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언론사들은 정체를 밝혀라

초하류 2017. 6. 21. 22:07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이른바 적폐청산인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허겁지겁 성장에만 올인 하느라 발생한 비정상적인 악습들을 정상화 시키자는 것이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부터 지적된 적폐 첫번째는 박근혜를 탄생시킨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수구정치세력과 검찰, 두번째는 대한민국 경제 양극화의 원흉 재벌, 마지막으로 이런 적폐세력과 결탁하여 그들의 프레임을 선전, 선동하는 언론이다.

 

요즘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도가 한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전에 자신들을 지지해 주었던 콘크리트는 촛불시민혁명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들의 정치적 스텐스에 맞는 일부 극우세력이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고 있을뿐이다. 아마 내년 지자체 선거를 출발로 3년후인 총선에서는 지금의 의석수에서 절반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검찰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야심차게 내세운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낙마하면서 잠시 주춤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재벌 개혁은 정책실장에 장하성 교수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김상조 교수를 임명하는 등 그동안 친재벌 정책으로 기울어져 있던 각종 문제점들을 바로잡아 나가려는 노력이 가시화 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바탕으로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의 잘못된 점을 알리는 감시견이 (Watch Dor)이 되어야 한다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했던 워싱턴 포스트지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나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간 JTBC 뉴스룸의 태블릿 보도 등이 감시견 역활을 하는 언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언론이 교과서적인 언론의 역활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언론사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은 컨텐츠를 통해 시청률, 혹은 트레픽으로 구체화되는 인지도를 통한 광고 수주이고 광고를 발주하는 언론사의 고객 대부분은 언론이 감시해야 하는 정부와 재벌들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일부 공영방송이나 매체를 제외하면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되지도 않고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한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자신들이 가진 언론권력을 활용해서 기업과 권력에 유착되기 쉬운 구조다.

 

이전 정부처럼 사정기관을 동원해서 뒤를 캐고 세금조사를 통해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한 정부가 언론을 개혁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언론 개혁은 불가능한가?

 

언론 개혁은 가능하다.

 

누가?

 

언론이 힘을 가지게 만들고 수입의 근간이 되는 광고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바로 우리들이다.

 

언론을 보고 언론을 믿는 수많은 대중 그들이 개, 혹은 돼지라고 부르는 우리가 바로 언론이 가진 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가 언론을 좀 더 덜 보면 된다. 우리가 언론을 덜 믿으면 된다. 한마디로 현재 언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줄여야 하는거다. 그러면 우리가 언론을 덜 보고 덜 믿기 위해서 무작정 언론을 보지 않으면 되는 걸까?

 

우리가 언론을 덜 보고 덜 믿기 위해서 언론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있다.

 

언론사에게 자신의 성향을 확실히 밝히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 유수의 언론사들은 미국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밝히라는 압력을 받는다. 언론사가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를 밝힌다는 것은 전지전능한 심판관의 위치에서 대중의 자리로 내려 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들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 중 하나로 언론의 정보를 받아 들이고 자신이 공감한다면 지지를 보낸다.

 

언론사는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후보를 밝힘으로써 스스로의 논조가 어디로 향해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밝히고 취사 선택을 받는 것이다.

 

더 이상 이쪽도 잘못했고 저쪽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이나 공평한 척 하면서 한쪽을 교묘하게 편들어 주는 따위의 짓으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할 수 없다.

 

정리하자

 

대중은 언론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정당, 경제정책을 밝히기를 요구해야 한다. 언론사는 스스로가 그 정치인, 정당,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를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 경제정책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해 언론사의 존립이 위태로워 질 수도 있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때 언론도 대중 위에 군림하기보다 대중의 뜻을 살피고 대중의 권익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언론사들이 있다. 선두권은 조선일보가 하루 발간하는 신문보다 몇배나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정치팟캐스트들, 광고에 기대지 않고 대중의 지원을 받아 뉴스를 제작하는 각종 대안 매체들이 그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언론에 대해 대중이 바라는 바도 변하고 있으며 아무리 스스로를 지키려 몸부림 처도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