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헤어지다

초하류 2006. 1. 10. 15:19
그래 그날은 하늘이 그렇게 파랄수가 없는 그런 날이었어

손을 충분히 높이 들수만 있다면 손바닥 가득히 파란물이 묻어날것만 같은 그런날이었지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이 적당한 크기로 둥둥 여기 저기 떠 있었어

오랜만에 가벼운 옷으로 소풍 나온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겨루기라도 하는것 처럼 행복한 웃음으로 사뿐 사뿐 걸어 다니고 있었지

그렇게 하늘이 파랗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이쁜 하얀 구름이 떠 있지만 않았다면

난 아마 그 벤치에서 일어 나지 못했을지도 몰라

사람들이 많이도 지나 다니는 그 벤치에서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서 울어 버렸을지도 몰라

"미안해 지금 생각해 보니 결혼할 만큼은 널 사랑하지 않은거 같아"

내 눈을 처다 보며 말 하지 않은건 너도 나만큼 힘들기 때문이었을까? 굳은 표정으로 똑바로 그렇게 앞만 보며 말하는 니 옆모습..

눈매가 참 선하고 날렵한 콧날이 참 예쁘구나 ...

반지를 빼서 내 손에 쥐어 준 후 또박 또박 이야기 하고 잠깐 앉아 있던 니가 휙 일어났지 그리곤

갑자기 앉아 있던 벤치가 엘리베이터 안에 장치된것 마냥 아득하게 아래로 아래로 가라 앉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어선 니 얼굴 바로 뒤통수 쪽에 해가 떠 있었지 역광으로 비춰서 지나치게 밝은 니 머리카락 가장 자리와 반대로 지나치게 어두운 니 얼굴 때문에 현실감이라곤 눈꼽 만큼도 들지가 않았던 거야

난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스르르 밀려 내려가고 넌 자꾸만 아득해 졌었지..

한참을 아무말 없이 허우적 거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어

그런데 웃기는건 조금전 까지의 상황이 전혀 와 닫지가 않는거야 백일몽을 꾼것 처럼

그러다 땀이 배게 꼭 쥔 오른손을 펼쳐보니 그 안에 언제 들어와 있었는지 반지 하나가 들어 있더라구

깔끔하게 장식하나 없는 링으로된 18k 반지.. 사이즈만 다를뿐이지 내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와 똑같이 생긴 그 반지가 내 오른손에 꼭 쥐어져 있었어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군

아 나는 이제 헤어졌구나

하늘이 그렇게 파랗고 바람은 따뜻했지 예쁜 구름이 적당한 크기로 둥둥 떠 있는 그날 그렇게 햇살 좋던 하필 그날에..

말없이 반지를 들고 금방에 가서 몇장의 만원짜리와 반지를 바꾸고 친구들과 떠들면서 술을 마실때 까지는 멀쩡한지 알았어

자려고 눕기 전까지도 아무렇지 않았어

숨이 막혀서 한참을 눕지 못했고 눈물이 자꾸 흘러서 베개가 축축해 졌지만 그건 단지 그날 내가 마신 주량을 한참 넘어선 소주 때문이었을꺼야

그러니까 차리리 니가 나은거야 이렇게 비가 오는날 헤어졌으니까

비가 오는날은 어쩐지 헤어지는게 낯설지 않잖아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너무 자주 봐온거니까 이제 잠시후면 난 이 까페에서 일어 날 수 있을꺼야 그리고 또 내 손에 남은 이 반지를 만원짜리 몇장과 바꿔서 술을 마시겠지 친구들이 바쁠지도 모르겠지만 나오라고 때를 쓸 참이야.

뭐 어때 사랑하다 헤어지고 죽을듯이 가슴이 아프지만 그것때문에 죽을만큼 약하지 않은 나란걸 이미 알고 있는데 그걸로 된거지.

부디 잘가 안녕

'창작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옷을 사야 하는 이유  (27) 2006.04.11
솔로 K씨의 영화보기  (10) 2006.01.12
친절한 미희씨  (3) 2005.10.21
나의 왼손  (0) 2005.10.11
Get down on your knees  (0) 200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