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51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3

3. 너에 진통이 느껴져(2011.09.04 21:00) 택시 안에서도 마눌님은 핸드폰에 문자로 진통 시간을 계속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띵똥, 띵똥~~ 덩달아 제 스마트폰도 진통 시간 메세지가 알람으로 계속 울려댔습니다. "자기야 그거 소리 좀 꺼.." "알았어.." 소리를 끄자 이번엔 스마트폰 진동이 드륵 드륵 울립니다. 마눌님이 아프기 시작할때 아픈게 끝났을때 스마트폰도 같이 진동을 울립니다. 제 오른손을 쥔 마눌님의 손이 움찔 하고 나면 잠시후에 스마트폰도 같이 우웅 울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차는 어느세 아파트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날씨도 선선하니 출산하기 딱 좋은 날씨에요. 요즘 스마트폰으로 별게 다 된다더니 애기 태어나는 것도 뭔가 신호를 주는 모양이죠? 순산하세요~" 택시 기사님이 덕담을 뒤로..

창작극장 2018.03.14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2

2. 선물(준 것과 받은 것) 결혼하고 8년째였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처음 4년간은 주말부부여서 피임을 했지만 주말부부를 그만두고는 딱히 피임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질 않더군요. 한의사이신 외삼촌은 어머니 닦달에 아이 서는데 좋다는 약을 지어 주시면서 특유의 걸걸 한 목소리로 말씀 하셨습니다. "너거뜰 혹시 피임하나?" "아뇨 .. --;;" "그라마 너거들 전에 피임 했었나?" "주말 부부일 때는.. --;;" "너거들 피임 그기 그냥 하는 거 같은데 조심해야 된데이.. 몸이 피임에 적응을 하거든.. " "네 잘 알겠습니다.~ --;;"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뭐 그런 소리를 하시나 했었는데 결혼 한지 8년째가 되니까 저도 좀 걱정이 되더군요. 어른들의 닦달이야 그렇다 치..

창작극장 2018.03.14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1

1. 예측은 했지만 알 수 없었던 그날(2011.09.04 17:00) 9월, 달력은 가을이지만 아직은 여름이 많이 남아 있는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출산 예정일이 이틀 지난 마눌님은 뭔가 운동을 해야 한다며 잘 굽혀 지지도 않는 허리를 숙이고 거실을 닦는다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자기야 그러지 말고 우리 한강에나 갈까?" 배가 불러오면서 몸이 무거워져 답답하다며 자주 놀러 간 한강. 그늘막을 둘러 매고 도착해보니 한낮의 쨍 한 기운은 좀 가셨지만 여전히 햇볕이 따가웠습니다. 여기 저기 돗자리를 펴고 그늘막을 치고 앉아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인들 가족들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 그늘막을 쳤습니다. "자가야 조이한테 나중에 보여주게 동영상 하나 찍을까?" "시~~~로" 하지만 여자의 싫어..

창작극장 2018.03.14

2316년 신혼여행

"자기야 괜찮아? 지금 패트롤 불렀어 금방 올꺼야 정신 차려~~ 나 보여?" 삐삐 거리는 경보음과 유정씨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금 이간 고글 유리 너머로 붉은색의 경고 싸인이 일그러진 체로 팔딱거렸다. 슬로프 왼쪽에 큰 바위를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 바위는 마치 점프를 하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만든 것 같은 각도로 예쁘게 눈을 뎦어 쓰고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바위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점프를 시도했지만 점프는 불가능했다. 매끄러운 곡선인줄 알았던 바위는 가운데가 커다랗게 갈라진 두 개의 바위였고 그 결과 나는 달려 오던 속도에 더해 마치 고장난 투석기가 바위를 바로 앞의 땅에 내리 꼿듯이 앞쪽에 패대기 쳐졌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유라시아 횡단열차 여..

창작극장 2017.05.10

이브를 위하여

신령스럽게 타고 있는 불의 가운데가 살짝 이지러졌다. 마치 여호와의 미간이 찌프려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호와는 벌써 30분째 주저리 주저리 불평을 하는 아담을 과연 신적인 인내심으로 꾸욱 참고 들어주고 있었다. "여호와여 저는 이브가 왜 토라져 저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지 도저히 알지 못하겠나이다. 어제 여호와께서 일러주신 대로 이브가 정말 바라는 것을 해주기 위해 갖은 과실과 약초를 먹고 자란 통통한 산비둘기를 사냥해 주었고 낮에 잠시 내린 소나기에 조금 젖은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동굴에 보관해 두었던 부드럽고 푹신한 면화 솜으로 바꿔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 지기는 커녕 점점 얼굴이 어두워 지더니 푹신한 잠자리 대신 딱딱한 바위 위에서 하늘만 처다 보고 있습니다. 정말 답답해서 미..

창작극장 2011.08.05

[단편] 8:30

목도리에 파묻은 턱이 차가운 정도를 지나 이제는 얼얼해 왔다. 주머니에 넣은 손은 좀 덜했지만 딱딱한 가죽과 얇은 양말 정도로만 보호 받고 있는 발은 그 끝 단부터 아려오기 시작한지가 이미 오래 전이었다. 슬쩍 시계를 봤다. 8:30 시간을 잘못 볼 한치의 여지도 없는 액정화면 속 숫자들은 또박 또박 내가 시계를 보고 있는 사이에도 깜빡 거리는 두 개의 점에 맞춰서 초 쪽으로 더하기 일을 해대고 있었다. 약속장소인 스타벅스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길 건너편. 약속시간인 8시에서 이미 30분이 지나고 지금도 깜빡 거리는 초단 위 시간들이 약속시간에서 멀어 지고 있는데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이윽고 다시 깜빡이다 붉은색으로 바뀔 때도 나는 여전히 코를 머플러에 묻은 체 발만 동동 거리고 있었다. "나 할말 ..

창작극장 2010.08.17

매미

흙벽들이 따듯해 지기 시작했다. 땅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만큼 따뜻해졌다. 껍질속의 몸도 벌써 근질 근질 한것이 변태할 준비가 끝난것 같다. 드디어 기다리던 일곱번째 여름이 찾아왔다. 이곳으로 들어올때 그랬던 것처럼 이제 혼자 힘으로 이곳을 헤쳐 나가야 할 때가 온것이다. 그동안 작은 흙방에서만 7년을 지냈는데 과연 저 지붕을 뚥고 흙을 헤치고 지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앞발을 모아서 눈을 몇번 쓰다듬고는 지붕을 한번 처다 보았다. 오줌으로 버무려 단단하게 발라놨던 지붕은 어느세 여기 저기 균열이 생겨 있었지만 그렇게 녹녹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앞발을 잔뜩 세워서 흙을 긁어 냈다. 파고 내려 올때는 그저 흙을 파헤쳐서 오줌으로 버무린 후 ..

창작극장 2009.08.08

흡연인의 가치

김과장은 상반기 영업결산 회의 내내 너무나 불편했다. 김과장이 이끄는 영업 1팀의 실적이 저조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그 실적을 한눈에 쏙 들어오게 잘 그린 그래프가 비친 스크린이 조금 삐뚤어진 것 같아 보이는 것이 두 번재 였고 지금 진행되는 회의가 김과장이 다니는 한단물산에서 열리는 첫 번째 금연회의라는 것이 세 번째 이유였다. 올해 시장전망에 대한 비관적인 분석 자료와 함께 남은 하반기 영업목표치를 1500억에서 1200억으로 대폭 낮춘다는 전략기획팀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3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가 끝이 났다. 김과장은 사방이 유리로 막힌 좁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한가치 입에 물었다. 회의실에선 에어컨 탓에 느끼지 못했던 끈적한 장마철 기온이 흰 와이셔츠 깃 위에 단정하게 메어진 넥타이를 갑자기 답..

창작극장 2009.08.06

그 남자의 특별한 사정

겨드랑이에 털이 자라기 전까지는 저도 교과서 보다 만화책을 좋아 하고 프라모델에 열광하며 석차도 걱정이지만 주먹싸움에도 지기 싫은 보통의 평범한 남자 아이였어요. 하지만 겨드랑이에 털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송곳니가 자라기 시작한 거에요. 어릴 때는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날카로왔을뿐이었 거든요 그런데 이놈에 송곳니는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다른 이들보다 커지더군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송곳니들 때문에 입을 꽉 다물고 있기도 힘들고 음식을 먹을 때도 꼭꼭 씹어 먹을 수가 없어서 설사를 하기 일쑤였죠. 단순히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날카롭기는 또 어찌나 날카로운지 거울에 비춰보는 나 스스로도 오싹할 정도였어요 외모에 한참 민감할 나이지 않습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창작극장 2006.08.31

좋은 옷을 사야 하는 이유

이미 술은 취했다. 사물이 조금씩 두겹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주량을 조금 넘어 었으리라. 친구 녀석은 돈이 한푼도 없다며 내게 계산을 종용하고 있었다. '야 내가 보고 싶었던 만큼 그만큼 물리적으로 증명해봐'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술 한잔 하자던 때와는 180도 변해 버린 희희덕 거리는 녀석의 그런 표정을 한번 두번 보아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따라 기분이 상하는 까닭은 녀석이 입고 나온 버버리체크 남방 때문이었다. 거칠게 여기 저기 구겨 지고 정리되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저 얇은 셔츠 한벌에 족히 30만원은 넘으리라. 이번주 주말에도 백화점 쇼윈도 앞에 있는 버버리 체크 치마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던 집사람 생각이 나서 심사가 뒤틀려 왔다. '야 동내 호프집에서 500 몇잔 마실 돈도 없는..

창작극장 200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