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분의 창작물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만을 그려서는 주목을 받을 수 없죠. 그래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창작물에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판타지적인 요소를 첨가 합니다.
하지만 무작정 판타지적인 요소를 첨가해서는 안돼죠. 자신이 첨가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최소한 그 창작물 안에서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될 수 있게 추가를 합니다.
창작물을 소비하는 대중은 창작물이 리얼하게 현실에 기반을 둘 수록 그리고 그 리얼한 현실을 바탕으로 실제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일들이 극적으로 일어날 수록, 마지막으로 극적으로 일어난 일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극중에서 설명될 수 있는 논리구조를 가질수록 열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 글로리는 대중이 열광할 만한 요소를 골고루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주인공 문동은이 당한 학교폭력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족에게도 버림 받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를 향해 달려 가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문동은은 엄청난 노력과 행운 그리고 적절한 조력자의 등장으로 차근 차근 복수를 준비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문동은이 준비하는 모든 복수의 요건들은 무협지의 기연이사처럼 그냥 덥석 주어지지 않고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즌1에서는 주인공이 학폭에 신체와 정신에 영구적인 피해를 입고 그 피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재능과 성직자에 가까운 절제와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차근 차근 복수를 준비해 나갔습니다.
3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는 시즌2에서는 아마 그렇게 준비한 복수가 가해자들에게 퍼부어지겠죠
이 처절할 복수극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걸까요?
제가 보기에 어쩌면 이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어쩌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문동은처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영구적인 피해를 입은 고등학생이 누구의 도움 없이 공장에 취직하고 힘든 업무에도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고 그 대학을 스스로의 힘으로 마치고 교직원이 되어서도 다른일에 한눈 팔지 않고 돈을 벌고 또 벌어서 복수를 할 대상자를 추적하고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고안한 복수의 방법이 실행 가능하도록 다시 조사하고 또 조사해서 복수에 다가갈 수가 있을까요?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학교폭력은 이만큼이나 잔인할 수 있지만 그 폭력에 대항할 수도 복수할 수도 없다라는 작가의 메세지가 들리는것만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거의 불가능한 그 모든 실낱같은 경우의 수를 뚫고도 쉽지 않은 그 복수? 혹은 징벌이 순조롭지 않다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할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글로리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그 복수나 징벌이 이런 상상속에서라도 구현 되기를 원하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는 이런 징벌이나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한것일까요?
게다가 넷플릭스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1위를 차지할 만큼 전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그 동의가 전 세계적인 뜻일까요?
3월 10일에 공개될 더 글로리의 시즌2가 너무나 기다려지면서도 머뭇거려 지는 것은 제가 너무 비약이 심한 성격이기 때문일겁니다.
3월 10일이 너무나 기다려 지면서도 꺼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