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이충성과 우리학교

초하류 2011. 2. 8. 21:18
교체멤버로 나선 이충성의 골로 일본은 아시아컵에서 우승했다. 이충성은 재일교포지만 귀하했고 그래서 일본 국가대표로 시합에 나섰다. 이충성은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지만 대한민국에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때문에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졌다고 한다.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한국에 와서 들었던 반쪽발이란 그로서는 생경한 단어. 일본인에게 핍박받고 더러 친구들과 쪽발이라고 일본인들을 욕했으리라. 재일한국인인 이충성은 핍박 받을때마다 자신의 조국을 조금은 생각했을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조국이라면 일본에서 자신이 겪는 수모는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조국이라고 생각한 나라에 와서 자신을 핍박한 일본인을 자신과 한묶음으로 묶어 욕하는 것을 듣는 기분이란것을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는 훗코우도 조선인 고등학교의 이야기이다. 조선인 고등학교에서 3학년이 되면 조국방문이라는 것을 한다. 그들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으로 조국방문을 한다. 훗카이도의 조선인고등학교 학생은 일본, 남한, 북한의 국적이 섞여 있었지만 그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방문을 선택한 것은 북한이었다. 인터뷰에서 조국방문을 이끄는 선생님은 남한으로 가지 않는것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 남한으로 가려면 북조선이 조국인 친구들은 번거롭고 사정해가면서까지 가고 싶지는 않다."

북한으로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은 그들이 보고온 조국에 대해 잘 살지는 못하지만 공기가 다르고 자신들을 칭찬해 주고 따뜻하게 반겨주는 조국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줄을 모른다. 일본이라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서 나고 자란 그들이 북한의 별 볼것 없는 시설과 환경의 대접을 그렇게도 기뻐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고 꿈꾸는 조국의 모습을 북한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조국의 땅을 발로 처음 밟는것이 예의가 아니라며 망경봉호에서 손을 먼저 땅에 대고 내리는 소녀. 서툰 한국말을 지적당할까봐 못사는 조국에 브레이져를 입고 갔다가 잘사는 나라에서 온것을 티내냐며 눈쌀을 찌푸릴까봐 걱정했던 소년을 가난하고 조그마한 북한의 주민들은 조국에 잘왔다며 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얼을 지키고 사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냐며 꼭 안아준다.

그 아이들이 남한에 도착했을때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부터 딛고 이 땅에 섰을때 과연 우리중 누가 그 북한의 주민들처럼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줄수 있을까. 단지 문서상의 몇줄을 지키기 위해 자이니치라며 손가락질 받고 갖은 제약에 힘겨워 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을 우리중 누가 힘들었냐며 다독여 줄 수 있을까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한 것이든 혹은 잘 사는 나라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서비스이건 재일한국인에게 그들이 원하는 조국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는것은 G20이라는 이 잘난 대한민국은 죽었다 깨어나도 해 선물해 줄 수 없는 것아닐까?

이충성은 우리학교의 그 소년 소녀와 같은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이땅을 밟았고 반쪽발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국적을 일본으로 변경했다. 이충성이 북한 대표선수가 되었더라도 과연 국적을 변경했을까?

조국에서 아픈 상처를 받고 귀화했지만 이충성은 자신의 성은 그대로 유지했고 히로시마의 팬들은 이충성을 일본이름인 리타다나리로 콜하지 않고 충성으로 콜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조선인 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에 대해 조선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왔던 이충성을 귀화하게 만든것이 그리고 아픈 상처를 받고 귀화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성은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조국에 대한 이끌림이 어디에서 기인한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