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환경과 자신의 경험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환경과 경험은 어떤 사건들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73년도에 태어났다. 나이로는 40대 중반, 회사에서는 재미없고 피하고 싶은 부장, 사회적으로는 썰렁하고 좀 불쌍한 아재다.
내가 겪었던 사회적 큰 사건들 조금 멀리는 영원히 대통령일것 같던 박정희의 죽음과 88올림픽,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실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서 쫒겨난 IMF에서 부터 최근의 세월호 침몰과 박근혜 탄핵까지 각각의 사건들이 내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도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매주 토요일마다 열렸던 촛불집회에 대한 감동이었다. 대학때 부터 사회문제에 대해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편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집회에도 참석하고 게시판에 글도 쓰고 했지만 촛불집회는 그중에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첫번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보도를 통해서 특정 집회에 오만명이 참석했다는 것을 들으면 아 많이 모였구나 하는 막연한 느낌이 들지만 오만명이 모인 집회에 직접 참석하면 정말 사람이 끝도 없이 많은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만원권 오만원권 지패를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쓰니까 별 감흥이 없지만 오만명이란 1초에 한명씩 헤아려도 잠한숨 안자고 13시간 넘게 헤아려야 하는 큰. 숫자다.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는 많게는 한 집회에 백만명이 넘게 모였다. (참고로 백만은 1초에 한명씩 헤아리면 잠한숨 안자고 일초도 안쉬고도 277 시간 넘게 헤아려야 하는 정말 거대한 숫자다.)
국회가 탄핵 표결을 앞둔 광화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토요일 오후였지만 지하철에서 부터 출근시간 러시아워에 가깝게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고 전철역 지하에서 부터 길게 줄어 서서 광화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지상으로 나오자 마치 도시 전체가 시위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의 시위처럼 시위대와 시위대가 아닌 사람을 구분 한다는것은 무의미했다. 도로인지 인도인지의 구분도 불가능 했다. 도로를 따라 우뚝솟아 도시의 블럭을 구분짓는 거대한 빌딩과 빌딩 그 사이가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남자 여자는 말할것도 없고 아빠손을 잡은 내 허리에 겨우 미치는 꼬마에서 부터 거동하기 불편하신 어르신까지 그야말로 모든 연령과 상태의 사람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서로의 어깨가 저절로 닿을만큼의 거리로 밀집된 상태가 시야가 닿는 이쪽끝에서 저쪽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몸으로 직접 느껴지는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군중들이 한 목소리로 탄핵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때 마치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대한민국이 실체화되어 내게 만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월드컵에서 국가대표들의 멋진 경기를 보며 소리치고 느꼈던 대한민국이 그냥 커피라면 이건 그야말로 TOP랄까?
그곳에 갔던 사람 전부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실제의 대한민국을 느꼈을 꺼라 믿는다.
두번째로 우주에 나가 파랗고 동그란 지구를 직접 본 우주인들도 충격을 받는것 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나니 평소라면 별로 의식하지 못했을 내 행동들에 간섭이 일어났고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일테면 팀원들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부터 고객들과의 접대에서 사용하는 법인카드는 올바르게 사용되어 지고 있는걸까? 근무 시간에 짬짬이 하는 웹서핑은 문제 없는건가? 등등
내가 그렇게 욕하고 싫어해 마지않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행동들이 이곳 저곳에서 작은 조각들로 내게서도 발견되는 느낌이랄까?
내가 가진 권한과 행사하고 있는 권리가 지금 비율을 유지한체로 박근혜만큼 커졌을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문제들은 지금 박근혜 전대통령이 일으킨 문제보다 사소한 문제들인 걸까? 라는 느낌을 떨처 버릴수가 없었다.
마치 6.25를 겪으신 세대가 빨갱이라고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치를 떠는 것처럼, IMF를 겪은 이후 우리 사회가 직업의 불안정성에 대한 극도의 공포 반응을 보이는것 처럼, 세월호 사태 이후 재난사태에 대해서는 스스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사회안정망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것 처럼 공공성이라는 면에 대해서 뭔가가 각성이 된것 같았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몇백년에 걸처서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인류 역사상 최악의 내전을 통해 산산조각이 난 상태에서 고작 4~50년의 시간만에 압축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우리가 잃어 버렸던 것들. 정의, 혹은 공정성에 대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느낌이랄까?
박정희가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만든 영호남이라는 지역갈등과 안보논리에 뿌리를 둔 전 새누리당, 현 자유한국당은 IMF라는 국가 부도 사태에서도 야권의 압승을 허락하지 않았건만 지금은 더민주가 유래없이 압도적인 높은 지지를 받고 있고 우파라고 쓰고 수구세력이라고 읽어야 하는 정당의 대선후보들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런것들에 물론 더민주의 변화와 휼룡한 후보덕도 있지만 나같은 보통 시민들의 자각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물론 아직 기득권층은 충분히 견고하고 강하다. 하지만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실제로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인 이른바 99%가 각성한다면 사회는 바뀐다.
대한민국은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이 법에 따라 심판을 하고 엄청난 초인으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상식이 통하고 국민을 국가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대통령을 투표로 선택해서 지금까지의 숨가뿐 발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발전을 이어갈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을 하나된 국민의 힘으로 변화 시킴으로써 2.0으로 업그레이드를 마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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