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흔한 결혼한지 8년만에 아이 가진 이야기 - 10

초하류 2018. 3. 14. 16:12

10. 노산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알았죠 엄마는 나이가 많잖아. 그러니까 엄마 몸을 위해서라도 제왕 절개해야 하는 거고 양수검사도 해야 하는 거야. “


 


“저 그런데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출산할 때 결정해도 되지 않나요? 그리고 양수검사도 다른 친구들 보니까 안 한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답답한 소리 하네.. 나이를 생각해야지 애 낳는 게 뭐 그리 만만해 보여요? 나이가 많아 지면 아이나 엄마한테 문제가 생길 확률이 아주 높아 진다고. 뭐 알아서 해요.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까. 어쨌거나 20주 안에 하지 않으면 못하니까 잘 생각해서 결정하세요”


 


15주가 넘어가자, 아이 심장소리가 들릴 때 가고 싶다며 첫 진료를 늦게 갔을 때도 꼬장 꼬장하게 잔소리를 해대던 의사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근엄한 표정과 고압적인 자세로 양수검사를 권유했습니다. 지표가 되는 목 두께나 머리크기는 다 정상이지만 산모의 나이가 많아서 양수검사는 필수라고 하더군요.


 


동네에서 자연분만율이 높다고 해서 찾아간 병원인데 마눌님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이름만 그랬던 건지 처음부터 제왕절개 해야 한다고 못을 박더니 양수검사에 대해서도 무조건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여간 껄끄럽지가 않았습니다.


 


진찰실을 나오는데 간호사 한 명이 또 따라 붙어서 양수검사에 대해서 설명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양수검사 많이들 하시고요 특별한 문제가 없어요 혹시 모를 아이의 상태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가 정상이 아니면 어떡하나요?”


 


그렇잖아도 의사선생님의 강압적인 모습에 짜증이 나 있던 저는 거듭되는 간호사의 양수검사 설명에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 졌습니다.


 


“그게 당연히 정상이시겠지만 혹시나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미리 마음의 준비도 하셔야 되고"


 


“자기야 나가자~~”


 


간호사를 처다 보는 내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챈 마눌님은 제 손을 잡아 끌고 병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 정말 뭐 이런 병원이 다 있어. 뭐 이렇게 막무가내야.. 의사도 간호사도 정말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드네"


“자기야 그만해~~ 필요하니까 하라고 하겠지~~ 저기 가서 시원한 빙수 한 그릇 사줘~”


 


마눌님이 요즘 들어 답답하다며 자주 사먹는 팥빙수 가게에 들어가서 빙수를 한 그릇 시켰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가게 안은 시원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열이 펄펄 나더군요.


 


마눌님은 푹신한 소파에 앉더니 아이패드를 꺼내서 들어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패드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보내 요즘 새로 시작한 스머프마을 게임을 하는 거 같았습니다. 뭔가 집중할 때 늘 그런 것 처럼 미간은 살짝 찌프려 지고 고개는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인 체로 마눌님은 마을을 돌아 다니는 스머프들을 잡아다 밭을 만들고 다리를 놓고 빵을 굽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게임을 하는 마눌님을 보면서 내가 너무 열을 냈나? 하는 생각에 조금 머쓱해지려고 할 무렵 드으윽 제 스마트폰과 마눌님의 아이패드에 진동이 울렸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보니 사용중인 육아관련 앱에서 푸쉬 메세지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매주 한 통씩 아이가 보내는 형식으로 발달사항을 쪽지로 보내주었는데 15주차 쪽지가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아빠, 조이는 열심히 엄마 양수를 들이마시고 뱉고 하면서 숨쉬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러면서 폐가 발달한대요. 그리고 엄마 배 밖에서 희미한 빛도 감지할 수 있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거! 조이는 이제 엄마가 뭘 먹는지 알 수 있게 됐어요. 엄마가 먹은 음식 맛이 양수에 배여서 나도 엄마가 달고 쓰고 짜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그걸 기억하게 돼요. 나중에 세상에 나가게 되면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나도 기억을 떠올려 막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헤헤. 아빠, 엄마 맛있는 거 많이 먹도록 해주세요.’


 


늘상 오던 쪽지였는데 저는 그냥 시스템에서 보내는 만들어진 메시지라 가볍게 읽곤 했었는데. 앞자리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마눌님이 갑자기 아이패드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그 가린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우리 조이 어떡해 엄마가 나이가 많아서 미안해~~”


 


작년 3월말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고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이처럼 엉엉 울던 마눌님은 딱 1년이 지난 그날 조이를 늦게 가져서 양수검사를 하게 되었다는 미안함에 또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마눌님의 옆자리로 옮겨서 꼭 안아주었습니다. 마눌님은 그날 제 셔츠 오른쪽 어깨가 흥건해 지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우리는 양수검사를 했고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는 2주를 생에 처음 겪어 보는 초조함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