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8

초하류 2018. 3. 14. 16:11

8. 세상은 최고만을 기억한다.


"자기야 오늘은 조이가 육개장 먹고 싶다고 하네 부탁해" 회의 중 드으윽 울린 문자 메시지는 마눌님의 밥셔틀 메시지였습니다.


 


스마트폰 필요 없다던 마눌님은 아이를 가지고 나서 아이패드를 구매했습니다. 이런 저런 궁금한 정보는 많지만 컴퓨터 앞에서 검색을 하기에는 전자파가 걱정이 된다며 아이패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더군요. 그런데 어제 저녁 퇴근하자마자 마눌님 하는 말


 


"자기는 조이가 박찬욱 감독 닮았으면 좋겠어? 아니면 김유정 닮았으면 좋겠어?"


 


유부남들이 언제나 긴장해야 하는 포인트 입니다. 뜬금 없지만 뭔가 의도를 담은 듯한 질문..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즉답을 피하고 질문에 대한 실질적인 요지를 파악 하는 거죠.


 


"글쎄.. 난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조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하면 누굴 닮던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


 


그렇습니다. 일단 가장 스텐다드한 이른바 하나 마나 한 대답을 잽으로 던져 놓고 다음 반응을 살펴 보는 것이 적당하죠


 


"자기야 조이가 병원에서 그 의사 할아버지 말대로 9월 3일날 태어나면 토끼띠에 처녀자리가 되는 거거든"


 


"와 그걸 벌써 다 계산한 거야?"


  


마눌님은 아이패드를 제 눈앞에 들이댔습니다. 아이패드에는 토끼티 처녀자리로 검색된 유명인들이 표시 되어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훌룡한 분이시긴 하지만 너무 힘든 삶을 사셔서 그렇고 박찬욱 감독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나름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감독님이니까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그리고 아역배우 김유정은 너무 예쁘니까 김유정 닮아도 좋을 거 같아 자기 생각은 어때?"


 


"글쎄.. 나야 뭐..."


 


"왜? 어머니는 오늘도 전화 주셔서 어디 가서 알아봤더니 꼭 아들이고 아들이 하나 더 있다고 벌써 부 터 둘째 걱정을 하시던데"


 


네.. 드디어 정답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오늘은 정답이 아주 빨리 정확하게 나온 편이죠.


 


"아 어머닌 또 뭐 그런 전화를 하셨대.. 할마시 정말 쓸데 없는 소리만 한다니까.. 요즘 아들 낳아봤자 뭔 소용이야 키우기도 힘들고 딸이 대세야 대세.. 난 딸이 좋아 절대 절대.."


 


"자기야 혹시 조이가 아들이면 어쩌려고 그래? 다 듣는데 아빠가 그런 이야길 하면 얼마나 서운하겠어.. 참 자기야 지금 프로젝트 하는 데가 여의도라 그랬지? 여의도에 육개장으로 유명한 맛집이 있데.."


 


시어머니를 필요이상으로 강하게 비난함으로써 마음을 누그러트리는 일명 이이재이 다가올 비난을 더 강한 비난으로 막는 제 위기대응 매뉴얼은 정확하게 작동했습니다. 육개장 사오는 것 쯤이야 전혀 문제 될게 없죠


 


"그래? 그럼 내일 사올게..."


"내일 밥셔틀 보낼께.. ㅋㅋ"


"밥셔틀? 그게 뭐야?"


"요즘 애들이 학교에서 서로 먹을꺼 사오라고 시킨다며 사오면 성공 못사오면 실패.. 어때 자기 게임 좋아하잖아.. ^^"


 


그러더니 결국 육개장을 사오라는 퀘스트가 떨어진 거죠. 육개장이 유명한 여의도 맛집은 이미 검색을 해둔 터라 퇴근길에 사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회의는 길어졌고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자리를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파견지에서 10여분을 걸어서 육개장으로 유명하다는 맛집에 도착하자 저를 기다리는 것은 당황스런 팻말이었습니다.


 


"금일 준비된 재료가 떨어져 영업을 종료 합니다!"


 


성적이 20등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을 때, 회식한 다음날 눈을 떴는데 시간은 11시 핸드폰엔 팀장님의 부재중전화가 20통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고향 내려가는 길 잠깐 졸다가 눈을 떠보니 내려야 할 역을 출발하고 있을 때 느꼈던, 뭔가 딛고 있는 지면이 아득히 사라지면서 쑤우욱 빠져드는 것 같은, 귀로 부터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렇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야죠. 그때 본사 앞에 있었던 육개장 집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마눌님도 같이 가서 먹어 보고는 맛있다고 했던 그 육개장 집. 24시간 오픈 되어 있으며 진공포장으로 냄새 안나게 깔끔한 포장을 해주시던 그 집. 물론 여의도에서 역삼역은 멀었지만 제게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발 택시가 있으니까요.


 


육개장을 테이크아웃으로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습니다.


 


"조이야 오늘은 너가 엄마에게 육개장을 먹고 싶다고 했다며? 그래서 아빠가 예전에 엄마가 먹고 맛있다고 했던 아빠 회사앞 육개장 집에 가서 육개장을 사가지고 가고 있단다. 부디 맛나게 먹으렴~~"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확인을 눌렀고 잠시후 제 스마트폰이 우웅 울렸습니다.


 


"육개장 밥셔틀 결과 :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