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8
어제 늦게 까지 예약을 하느라 조금 늦게 일어났다. 로마 마지막 날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 조식을 먹었다. 푹 잔 뒤라 재인이도 컨디션이 좋았다. 아침을 먹고 로마 시내 투어를 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날씨는 너무 좋았다. 화창하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투어에 딱 맞는 날씨였다.
첫번째 목적지는 트레비분수였다. 그 다음은 판테온 신전을 보기로 했는데 모두 도보로 20분 내외의 거리라 걸어서 가기로 했다. 파란 하늘. 까불 까불 폴짝 폴짝 뛰어 가는 재인이. 로마 시내를 걷는 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즐거웠다. 모퉁이 모퉁이 마다 멋진 분수가 나타났고 건물이나 거리도 우리가 흔히 유럽을 떠 올릴 때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파리는 어떤 블록이 그렇다면 로마는 모든 곳이 그랬다. 이름 모를 분수도 다리 위 장식도 거리마다 서 있는 동상도 멋있었다. 이렇게 다 멋있는데 롯데월드 갈 때 마다 봤던 트레비 분수를 특정해서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라 트레비 분수가 나타났다.
큰 건물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백색의 대리석 조각들. 이쪽에서 저쪽 아래까지가 한눈에 들어 오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아름답게 조각된 희랍의 신들이 휘감아선 위에 맑은 물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롯데월드 덕분에 에펠탑보다 친숙하다고 생각했던 트레비 분수는 엄청난 크기와 아름다운 디테일로 우리 가족의 감탄을 불러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분수대 주변에는 각국의 관광객으로 넘쳐 났다. 많은 사람들이 뒤로 돌아서서 동전 던지며 다시 로마를 방문 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딸아이와 유정씨도 동전을 던졌다. 나는 던지지 않자 딸아이가
"아빠는 우리랑 같이 로마 다시 안 올거야?"
하고 물었다.
"재인아 너만 던졌으면 아빠가 로마에 못 올 수 있는데 엄마가 던졌으니까 아빠는 꼭 다시 로마에 올 수 있을 거야. 넌 나중에 남자친구랑 올 수도 있겠지만 엄만 온다면 아빠랑 오지 않겠니?"
딸아이는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사람들 틈에 끼어 분수대를 처다 보았다. 한참을 처다 보다 유정씨가 나를 찍어 준다기에 카메라를 넘겼다. 그런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이렇게 저렇게 한참을 구도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마눌님은 아직도 꾸물 꾸물 내 마음이 급해졌다.
“아 빨리 좀 찍어요~ 그럴거면 찍지 말던지~”
내말 한마디에 즐거웠던 우리 가족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마눌님은 마눌님대로 내가 한 말에 화가 났고 나는 나대로 잠깐 실수로 한말에 이렇게 까지 정색을 하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멋진 판테온을 둘러 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가 없었다. 재인이도 엄마, 아빠의 분위기가 이상하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판테온을 나와 커피가 유명하다는 타짜도르를 가면서 서로 사과하고 분위기를 다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타짜도르는 3대 커피숍이라며 로마에서도 맛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커피숍이었는데 원두를 판매 하기도 하고 1유로에 한잔씩 하는 에스프레소와 그라니타 디 카페 폰파냐라는 이름의 크림이 올라간 커피가 유명했다.
여름이면 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는데 로마에는 커피라고는 에스프레소뿐이고 라떼도 차가운건 없어서 아쉬웠던 참이라 그라니타 디 카페 폰파냐는 크림이 올라간 더위사냥 같은 느낌이어서 반가웠다. 에스프레소는 역시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파리 카페거리의 에스프레소가 더 나은 것 같은 느낌?
파리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 보다 좀 더 진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250g 단위로 포장해서 파는 원두도 7000원 정도로 가격이 저렴해서 선물용으로 몇 개 구입했다. 무게와 부피만 아니면 더 구매하고 싶었지만 이미 이런 저런 기념품과 선물로 가득찬 짐가방이 생각나 많이 구매할 수가 없었다.
타짜도르에서 우리가 그라니타 디 카페 폰파냐를 먹는 동안 재인이는 자기도 젤라또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일단 타짜도르 맞은편에 젤라또 가게에서 젤라또를 사서 맛있게 냠냠 하면서 아까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판테운 신전으로 다시 갔다.
거대한 신전 2천년전 건물이지만 가운데 기둥 하나 없이 둥근 돔 지붕으로 된 신전의 내부는 어마 어마하게 높고 넓었다. 입구에부터 인간을 위해서 만들었다 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문을 거쳐 뭔가 엄숙하고 무거운 색으로 구성된 내부의 높고도 넓은 공간은 판테온 보다 훨씬 거대한 현대 고층 빌딩숲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도 절로 경외감을 품게 만들었다. 2000년 전 이 건물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판테온을 나와서 젤라또로 유명하다는 프리지다리움이라는 가게로 향했다. 보기에는 멋있지만 비슷 비슷하게 생긴 건물 사이로 두 사람이 겨우 어깨를 맞대고 지나갈 만한 꼬불 꼬불한 골목길. 아마도 구글맵이 없었더라면 지독한 길치인 내가 생전 처음 와 보는 이곳에서 이렇게 가족들을 데리고 가게를 찾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아이폰에 설치된 구글맵은 내가 움직이는 거리를 맵에 표시해 주면서 정확하게 가게의 위치를 향해 나를 이끌었다.
저 옛날 판테온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신탁을 기다리던 로마인들에 비하면 내가 원하는 질문에 정확하고도 지속적인 피드백을 주는 현대의 IT 기기들이야 말로 그들이 꿈꾸던 진정한 신탁이 아닐까?
프리지다리움에 도착해서 젤라또를 먹었다. 뭐랄까 베스킨라빈슨31에 익숙한 내게는 이 가게에 있던 맛있는 리쏘가 저 가게에는 없고 있어도 맛이 다 제각각 이고 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가게마다 자신들만의 젤라또 만드는 방법을 고수하고 메뉴를 지키는 모습에서 이탈리아가 각종 명품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미리 사온 샌드위치와 거리에서 파는 과일을 사서 길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분수대와 음수대에서 씻어 먹으며 로마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다 문득 마눌님이 재인이에게 바티칸에서 사준 묵주를 포지타노에서 잃어 버렸는데 다시 사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당장 버스를 타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오후 6시가 살짝 넘어 불안한 마음에 달려갔더니 우리가 묵주를 샀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그보다 더 아래쪽 가게에 겨우 들어가 비슷해 보이는 묵주 몇 개를 샀다. 온 김에 사람들이 거의 없는 바티칸을 배경으로 신나게 사진을 찍고는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 스페인광장으로 향했다.
스페인 광장은 늦은 밤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있었고 넓은 광장 여기 저기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꽃을 파는 집시 할아버지,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 음악에 박수를 보내며 동전을 놓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여행의 끄트머리라 그런지 거리의 정취가 더욱 와 닿았다. 스페인광장을 건너 호텔로 돌아 가는 밤거리를 걸으며 때때로 나타나는 분수대에서 사진을 찍고 다리 아프다며 칭얼대는 재인이를 업고 걸으며 생각했다.
지금 이런 순간들이 모두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내 인생에서 다시 올 수 없는 순간들이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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