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리면 퍼드덕 거린다. 왜 일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죽음이 임박했다 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소금을 뿌리기 훨씬 이전 부터 사람 에게 사육되거나 야생에서 사람에게 포획된 그 순간부터 미꾸라지는 실질적으로는 죽은 목숨 이었다. 미꾸라지가 그걸 알아 차리지 못했을 따름이다.
음반회사 들이 이른바 인기가수 란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마치 소금뿌린 미꾸라지 같다. 처절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저들은 왜 벌써부터 자신들이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지금 그들의 몸 위에 떨어진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소금은 자신들의 죽음에서 어떻게 보면 작은 부분 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친 듯이 퍼드덕 거리고 그들만큼의 피해를 입을 우리 음악 소비자들은 사태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곳 에서 더듬거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 인가 들을 만한 음악이 없어서 시디를 사지 못한다? 티비에서 립싱크 하는 붕어 때 들이 음악판을 망첬다?
전부 웃기는 소리 쓸 대 없고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한 쓰레기 들이다 우리는 이런 쓸 때 없는 쓰레기 우리를 진정한 음악에서 멀어지게 하고 사태의 본질에서 미끄러지게 하는 서문을 키팅 선생과 함께 과감하게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야 한다. 그리고 깨끗한 첫 페이지부터 어디서 시작된 문제인가 무엇이 본질인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음악 따위 없어도 뭐가 어떻단 말인가' 라는 사람들은 여기서 그만 창을 닫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시디는 음악이 아니다.
우선 음악이 무엇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아 보아야 한다.
음악은 무엇인가? ^^; 참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음악이라는 한문처럼 음을 즐기는 것이란 대답부터 시작해서 음악은 음악이다 같은 다분히 철학적인 대답까지.. ^^;;
어쩌면 정답이 없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선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기본적으로 음악이란 무척 사치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고정되거나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물질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디에 담긴 저 웨이브 파일이 음악인가 LP판에 세겨진 저 복잡다단한 플라스틱 굴곡 속에 음악이 담겨 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스튜디오 마스터릴 테이프가 음악일까? 너무 단정적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조금 단호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내가 앞에서 말한 대표적인 매체들을 포함해서 앞으로 얼마나 발전된 무엇인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로는 아니 현제의 과학기술로는 음악을 담아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보존 상태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음악의 화석일뿐이다.
시베리아의 얼음 구덩이에서 발견된 맘모스가 아무리 보존 상태가 좋와도 그것은 이미 맘모스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연주를 하던 노래를 해서든 지금 나를 그리고 나와 그 사이의 공기를 진동 시키고 감정이 교류 되고 느낄 수 있는 눈앞에 지금의 그것 바로 그것이 음악 이다.
나머지는 모두 보존 상태가 조금씩 다른 음악의 화석일 뿐이다.
현대 과학은 아직 화석을 되 살려 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음악도 마찬 가지다.
자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이란 실제 연주되고 있는 그곳 그 시간 그 느낌이다.
그렇다면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우리가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공연장에 가야 한다.
공연장이라고 특별히 거창한 무엇이나 어딘가를 떠 올릴 필요는 없다.
실제 연주를 하고 있는 곳 실제 노래 하는 가수가 있는 곳 비싸게는 몇 십만원 짜리 티켓을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연주회장에서부터 늘 상 마시는 맥주가격에서 십원도 추가 되지 않는 작은 라이브 까페 어디라도 좋다.
음악이란 방안에 앉아서 시원한 음료수와 함께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티비나 시디 플레이어 디비디 플레이어 MD 또는 LP 뭐가 됐건 간단히 스위치만 올려서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시디를 사는 것과 음악을 사는 것의 차이
약을 돈으로 살수는 있지만 건강을 살수는 없다. 돈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물론 약으로 건강해 질 수는 있지만 ^^;
그럼 우리는 음악을 살수 있는가 결론은 Yes다.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악은 당연히 사고 팔 수 있는 지적 저작물이다. 그것도 무척 고부가가치의.
그렇다면 음악 계산하기 쉽게 흔히 말하는 유행가 한 곡을 사는데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많은 네티즌들이 조금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총 10곡이 들어있는 만원짜리 모 가수의 시디를 한 장 샀다고 하자 그렇다면 만원을 열로 나눈 천원으로 우리는 그 노래를 산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무척 황당한 착각이다. 우리가 시디를 사는 행위는 음악을 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음악을 그 매체에 맞는 퀄리티와 약속된 형태로 들을 수 있는 권리만을 산것이다.
시디 한장이 싸면 몇 천원 비싸봤자 몇만원 미만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제로 음악 자체 즉 음원에 대한 권리를 사려고 한다면 적게는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측정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이 든다.
자 그러면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우리는 시디를 산다. 시디를 산다는 행위는 대충 다음과 같은 계약이 시작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당신의 음악을 시디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개인적이고 상업적이 아닌 목적으로만 듣거나 복제하겠다.”
알고 보니 시디를 산다는 것은 무척 제한된 용도로 그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 일뿐 이라는 것을 깨닫았다.
사실 시디를 산다는 것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등급에서 그다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음악소비의 형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음악을 소비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단계 또는 등급에 관해서 알아 보기로 하자.
음악소비의 피라미드
축구는 전 세계에서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넓은 지역에서 사랑 받는 스포츠 중에 하나일것이다.
사실 야구는 축구에 비하면 미국과 그 영향권에 있는 일부의 나라에서나 하는 무척 스케일이 작은 스포츠다.
그건 그렇고 축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건 좀 우스운 일이지만 편의상 한번 나눠 보기로 하자.
우선 가장 적극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직접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이 됐건 동내 국민학교에서 전 후반 20분에 마지막엔 늘상 업사이드 판정으로 말썽이 생기는 조기 축구이건 직접 축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다음은? 축구가 열리는 축구장을 직접 찾는 사람들 일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티비나 라디오 등 매체로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은 국대들의 한일전이나 되야 중계방송을 보는 사람의 순이 아닐까 싶다.
음악은? 음악도 마찮가지다. 가장 적극적인 음악팬이란 결국 자신이 직접 음악에 참여 하는 사람들이다.
아주 적극적인 경우에는 그룹사운드나 합창단등에서 활동 할 수도 있겠고
조금 소극적인 경우라면 혼자 집에서 기타를 배운다 던지 피아노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도가 되겠다.
그 다음은? 공연장에서 음악을 직접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 다음은 시디나 기타 매체를 통해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마지막은? 온 나라가 떠들썩 해야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건지 한번 들어 보는 사람들 정도로 나눌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길고 100% 들어 맞지도 않는 약간 작위적인 음악팬 분류를 늘어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시디 한 장 사면서 음악을 대단히 사랑하고 뭔가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 대단한 일을 한양 착각하고 있는 그들에게 조금 과장을 해서라도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적나라 하게 알릴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음악을 직접 연주 하는 그들이 다들 공연장에 열심히 가고 시디도 사고 매체를 통해서도 다른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소비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는 월등히 많은 퍼센트를 차지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공연장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당연히 시디도 많이 살 확률이 높다.
시디 사는 사람들은 티비나 기타 메채를 통한 음악 소비에서 훨씬 더 적극성을 띨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 글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겠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기)
음 좀 길었다 그래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의 인내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 한곳으로 돌아가 보자.
저 퍼드덕 거리고 있는 미꾸라지들을 구원해줄 복음을 내려줄 시간이다.
쑈는 계속 되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음반기획사나 그 기획사에 소속된 많은 소위 인기가수들은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여러가지 새로운 매체들 때문에 음반의 판매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부화뇌동 하는 네티즌들은 들을만한 음악도 없이 시디를 사라고 하는 건 웃기는 짓이라고 무리 지어 짖어대고 다닌다.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반론이 들린다.
우리나라 처럼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 어디에 있냐고
거리에 늘어선 노래방을 가리키고 이제 하도 꺼내 들어서 몇 백년은 닳아 버렸을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들먹인다.
하지만 당신의 눈앞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해 보라.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레코드 가계들이 문을 닫은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고 공연장들은 텅 비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숫자는 멸종을 향해 맹렬히 치닫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린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만큼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승)
예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우스개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약국에 나타난 생뚱 맞은 토끼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 토끼는 약국에서 당근을 찾는다.
약사가 열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는가 약국에 당근이 있을 리 없건만 그 토끼는 끈질기게 약국에서 당근을 찾는다.
약사가 화를 내건 자신의 이빨을 뽑아버리건 포기하지 않는다 토끼는 그 약국에 당근이 없으면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 처럼 초지일관 약국에서 당근을 찾는다.
약사는 모르겠지만 저 토끼는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지 않은가.
티비에서 라이브 안 한다고 투덜대고 붕어들이라고 비웃고 있는 당신
시디에서 들은 걸로 그 음악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당신도 모두 그 생뚱맞은 토끼였던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음악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들었다.
물론 음악의 화석들을 듣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였다.
어머님이 사주신 조그만 - 지금 기준으로는 허벌 나게 크겠지만-카세트 라디오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사건 이후에 깨달아 버렸다.
내가 듣고 있었던 건 음악이 아니라 차갑게 식어 버린 음악의 화석 이었단 걸 말이다.
산발의 머리 쾡 한 눈 가슴을 두드리는 드럼과 기타 그들은 들국화였다.
너무 유명한 멘트라 새삼스럽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다시 들어본 들국화 1집 테이프는 이미 귀에 들어 오지가 않았다.
내가 이걸 듣고 그렇게 감동했었단 말인가.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공짜표에 눈이 멀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레테의 강을 건너 버렸던 것이다.
진짜 음악을 들어버렸던 것이다.
후유증은 상당해서 한동안은 어떤 테이프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주섬 주섬 다시 테이프를 듣고 LD 카피 뮤직비디오나 공연실황을 찾아 다니는 평소의 생활로 조금씩 되 돌아 갔다.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고향인 대구에서 공연은 턱없이 부족했고 내 용돈도 콘서트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그 부족한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신문을 돌린다 던지 삥을 뜯을만큼 부지런하거나 힘이 있지도 못했다.
지방은 이렇게 문화적 혜택이 적냐는 사회문화적 고찰을 할만큼 진지하지도 못했고
공연 이란게 왜 그렇게도 비싸야 하는 건지 요모 조모 따져볼 만큼 통찰력이 있지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내가 음악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음악의 화석이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전)
음악은 힘이 있다. 듣는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을 만큼 그 힘은 강력하다.
꼭 영혼을 흔들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가
그리고 강조를 위해서 오버하느라 우리 나라에 음악을 사랑 하는 사람이 멸종하고 있다고도 말했지만
우리의 피속에는 가무에 능한 선조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음악을 사랑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인 것이다.
문제는 진짜 음악에 노출될 기회를 얼마나 가지냐는 것이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거나 티비에서 보이는 음악의 화석에도 반응 할 수 있는 민감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진짜 음악에 노출될 기회가 많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물론 멋진 공연 한번 봤다고 누구나 음악에 빠져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많이 봐도 음악을 사랑할 수 없는 가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훌룡한 공연에 많이 노출 될수록 음악을 사랑할 사람의 퍼센트는 높아지고 음악 지망생도 늘어날 것이란 사실이다.
그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의 양도 늘어날 것이고 많은 음악 지망생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만들어낼 양질의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할 것이다.
정말 상상만 해도 즐거워 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90년대에 생산된 수많은 밀리언 셀러 음반들
’그 음반들이 과연 음악을 위해 제작되고 소비 되고 음악에 재 투자 되었는가?’
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당신은 과연 Yes라고 말할 수 있을까.
틀림없는 사실은 90년대에 들어서 면서 서서히 공연장 객석이 하나 둘씩 빈자리가 늘어나고 그 빈자리를 티비라는 미디어가 메꿔 나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점차로 적극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였지만 음악이 아닌 밀리언 셀러가 목표인 음반들의 밀리언 셀러 행진에 묻혀서 전혀 주목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밀리언 셀러 라는 음반들도 그나마 가장 적극적인 음악 소비자인 10대들과 가장 파급 효과가 큰 티비라는 매체에 철저하게 포커스를 맞춰 나갔다.
비극의 시작은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그토록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음악의 메이저 씬은 크게 두 Part로 나뉘어 졌다.
하나는 미디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래방이다.
물론 두 가지 다 무조건 나쁘다고 만은 볼 수 없는 나름의 장 단점을 가진 매체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에서 말했던 것 처럼 진짜음악 즉 공연이라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Part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티비로 대표되는 미디어는 음악을 담기에 나쁘지 않지만 지나치게 비쥬얼을 강조하는 바람에 음악보다 외모와 춤 등의 음악 외적인 면이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급기야 가수라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얼굴 때문에 케스팅 되고 기획사 에서는 옷 입히고 춤 가르쳐서 가수랍시고 여기 저기 각종 쇼프로에 출연시켜 개인기를 쏟아낸다.
오죽하면 가창력 좋은 가수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 들여 지겠는가.
그런가 하면 밤거리 거리 마다 미치도록 다이얼 돌리고 몇일 밤을 세면서 페더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잡아낸 사운드를 최악의 미디 사운드로 망가트려 놓는다.
노래방에서 필요한건 단지 따라 부르기 쉬운 몇몇 익숙한 코드의 나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운드를 신경 쓰고 창의적인 곡구성에 매달리는 음악가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 지거나 백기를 들고 천편일률의 도돌이표 속으로 뛰어 드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음악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손발을 잘라내고 목과 다리를 늘여서 기형적으로 변질 시키는 미디어
그리고 그 장단에 맞춰서 미디어의 구미에 맞는 기획상품을 쏟아내는 기획사
무엇보다도 안일하고 편하게 음악을 즐기려는 관객
이런 곳에서 음악이라는 나무가 자라는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넌센스다.
그러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대로 우리는 말라 죽어가는 음악을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잃는 수 밖에 없단 말인가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결)
음악을 되 살릴 수 있는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다.
우리 나라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다. 소비자의 힘은 예상보다 크다. 자 이제 음악을 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차근 차근 알아 보도록 하자.
첫번째 메이저 음악씬을 받칠 언더씬이 필요하다.
나무가 크려면 토양이 필요한 것은 기본중에 기본 아니겠는가
그러면 언더씬을 만드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노상 마시는 맥주 소주 기왕이면 라이브로 연주와 노래 하는 술집으로 가시라
좀 비싼 곳도 있지만 늘 상 마시는 술값에 십원도 더 보태지 않아도 되는 곳도 많다.
술도 마시고 공연도 보고 일석이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라이브 하는 술집 장사 잘 되더란 인식이 생기면 우리가 싫더라도 점차 많은 술집에서 라이브 밴드를 고용하게 된다. 그게 자본주의다.
그러면 좀더 많은 밴드나 가수 지망생들에게 관객과 호흡하면서 실력을 닦을 수 있는 토양이 제공된다.
꼭 술집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클럽공연이라도 좋고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주최하는 작은 무료 공연장, 어디라도 우르르 개때 처럼 몰려가라.
그러면 그곳을 발판 삼아 실험하고 옥석이 가려져서 이른바 로컬스타에서부터 커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그렇게 되면 기획사들도 더 이상 길거리나 오디션등의 불확실한 방법보다 언더에서 검증된 음악인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렇게 발로 뛰는 방법은 무리라고 포기하려는 여러분 성급하기도 하여라.
여러분에게도 음악 발전에 일조를 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두번째 방법 티비 음악 프로 게시판에 글을 쓰시라 '우리는 라이브를 원한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어차피 화석이지만 화석에도 엄연히 등급이 있다는 점이다.
반주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보컬만 마이크를 잡고 있다고 라이브가 아니다.
라이브란건 기본적으로 연주와 노래 양쪽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라이브를 티비에서 그것도 생방송으로 한다는 것은 무척 많은 제약이 뒤따르는 것이다.
일단 라이브로 연주 되는 음악을 적절하게 믹싱 하기란 참 힘들다는 기술적인 난점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밴드 형태의 공연은 심하게 제약을 받는다.
공연에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밴드가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을 무대 세팅 하는데 할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제의 음악 프로처럼 십여팀이 릴레이처럼 줄줄이 무대에 오르는 상황에서는 밴드 형태의 공연은 라이브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제대로 된 라이브를 위해서 음악프로는 녹화방송을 기본으로 제작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음악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라이브를 구사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실수 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녹화방송으로 진행되는 잔짜 라이브 음악방송을 원한다고 게시판들을 도배질 하는 것이 그 다음 방법이다.
게시판에 글쓰기 위해서 로그인 하는 것도 싫다는 여러분을 위한 세번째 방법
몇 개 안되지만 위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음악프로를 많이 봐 주시라
시청률 올라가면 지금 프라임 타임에서 밀려나 있는 진짜 음악 프로들도 자연히 대접이 틀려 질것이고 여러분은 아마 제대로 된 라이브 공연을 지겹도록 자주 접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도 저도 싫다면 입이라도 닥치고들 있으시라
알아 보지도 않고 라이브로 노래 안 한다고 가수 욕이나 하고
다운 받아서 들으면 되지 그걸 돈이 썩어 나서 시디를 사냐는 둥
쓸때없는 헛소리로 주위 사람들 열 받지 않게 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
물론 기획사들도 좀더 긴 안목으로 좋은 공연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진짜 음악을 들려주어야 할것이고
정부도 말로만 한류가 어쩌네 엔터테이먼트가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네 떠들지 말고 전용 공연장이라도 좀 지어주고 공연에 달라붙은 저 세금들도 좀 줄이고 해야 하겠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나라에서 이런거 바라는 니들이 욕심이 많은 거다.
그저 우리가 하나 하나 챙겨 가지 않으면 달린 코도 베어 간다는 거
아제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어본 우리 아닌가 말이다.
백마리 워숭이 효과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본의 섬에서 고구마를 씻어먹는 희한한 원숭이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처음엔 한 마리 두 마리 였는데 점점 늘어서 한 섬의 거의 모든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백 여 마리가 되자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인접한 섬의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일정한 숫자를 넘어서면 생각이란 전염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월드컵에서 증명된 단합된 힘과 신명이 있다.
문제는 100마리 아니 100명이라는 시작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월드컵때 붉은 악마가 거리응원의 불씨를 지폈던 100마리째 원숭이였다면 이제 이 글을 읽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뭔가 판을 한번 바꿔보자
이대로 음악이 사라진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살기 힘들게 되겠난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소금을 뿌리기 훨씬 이전 부터 사람 에게 사육되거나 야생에서 사람에게 포획된 그 순간부터 미꾸라지는 실질적으로는 죽은 목숨 이었다. 미꾸라지가 그걸 알아 차리지 못했을 따름이다.
음반회사 들이 이른바 인기가수 란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마치 소금뿌린 미꾸라지 같다. 처절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저들은 왜 벌써부터 자신들이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지금 그들의 몸 위에 떨어진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소금은 자신들의 죽음에서 어떻게 보면 작은 부분 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친 듯이 퍼드덕 거리고 그들만큼의 피해를 입을 우리 음악 소비자들은 사태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곳 에서 더듬거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 인가 들을 만한 음악이 없어서 시디를 사지 못한다? 티비에서 립싱크 하는 붕어 때 들이 음악판을 망첬다?
전부 웃기는 소리 쓸 대 없고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한 쓰레기 들이다 우리는 이런 쓸 때 없는 쓰레기 우리를 진정한 음악에서 멀어지게 하고 사태의 본질에서 미끄러지게 하는 서문을 키팅 선생과 함께 과감하게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야 한다. 그리고 깨끗한 첫 페이지부터 어디서 시작된 문제인가 무엇이 본질인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음악 따위 없어도 뭐가 어떻단 말인가' 라는 사람들은 여기서 그만 창을 닫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시디는 음악이 아니다.
우선 음악이 무엇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아 보아야 한다.
음악은 무엇인가? ^^; 참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음악이라는 한문처럼 음을 즐기는 것이란 대답부터 시작해서 음악은 음악이다 같은 다분히 철학적인 대답까지.. ^^;;
어쩌면 정답이 없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선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기본적으로 음악이란 무척 사치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고정되거나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물질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디에 담긴 저 웨이브 파일이 음악인가 LP판에 세겨진 저 복잡다단한 플라스틱 굴곡 속에 음악이 담겨 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스튜디오 마스터릴 테이프가 음악일까? 너무 단정적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조금 단호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내가 앞에서 말한 대표적인 매체들을 포함해서 앞으로 얼마나 발전된 무엇인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로는 아니 현제의 과학기술로는 음악을 담아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보존 상태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음악의 화석일뿐이다.
시베리아의 얼음 구덩이에서 발견된 맘모스가 아무리 보존 상태가 좋와도 그것은 이미 맘모스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연주를 하던 노래를 해서든 지금 나를 그리고 나와 그 사이의 공기를 진동 시키고 감정이 교류 되고 느낄 수 있는 눈앞에 지금의 그것 바로 그것이 음악 이다.
나머지는 모두 보존 상태가 조금씩 다른 음악의 화석일 뿐이다.
현대 과학은 아직 화석을 되 살려 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음악도 마찬 가지다.
자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이란 실제 연주되고 있는 그곳 그 시간 그 느낌이다.
그렇다면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우리가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공연장에 가야 한다.
공연장이라고 특별히 거창한 무엇이나 어딘가를 떠 올릴 필요는 없다.
실제 연주를 하고 있는 곳 실제 노래 하는 가수가 있는 곳 비싸게는 몇 십만원 짜리 티켓을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연주회장에서부터 늘 상 마시는 맥주가격에서 십원도 추가 되지 않는 작은 라이브 까페 어디라도 좋다.
음악이란 방안에 앉아서 시원한 음료수와 함께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티비나 시디 플레이어 디비디 플레이어 MD 또는 LP 뭐가 됐건 간단히 스위치만 올려서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시디를 사는 것과 음악을 사는 것의 차이
약을 돈으로 살수는 있지만 건강을 살수는 없다. 돈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물론 약으로 건강해 질 수는 있지만 ^^;
그럼 우리는 음악을 살수 있는가 결론은 Yes다.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악은 당연히 사고 팔 수 있는 지적 저작물이다. 그것도 무척 고부가가치의.
그렇다면 음악 계산하기 쉽게 흔히 말하는 유행가 한 곡을 사는데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많은 네티즌들이 조금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총 10곡이 들어있는 만원짜리 모 가수의 시디를 한 장 샀다고 하자 그렇다면 만원을 열로 나눈 천원으로 우리는 그 노래를 산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무척 황당한 착각이다. 우리가 시디를 사는 행위는 음악을 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음악을 그 매체에 맞는 퀄리티와 약속된 형태로 들을 수 있는 권리만을 산것이다.
시디 한장이 싸면 몇 천원 비싸봤자 몇만원 미만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제로 음악 자체 즉 음원에 대한 권리를 사려고 한다면 적게는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측정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이 든다.
자 그러면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우리는 시디를 산다. 시디를 산다는 행위는 대충 다음과 같은 계약이 시작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당신의 음악을 시디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개인적이고 상업적이 아닌 목적으로만 듣거나 복제하겠다.”
알고 보니 시디를 산다는 것은 무척 제한된 용도로 그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 일뿐 이라는 것을 깨닫았다.
사실 시디를 산다는 것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등급에서 그다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음악소비의 형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음악을 소비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단계 또는 등급에 관해서 알아 보기로 하자.
음악소비의 피라미드
축구는 전 세계에서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넓은 지역에서 사랑 받는 스포츠 중에 하나일것이다.
사실 야구는 축구에 비하면 미국과 그 영향권에 있는 일부의 나라에서나 하는 무척 스케일이 작은 스포츠다.
그건 그렇고 축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건 좀 우스운 일이지만 편의상 한번 나눠 보기로 하자.
우선 가장 적극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직접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이 됐건 동내 국민학교에서 전 후반 20분에 마지막엔 늘상 업사이드 판정으로 말썽이 생기는 조기 축구이건 직접 축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다음은? 축구가 열리는 축구장을 직접 찾는 사람들 일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티비나 라디오 등 매체로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은 국대들의 한일전이나 되야 중계방송을 보는 사람의 순이 아닐까 싶다.
음악은? 음악도 마찮가지다. 가장 적극적인 음악팬이란 결국 자신이 직접 음악에 참여 하는 사람들이다.
아주 적극적인 경우에는 그룹사운드나 합창단등에서 활동 할 수도 있겠고
조금 소극적인 경우라면 혼자 집에서 기타를 배운다 던지 피아노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도가 되겠다.
그 다음은? 공연장에서 음악을 직접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 다음은 시디나 기타 매체를 통해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마지막은? 온 나라가 떠들썩 해야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건지 한번 들어 보는 사람들 정도로 나눌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길고 100% 들어 맞지도 않는 약간 작위적인 음악팬 분류를 늘어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시디 한 장 사면서 음악을 대단히 사랑하고 뭔가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 대단한 일을 한양 착각하고 있는 그들에게 조금 과장을 해서라도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적나라 하게 알릴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음악을 직접 연주 하는 그들이 다들 공연장에 열심히 가고 시디도 사고 매체를 통해서도 다른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소비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는 월등히 많은 퍼센트를 차지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공연장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당연히 시디도 많이 살 확률이 높다.
시디 사는 사람들은 티비나 기타 메채를 통한 음악 소비에서 훨씬 더 적극성을 띨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 글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겠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기)
음 좀 길었다 그래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의 인내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 한곳으로 돌아가 보자.
저 퍼드덕 거리고 있는 미꾸라지들을 구원해줄 복음을 내려줄 시간이다.
쑈는 계속 되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음반기획사나 그 기획사에 소속된 많은 소위 인기가수들은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여러가지 새로운 매체들 때문에 음반의 판매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부화뇌동 하는 네티즌들은 들을만한 음악도 없이 시디를 사라고 하는 건 웃기는 짓이라고 무리 지어 짖어대고 다닌다.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반론이 들린다.
우리나라 처럼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 어디에 있냐고
거리에 늘어선 노래방을 가리키고 이제 하도 꺼내 들어서 몇 백년은 닳아 버렸을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들먹인다.
하지만 당신의 눈앞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해 보라.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레코드 가계들이 문을 닫은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고 공연장들은 텅 비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숫자는 멸종을 향해 맹렬히 치닫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린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만큼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승)
예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우스개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약국에 나타난 생뚱 맞은 토끼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 토끼는 약국에서 당근을 찾는다.
약사가 열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는가 약국에 당근이 있을 리 없건만 그 토끼는 끈질기게 약국에서 당근을 찾는다.
약사가 화를 내건 자신의 이빨을 뽑아버리건 포기하지 않는다 토끼는 그 약국에 당근이 없으면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 처럼 초지일관 약국에서 당근을 찾는다.
약사는 모르겠지만 저 토끼는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지 않은가.
티비에서 라이브 안 한다고 투덜대고 붕어들이라고 비웃고 있는 당신
시디에서 들은 걸로 그 음악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당신도 모두 그 생뚱맞은 토끼였던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음악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들었다.
물론 음악의 화석들을 듣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였다.
어머님이 사주신 조그만 - 지금 기준으로는 허벌 나게 크겠지만-카세트 라디오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사건 이후에 깨달아 버렸다.
내가 듣고 있었던 건 음악이 아니라 차갑게 식어 버린 음악의 화석 이었단 걸 말이다.
산발의 머리 쾡 한 눈 가슴을 두드리는 드럼과 기타 그들은 들국화였다.
너무 유명한 멘트라 새삼스럽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다시 들어본 들국화 1집 테이프는 이미 귀에 들어 오지가 않았다.
내가 이걸 듣고 그렇게 감동했었단 말인가.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공짜표에 눈이 멀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레테의 강을 건너 버렸던 것이다.
진짜 음악을 들어버렸던 것이다.
후유증은 상당해서 한동안은 어떤 테이프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주섬 주섬 다시 테이프를 듣고 LD 카피 뮤직비디오나 공연실황을 찾아 다니는 평소의 생활로 조금씩 되 돌아 갔다.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고향인 대구에서 공연은 턱없이 부족했고 내 용돈도 콘서트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그 부족한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신문을 돌린다 던지 삥을 뜯을만큼 부지런하거나 힘이 있지도 못했다.
지방은 이렇게 문화적 혜택이 적냐는 사회문화적 고찰을 할만큼 진지하지도 못했고
공연 이란게 왜 그렇게도 비싸야 하는 건지 요모 조모 따져볼 만큼 통찰력이 있지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내가 음악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은 음악의 화석이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전)
음악은 힘이 있다. 듣는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을 만큼 그 힘은 강력하다.
꼭 영혼을 흔들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가
그리고 강조를 위해서 오버하느라 우리 나라에 음악을 사랑 하는 사람이 멸종하고 있다고도 말했지만
우리의 피속에는 가무에 능한 선조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음악을 사랑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인 것이다.
문제는 진짜 음악에 노출될 기회를 얼마나 가지냐는 것이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거나 티비에서 보이는 음악의 화석에도 반응 할 수 있는 민감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진짜 음악에 노출될 기회가 많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물론 멋진 공연 한번 봤다고 누구나 음악에 빠져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많이 봐도 음악을 사랑할 수 없는 가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훌룡한 공연에 많이 노출 될수록 음악을 사랑할 사람의 퍼센트는 높아지고 음악 지망생도 늘어날 것이란 사실이다.
그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의 양도 늘어날 것이고 많은 음악 지망생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만들어낼 양질의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할 것이다.
정말 상상만 해도 즐거워 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90년대에 생산된 수많은 밀리언 셀러 음반들
’그 음반들이 과연 음악을 위해 제작되고 소비 되고 음악에 재 투자 되었는가?’
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당신은 과연 Yes라고 말할 수 있을까.
틀림없는 사실은 90년대에 들어서 면서 서서히 공연장 객석이 하나 둘씩 빈자리가 늘어나고 그 빈자리를 티비라는 미디어가 메꿔 나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점차로 적극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였지만 음악이 아닌 밀리언 셀러가 목표인 음반들의 밀리언 셀러 행진에 묻혀서 전혀 주목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밀리언 셀러 라는 음반들도 그나마 가장 적극적인 음악 소비자인 10대들과 가장 파급 효과가 큰 티비라는 매체에 철저하게 포커스를 맞춰 나갔다.
비극의 시작은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그토록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음악의 메이저 씬은 크게 두 Part로 나뉘어 졌다.
하나는 미디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래방이다.
물론 두 가지 다 무조건 나쁘다고 만은 볼 수 없는 나름의 장 단점을 가진 매체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에서 말했던 것 처럼 진짜음악 즉 공연이라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Part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티비로 대표되는 미디어는 음악을 담기에 나쁘지 않지만 지나치게 비쥬얼을 강조하는 바람에 음악보다 외모와 춤 등의 음악 외적인 면이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급기야 가수라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얼굴 때문에 케스팅 되고 기획사 에서는 옷 입히고 춤 가르쳐서 가수랍시고 여기 저기 각종 쇼프로에 출연시켜 개인기를 쏟아낸다.
오죽하면 가창력 좋은 가수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 들여 지겠는가.
그런가 하면 밤거리 거리 마다 미치도록 다이얼 돌리고 몇일 밤을 세면서 페더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잡아낸 사운드를 최악의 미디 사운드로 망가트려 놓는다.
노래방에서 필요한건 단지 따라 부르기 쉬운 몇몇 익숙한 코드의 나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운드를 신경 쓰고 창의적인 곡구성에 매달리는 음악가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 지거나 백기를 들고 천편일률의 도돌이표 속으로 뛰어 드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음악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손발을 잘라내고 목과 다리를 늘여서 기형적으로 변질 시키는 미디어
그리고 그 장단에 맞춰서 미디어의 구미에 맞는 기획상품을 쏟아내는 기획사
무엇보다도 안일하고 편하게 음악을 즐기려는 관객
이런 곳에서 음악이라는 나무가 자라는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넌센스다.
그러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대로 우리는 말라 죽어가는 음악을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잃는 수 밖에 없단 말인가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결)
음악을 되 살릴 수 있는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다.
우리 나라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다. 소비자의 힘은 예상보다 크다. 자 이제 음악을 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차근 차근 알아 보도록 하자.
첫번째 메이저 음악씬을 받칠 언더씬이 필요하다.
나무가 크려면 토양이 필요한 것은 기본중에 기본 아니겠는가
그러면 언더씬을 만드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노상 마시는 맥주 소주 기왕이면 라이브로 연주와 노래 하는 술집으로 가시라
좀 비싼 곳도 있지만 늘 상 마시는 술값에 십원도 더 보태지 않아도 되는 곳도 많다.
술도 마시고 공연도 보고 일석이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라이브 하는 술집 장사 잘 되더란 인식이 생기면 우리가 싫더라도 점차 많은 술집에서 라이브 밴드를 고용하게 된다. 그게 자본주의다.
그러면 좀더 많은 밴드나 가수 지망생들에게 관객과 호흡하면서 실력을 닦을 수 있는 토양이 제공된다.
꼭 술집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클럽공연이라도 좋고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주최하는 작은 무료 공연장, 어디라도 우르르 개때 처럼 몰려가라.
그러면 그곳을 발판 삼아 실험하고 옥석이 가려져서 이른바 로컬스타에서부터 커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그렇게 되면 기획사들도 더 이상 길거리나 오디션등의 불확실한 방법보다 언더에서 검증된 음악인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렇게 발로 뛰는 방법은 무리라고 포기하려는 여러분 성급하기도 하여라.
여러분에게도 음악 발전에 일조를 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두번째 방법 티비 음악 프로 게시판에 글을 쓰시라 '우리는 라이브를 원한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어차피 화석이지만 화석에도 엄연히 등급이 있다는 점이다.
반주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보컬만 마이크를 잡고 있다고 라이브가 아니다.
라이브란건 기본적으로 연주와 노래 양쪽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라이브를 티비에서 그것도 생방송으로 한다는 것은 무척 많은 제약이 뒤따르는 것이다.
일단 라이브로 연주 되는 음악을 적절하게 믹싱 하기란 참 힘들다는 기술적인 난점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밴드 형태의 공연은 심하게 제약을 받는다.
공연에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밴드가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을 무대 세팅 하는데 할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제의 음악 프로처럼 십여팀이 릴레이처럼 줄줄이 무대에 오르는 상황에서는 밴드 형태의 공연은 라이브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제대로 된 라이브를 위해서 음악프로는 녹화방송을 기본으로 제작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음악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라이브를 구사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실수 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녹화방송으로 진행되는 잔짜 라이브 음악방송을 원한다고 게시판들을 도배질 하는 것이 그 다음 방법이다.
게시판에 글쓰기 위해서 로그인 하는 것도 싫다는 여러분을 위한 세번째 방법
몇 개 안되지만 위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음악프로를 많이 봐 주시라
시청률 올라가면 지금 프라임 타임에서 밀려나 있는 진짜 음악 프로들도 자연히 대접이 틀려 질것이고 여러분은 아마 제대로 된 라이브 공연을 지겹도록 자주 접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도 저도 싫다면 입이라도 닥치고들 있으시라
알아 보지도 않고 라이브로 노래 안 한다고 가수 욕이나 하고
다운 받아서 들으면 되지 그걸 돈이 썩어 나서 시디를 사냐는 둥
쓸때없는 헛소리로 주위 사람들 열 받지 않게 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
물론 기획사들도 좀더 긴 안목으로 좋은 공연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진짜 음악을 들려주어야 할것이고
정부도 말로만 한류가 어쩌네 엔터테이먼트가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네 떠들지 말고 전용 공연장이라도 좀 지어주고 공연에 달라붙은 저 세금들도 좀 줄이고 해야 하겠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나라에서 이런거 바라는 니들이 욕심이 많은 거다.
그저 우리가 하나 하나 챙겨 가지 않으면 달린 코도 베어 간다는 거
아제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어본 우리 아닌가 말이다.
백마리 워숭이 효과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본의 섬에서 고구마를 씻어먹는 희한한 원숭이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처음엔 한 마리 두 마리 였는데 점점 늘어서 한 섬의 거의 모든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백 여 마리가 되자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인접한 섬의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일정한 숫자를 넘어서면 생각이란 전염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월드컵에서 증명된 단합된 힘과 신명이 있다.
문제는 100마리 아니 100명이라는 시작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월드컵때 붉은 악마가 거리응원의 불씨를 지폈던 100마리째 원숭이였다면 이제 이 글을 읽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뭔가 판을 한번 바꿔보자
이대로 음악이 사라진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살기 힘들게 되겠난 말이다.
'연예가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방신기를 사랑한 댓가 (0) | 2004.11.22 |
---|---|
가요 프로에서 Live 네 글자를 지워라 (0) | 2004.11.19 |
대중음악평론가 여러분 혹시 들리세요? (0) | 2004.07.26 |
MP3폰이 그리 아프더냐 (0) | 2004.05.05 |
시대가 만드는 리얼리티 (0) | 2004.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