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그러니까 국민학교때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일은 두가지였어요. 프라모델과 만화.. 먼 동내까지 다니면서 우리 학교 문구사에 없는 신제품이 나온게 없는지 다니곤 했죠. 만화책은 왠만한 만화방의 만화책은 거의 다 읽었고 만화책 만들기를 시도하기도 했었는데 그 두가지를 모두 같이 했던 친구가 한명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프라모델을 잘 만들고 만화도 훨씬 잘 그리던 그 친구는 변호사가 되었다 까지는 일견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대학교때부터 각종 무술에 관심이 많던 이 친구가 최무배관장의 팀태클에 등록 하고 운동을 하는것 까지도 뭐 그럴 수 있는 이야기죠. 그런데 실제 시합에 출전을 하면 이제 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현직 변호사가 이종격투기 시합에 출전 한다는건 뭔가 뉴스가 될만한 이야기니까요. 집에서 무척 반대하기도 하고 일도 바빠서 한동안 운동을 멀리했던 이 친구가 갑자기 은퇴시합을 잡았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일요일 오후 그 친구는 익숙한 비지니스 캐쥬얼 차림이 아니라 트렁크에 오픈핑거 글럽을 끼고 얼굴에 바세린을 바른 모습으로 쉐도우를 하고 있었습니다. 1경기가 끝나고 한참을 기다려 시작된 경기. 그 친구는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리고 신장도 차이가 많이 나는 선수와 3분 3회전을 치뤘습니다. 그라운드 기술에 우위가 있는 친구가 몇차례 테이크다운을 성공 시켰지만 팔다리가 길고 밸런스가 좋은 상대 선수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긴 신장의 상대선수는 타격에 자신이 있는듯 펀치와 로킥으로 공격해 왔지만 로킥을 맞으면서 레프트를 날리는 친구의 기세에 밀려 위력적으로 보이던 로킥을 쉽게 내지 못했습니다.
1라운드 마지막의 테이크다운 후 친구는 길로틴초크 그립을 잡을 찬스가 왔지만 상대방의 방어에 밀려 실패하고 2회전 부터는 급격한 체력저하가 온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젊은 상대 선수도 지치긴 마찬가지더군요 친구는 꾸준히 태클을 시도했고 몇번 탑마운트와 백마운트를 내주는 위기가 있었지만 3라운드까지 시합을 잘 치뤘습니다. 시합 결과를 알리지 말아 달라는 당부가 있어 결과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 좋아 하는 술을 한달 넘게 참아 가며 훈련에 집중한 친구는 결과에 상관없이 무척 개운한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 하는 일에 몰입하고 스스로를 테스트의 장에 올리는 모습은 뭐랄까요 뭔가 찡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티비 앞에 느슨히 앉아 농담하면서 보던 이종격투기 시합의 퀄리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는 사람이 오른 링위에서의 시합이란 엄청난 박진갑과 스릴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안한다며 스트레이트잔을 털어 넣는 친구가 그날 따라 유달리 멋지게 보이더군요.. 역시 남자는 뭔가를 열심히 몰두할때 가장 멋진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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