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나의 왼손

초하류 2005. 10. 11. 20:51
분명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냈는데 아직도 눈 앞은 어둠이었다. 감았던 눈에도 어둠에 익숙해질 몇 초는 필요한 걸까? 머리맡을 더듬어 간신히 건져 올린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자 대낮에는 보이지도 않던 약한 빛이건만 눈이 부셔왔다. 구급차를 부르기엔 너무 낮지만 숙면을 취하기엔 또 너무 높은 열로 온 몸이 덜덜 떨려 왔다.

"2시 30분"

덩달아 흔들리는 핸드폰의 액정에서 깜빡 거리는 시계가 자꾸만 촛점이 흐려 지는걸 보면 예사열이 아닌 건가? 덜컥 겁이 났다. 퇴근길부터 으실으실 해오던 몸으론 길 건너 약국이 눈에 띄었지만 15M나 돌아가야 하는 건널목까지 가는 것은 게으른 내게 너무나 귀찮은 일이었다.

"그때 해열제를 샀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서울로 상경해서 혼자 살아온 지 5년째지만 이렇게 까지는 이렇게 아팠던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내 몸에서 나오는 날숨이건만 코끝이 뜨거워 왔다. 열이 심하게 나긴 나는가 보다. 잔병치레를 잘 하지 않는지라 몇 년 만에 한번씩 이렇게 열이 오르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 질 수가 없다. 목이 자꾸만 말라서 몸을 일으켰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도 없이 벌컥 벌컥 마셨다. 건강한 몸이었다면 짜릿한 쾌감으로 다가왔을 차가운 물의 느낌이건만 갑작스레 들이 부은 차가운 물 덕분에 뒷머리는 띵하고 목도 따가워 왔다.

힘들게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잠깐 비운 사이 어느새 침대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감기에 걸리면 좋은 소리를 못 들어 보고 자란 터였다. 어머니는 감기에 걸려서 골골거리면 언제나 어린 놈이 감기에나 걸린다며 야단을 치셨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고도 항상 혼자 앓곤 했지만 나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런 혼자인 곳에서 감기에 걸려 앓는 것은 역시나 서러운 일이다. 이불을 둘둘 말고 눈을 감아 봤지만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일 출근할 일도 걱정 이었다. 당장 이러다 잠이 들면 알람 소리나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노릇이고 출근을 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업무처리는 불가능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누군가 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었다.

"아직도 왼손뿐인가?"

돌돌 말고 있던 이불에서 왼손을 꺼내 벽에 갔다 댓다. 선듯한 벽 그렇게 벽에 대고 식힌 왼손으로 머리를 지긋이 눌렀다. 내 몸이고 내가 항상 사용하지만 그나마 가장 낯 설은 내 왼손은 그날 밤도 나를 위로해 주고 간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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