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블로그 연속극] 요즘사랑 - 4

초하류 2004. 11. 17. 15:26
고현덕 고현덕씨 이리 나오세요



아이고.. 역시나 차가운 바닦에서 쪼그리고 자는건 허리에 심하게 부담을 주는 행위였다. 이런 곳에서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조차 잠들 수 있다는 내 자신에게 새삼 놀라웠다.



“피해자가 합의를 해 줬어 이 친구야 군대도 갔다 왔으면 이제 세상 알만큼 아는 친구가 그런 대로변에서 싸움박질을 하면 어떻게 해 . 다음부터는 성질 좀 죽이고 살어..”



파출소에서 나와서 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갔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을 메쳤다는게 아버지 귀에 들어갔었더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난 적어도 한달은 꼼짝없이 아버지와 대련해서 온몸 구석 구석이 남아 나질 않았을 테니까..



“팔로 버티지 말랬지”



“꽈당”



“엉덩이 빼지 말라고 내가 몇번이나 말했어”



“꽈당”



“매쳐 질 때 누가 매달리라고 하더냐”



“꽈당”



“빨딱 일어나지 못해? 몸이 기울어 지면 바로 낙법으로 들어가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아버지의 유도 도복 검은띠에 금실로 세겨진 名人이라는 한자를 한글도 배우기전에 뜻도 모르고 외웠던 내게 아버지와의 유도 수련은 끔직한 것이었다. 당신은 그렇게 나를 매치고 굳히고 꺽고 조이셨으면서도 정작 학교에서 사소한 시비라도 붙을라 치면 그날은 하루종일 도장 바닦을 굴러 다녀야 했다. 지긋지긋한 그놈에 유도..



어제밤에 나를 잡아 오는 그 놈을 반사적으로 배대되치기로 던져 버렸을 때 마침 호프집 아저씨 께서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 아저씨들에게 날아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녀석은 어디가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졌을 꺼였다. 제법 서기 자세가 안정 되 있어서 좀 심하다 싶게 매쳤더니 그렇게 허당으로 허우적 거리며 날아 갈때는 내가 다 아찔했었으니까..



어제 일이 아버지 귀에 들어갔더라면 에효~ 허리도 안 좋으신 당신이 눈치 못 체시게 메침을 당해 드리는건 그야말로 곤역이 아닐 수 없으니까



하긴 요즘은 당신도 성격이 많이 누그러뜨려 지셨으니까 혹시 팔굽혀 펴기 100번 정도의 가벼운 벌로 넘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원룸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부르르 엉덩이를 자극하는 강한 바이브레이션… 이거거덩 .. 새거라 진동도 강력하고 말이야



“여보세요”



느긋하게 전화를 받아 들었지만 그 여유는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샵 붙은 수진이의 목소리와 함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선배 도데체 어디 있는거야 오늘 시험인거 잊었어? 지금 몇신줄 알어? 오늘 아침부터 내가 얼마나 전화 했었는데 전화기 꺼 놓고 어디서 뭘하고 다니는거야…”



“고현덕 너 아침부터 인문대 앞에서 여고생 붙들고 난리 부르스를 출 때 말이야 내 딱 알아 봤다 정신을 어디 빼 놓고 다니길래 전공필수 중간고사 시간에 지각씩이나 하니 어?”



15분 지각에 선생님께 10분을 야단 맞고 나니 정작 시험 칠 시간은 30분 밖에 없었다.



칠판에는 여지껏 배운 당시삼백수 중에서 10편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내가 자신 있게 잘 할 수 있는 것이 두가지 인데 한가지는 유도 그 다음이 단기 기억력이다. 늘 벼락치기로 시험에 나올 뭔가를 외울 때 마다 죄책감 비슷한게 들곤 하는데 컨닝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노트를 넘기듯이 어제 외운 책을 머릿속에서 한 페이지씩 넘기면 책 안에 있는 내용들이 내용으로 떠오르는게 아니라 마치 600백만화소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고해상도 이미지처럼 이미지 그 자체로 눈 앞에 보인다. 그걸 머릿속으로 한장씩 넘겨 가면서 필요한 내용을 이미지와 똑같이 그려 넣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팔이 아프게 당시 10편을 다 적고 나오자 이번엔 수진이의 부릅뜬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피해간단 말인가.. 일단 눈은 웃기 시작하면서 사태를 무마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수진이 뒷편에서 반가운 얼굴이 스윽 나타났다.



“현덕아 니 시험 잘 첬나 노쌍 자디만 니 자다 늦었제 짜슥아.. 그래도 다행이다. 니는 내 밑에 깔아 줄꺼 아이가..헤헤헤”



어제 그 녀석 못잖게 태수 녀석도 목소리가 가는 편이었다. 저 험악한 얼굴과 커다란 덩치에 노래방에라도 갈라치면 – 물론 술이 떡이 되어야 가능한 장면이긴 하지만 – 두눈을 감고 자못 진지하게 너를 사랑하고도를 가성을 섞어서 불러 제끼는걸 처음 본 날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저런 언발란스라니..



“어 태수야.. 뭐 그냥 저냥 첬어.. 우리 점심 먹으러 매점 갈까? “



“수진아 니는 무슨 여자가 밥을 그래 마이 먹노 짜슥아.. 안 쪽팔리나..”



“태수선배 내가 언제 선배한테 밥 사달라 그랬어? 뭐 그랬다고 처도 사 주지도 않았겠지만 밥 많이 먹는 게 왜 쪽 팔리는 일이야? 선배처럼 커다란 사람이 그렇게 조금만 먹는 게 이상 한 거지 그리고 음식은 남기 는 게 나쁜 거지 많이 먹는 건 좋다 나쁘다를 떠난 문제라구…”



자의든 타의든 태수가 수진이를 맡아주고 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근데 어제 그 녀석 절대 합의 안 해줄 것 처럼 하고 나가더니 어떻게 합의가 된 걸까? 사실은 녀석이 날 먼저 메칠려고 했으니까 정당방위 였는데 말이야.. 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을 때 갑자기 엉덩이쪽에서 느껴지는 강한 바이브레이션..



“여보세요”



“여 유비아저씨 잘 잤어?”



그 여고생이었다. 허나경



“어.. 어떻게 내 전화 번호를 안거야?”



“그 전화 내가 하루 종일 가지고 있었잖아 그리고 내 핸드폰 번호랑 뒷자리가 똑같아서 외우고 싶지 않았는데 벌써 외워져 버렸어”



“누꼬 야 현덕아 니 여자친구 생깄나 짜슥 노상 자디만.. 몰래 소개팅이라도 했는기가?



태수 녀석의 야릇한 눈길과 똥그래진 수진이의 시선에 손사래로 답하는 찰라 전화기 저쪽에서 잠시 끊어 졌던 나경이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유비 아저씨 내가 아저씨 합의 도와 준거 모르지? 동섭 오빠한테 내가 가서 합의 안 해주면 미성년 성추행으로 고발해 버린다고 협박했거든..



그래서 말인데 나 부탁이 있어”



이런 이런 일이 여기 까지 와 버리고 나니 도데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일 토요일이잖아 나 산부인과를 가야 하는데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필요하데.. 그러니까 유비아저씨는 내가 합의를 도와준 대가로 내일 하루 내 보호자 역할을 해줘야겠어 나 내일 학교 마치고 전화 할 테니까 1시 이후에 시간 비워놔 알았지 유비 아저씨 그럼 안녕”



“뚜뚜뚜…”



여전히 자기 할말만 버벅 거림 없이 깔끔한 발음으로 대본 읽듯이 단숨에 말해 버리자 저쪽에서 뚜뚜 거리는 신호음이 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