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21세기, 미디어, 정치 그리고 광우병

초하류 2008. 5. 13. 20:59
어릴적 소년중앙에서 로벗 찌바가 설명해주던 21세기는 언제나 쾌적하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낙원이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가는 21세기는 911테러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문을 이후 낙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진행중이다.

우선 국민들은 광우병이라는 보이지도 피할 수도 없는 사회적 공포와 맞서 싸우고 있다. 광우병이 이렇게나 사회적 패닉현상을 일으키는 까닭에는 100%라는 치사율도 한몫 하고 있지만 걸렸는지 안걸렸는지 알 수 없는 광우병의 특징이 자리 잡고 있다. 10년 이상이라는 긴 잠복기를 가진 이 새로운 유형의 질병은 인간성을 완전히 망가트리는 비참한 말기 증상으로 그 완벽에 가까운 21세기형 공포를 완성하고 있다

국민이 이렇게 광우병이라는 공포에 몸서리 치고 있을때 집권여당은 거리와 인터넷 포탈에서 진행중인 컨트롤 할 수 없는 민중의 소리라는 21세기적 실제와 부딪혀 허둥지둥 하고 있다. 투표를 통해 당선이란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국회에 모여서 하는 것이 정치이고 고시에 가까운 어려운 시험을 거쳐 들어가서 그 자리를 잃어 버릴까 두려워 데스크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 기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미디어다라는 기존의 개념은 앞집 순이도 옆집 돌이도 참여하고 의견을 모아 자신들을 압박할 수 있는 포탈의 덧글이라는 미디어와 오프라인의 촛불을 든 거리에서 진행되는 진정한 직접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치인들을 완전한 혼란속으로 밀어 넣었다.

광우병이 가진 쇠고기의 직접 섭취이외에도 의약품 및 화장품에 까지 넓게 펼처진 저인망식 감염경로는 FTTH 진정한 광통신망으로 이어진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가는 온갖 포탈과 개인 블로그와 맞닿아 있으며 끓이거나 소독해도 없어지지 않고 10년이란 긴 잠복기때문에 어디서 걸렸는지 언제 걸렸는지도 알 수 없는 광우병의 특징은 중앙이나 핵심 몇몇이 컨트롤 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고 그들말에 의하면 판단력이 미숙한 중고등학생이나 야당의 정치적 선동에 휩쓸린 어리석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지라 이제까지 정치권에서 전가의 보도로 사용했던 로비나 뇌물은 물론이고 마땅한 탄압의 주체도 발견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맞닿아 있으다.

인간은 누구나 알수 없는 것 컨트롤할 수 없는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점에서 정치권과 우리 국민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국민의 두려움은 생명이라는 좀 더 본능적인 깊숙한 곳에 닿아 있기 때문에 좀 더 처절하고 적극적이다.

이런 차이는 키보드 몇번 두드리면 자신이 한 발언을 동영상으로 일목 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는 이 빌어먹을 21세기에도 정치인들이 인간 기억력의 한계에 기대어 일삼던 오리발, 괴담, 야당의 정치적 공세, 좌파, 선동, 경찰력 동원이라는 20세기 낡은 대처법으로 구태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동안 국민들은 온라인의 각종 도구들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모으고 세력을 만드는 동시에 거리로 나가 촛불을 켜고 온라인으로 모았던 실체를 눈과 몸으로 확인하는 적극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차이로 표현되고 있다.

유럽이 스스로 자신들의 왕을 단두대에 올리고 그 손에 피를 묻히고야 쟁취한 민주주의를 교육과 선행학습으로 비교적 손쉽게 받아들인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생명의 위협 앞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학습하고 있는 중이며 정치인에게 도덕적 잣대가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수고는 어쩔수 없는 업보라 생각하자. 전두환도 노태우도 대통령이 되던 20세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21세기가 될수 있도록, 고생이 되더라도, 힘들더라도 그저 내야 하는 세금이려니 생각하고 즐겁게 저항하자. 광우병, 의보민영화, 공기업민영화 등등 아직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리고 다음에 우리손에 칼이 돌아 왔을때 잊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그날까지 대한민국에서 살아 가기 위해서는 아직 조금 더 치열해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