 장난기가 번들 거렸다.



"다 아는 수가 있찌에 제가 이래뵈도 정보통 아입니꺼 현덕이가 잘 해주는가에"



"그럼요 우리 현더 오빠가 얼마나 자상한데요 전화도 짱 자주 해주구요 문자도 30분 단위로 한통씩 꼭꼭 넣어 주잖아요"



"와 그래에.. 대단하네에.. 어수룩해도 착한 놈입니더 공부를 쪼끔 못해서 그렇지 힘도 쎄고 마당쇠로는 국산중에 몇번째 안에 들끼라에.. "



아 저런 쓸대없는 이야기를 어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잘 하고 있을까나..



"데이트 하는데 너무 오래 있었지에.. 지는 고마 일어 나께에.. "



이런걸 보고 경이롭다고 하는거 같다. 나경이와 쉴세 없이 이야기를 하며 5분도 체 안돼는 시간을 앉아 있었던 태수가 일어나자 김밥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와 저 오빠 완전 진공청소기네.. 언제 이 많은걸 다 먹었데.. 오빠.. 충분히 먹은거야?"



"어 나.. 난 배불러.. 고맙다.. 근데 이제 이런거 싸오고 그러지마 너도 고생스럽구 나도 부담스러워.. 게다가 넌 학교도 빼먹었으니 아버지가 아시면 큰일날꺼야"



"학교? 그런게 괜찮아 아빠가 아셔도 아마 그러라고 하셨을꺼야.. "



나경이는 생글 생글 웃으며 빈 찬합을 주섬 주섬 챙겨 넣고 있었다.



"나경이 오늘 무슨 좋은일 있어? 유난히 싱글 벙글이네?"



"어.. 그.. 래? 아~~ 오빠가 내가 싸온 김밥 너무 맛있게 먹어 줘서 그런가봐"



"이제 학교 가 봐야지?"



"어 그런데 오빠 나 오늘 저녁에 부탁할게 있어"



"뭔데?"



"나랑 사진 찍으러 가자 친구들이 오빠 사진 보여달라고 막 난리야.."



"어.. 그러지뭐.. "



"그럼 있다 전화 할께... 오빠 수업 마치면 전화해~~ "



나경이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나서 돌아 서려 하자 뒤통수는 온통 따가운 시선들이 꽂히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비정상이지...같이 걸어와서 Z4 트렁크에 찬합을 넣어 주곤 운전해서 떠나는 여고생을 향해 다정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복학생이란건 누가 봐도 이상한 그림이니까..



고개도 못들고 자리를 피해 강의실로 넵따 뛰는수 밖에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도 마찮가지였다. 여고생이 모는 스포츠카에 타는 복학생이라니..



"사진 찍으러 어디가는거야?"



"어 봐둔 스튜디오가 있어 아빠랑 잘 아는 아저씨 스튜디온데 분위기도 좋구 이쁜 소품도 얼마나 많다구.. 오빠도 맘에 들꺼아.."



"오빠 빨리 나와~~"



이게 뭔가.. 이것 저것 걸치고 사진을 찍던 나경이는 급기야 결혼드레스까지 걸치고는 턱시도를 들려서 탈의실에 나를 밀어 넣었다.



턱시도라니.. 양복도 잘 입지 않는 내겐 어색하기 짝이 없는 옷이었다. 삐끄덕 문을 열고 나서자..



"헉.."



와 옷이 날개란 말은 옛말이 아니었다. 드레스를 입은 나경이는 정말 딴 사람처럼 예뻤다. 신부가 이쁜건 아마도 결혼 드레스에 뭔가 마법 비슷한것이 걸려 있는거 아닐까란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 순간..



"이쁘냐니깐"



나경이의 목소리가 높은 미쪽으로 미끌어져 올라가고 있었다..



"어.. 와 진짜 이쁘다.. 근데 이런 사진까지 찍는건 좀 오바 하는거 아냐?"



"오빠 그래서 지금 찍기 싫다는 거야?"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냥.. "



"와 나경이도 남자친구분도 참 잘 어울리네요 말리긴 했지만 저도 한컷 찍어 드리고 싶은데요"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척 보기에도 아티스틱하게 생긴 아저씨는 더 이상 굵기 힘든 멋진 목소리가 들리자 나경이는 보란듯이 턱을 한껏 치켜 들었다.



"봐 아저씨도 잘 어울린다 그러잖어 내가 이렇게 입고 찍고 싶은 생각이 뭐 아무나랑 들고 아무때나 드는줄 알어? 오빠 빨리 일루 못와?"



쭈삣 쭈삣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라고는 하지만 아저씨는 교묘하게 내 근육을 비틀어 놓아서 금방이라도 쥐가 날것만 같은 어색한 포즈로 만들어 놓았다. 나경이는.. 와 정말 타고난듯 주문대로 척척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빠 사진 모델 해 준것만 해도 내가 거의 프로거든.. "



사진을 다 찍고 옷을 벗으려니 힘들어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릴 지경이었다. 자연스럽게 잘 찍는다 싶더니 나경이도 교복 윗옷이 땀 때문에 젖어서 등에 달라 붙을려는 지경이었다.



"나경이도 안 그런척 하더니 힘들었다보네 이렇게 땀을 흘리는걸 보면.. "



"어.. 어.. 조명이 좀 덥더니만 그렇네.. "



"날씨 쌀쌀한데 감기 걸리면 어떡하지 내가 잠바 벗어 줄까?"



"아냐 됐어 그리고 그 잠바 안 이뻐서 입기 싫어 "



꽈당 ..



"오빠.. "



아 나는 왜 이럴까..



집앞까지 와서 오늘은 먼저 굿바이 키스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경이 손을 슬쩍 잡자 땀이 배서 촉촉한 손.. 나경이도 긴장을 하는구나..



천천히 나경이 얼굴을 왼손으로 쓰다 듬으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 갔다.



스르르 감기는 나경이의 눈.. 이제 조금만더.. 으.. 그런데 Z4의 시트가 나를 막아 섰다... 조금 엉덩이를 들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긴장한 탓일까.. 그만 차지붕에 머리를 부딫히고 말았다.



"쿵.."



나경이가 눈을 움찔 하는 순간 .. 에라 모르겠다 빠르게 몸을 숙인다는게 그만.. 나경이의 시트를 뒤로 젖혀 버렸던 것이다..



멋지게 굿바이 키스를 하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집으로 터덜 거리고 돌아 가고 있는데 엉덩이가 또 다시 부르르 떨려 왔다.



나경이의 문자였다.



"오빠 오늘 너무 터프한거 아냐? 다음엔 좀 더 부드럽게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