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이라는 긴 휴가를 받아 들고 처는 몇가지 여행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경비와 여행방식에 있어서 의견조율이 잘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이만삼천원짜리 광어회와 쏘주를 앞에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대략적인 상황
나 - 여행을 가는건 좋지만 너무 많은 경비를 쓰는건 부담스럽다. 50만원 정도에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 - 강원도, 부산, 제주도 3가지 계획을 세워봤는데 제주는 50만원에 가기 힘들다. 부산을 갈 수도 있다.
나 - 부산은 바닷가이긴 하지만 대도시스럽고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는 추구하는바가 다르다. 제주도는 좋지만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
처 - 에이 C 그럼 다 때려쳐.. 술이나 마시자..
어떻게 받은 휴가인데 이렇게 그냥 밍숭맹숭하게 보낼수도 없었고 이렇게 보낸들 집에서 마음편히 쉬는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 나는 대타협안을 제시했다.
나 - 숙박비를 최소화 해서 60만원선이라면 제주도로 가는것도 좋다.
처 - 몰라 ..
시간은 이미 일요일로 접어든 토요일 밤 나는 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또는 내 휴가를 더 유쾌하게 보내기 위해 안달복달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30여분만에 Esta 항공의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4월 25일 김포발 10: 50 4월 30일 제주발 18:00
여행 기간은 단지 가장싼 비행기표가 걸쳐진 4박5일로 순식간에 결정되고 이미 소주 두병을 깐 우리 부부는 알딸딸한 가운데 황급하게 여행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은 두벌만 속옷은 4벌 정도 챙기고 최소화 해서 가자~
카메라를 챙기고 노트북을 싸고 간촐하게 짐이 꾸려졌다. 옷가지를 중심으로 내 배낭하나와 카메라 및 렌즈(85mm와 18-55 번들)를 챙기자 내 할일은 끝이 났는데.. 평소 여행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예약하고 확인하고 계획세운 동선에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처는 설레여 하면서도 이 막무가내로 떠나는 여행 일정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다음날 5시에 잠들었다며 나를 깨운 처는 여행의 설렘에 피곤도 잊은듯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드디어 출발~~ ㅋ
잠깐 졸다 보니 어느새 제주 도착. 공항 근처 덤장에서 고등어조림으로 첫끼니를 거하게 때우고(이번 여행은 예산을 타이트하게 운용할 예정이어서 덤장의 고등어조림은 그다지 싼편이 아니었다. T..T) 버스를 이용해서 제주 올레 1코스 출발지로 이동했다. - 그 와중에 새로산 나이키 모자를 잃어 버려서 엄청 슬펐다.. T..T
공항에서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로 두번이나 갈아타고 올레길 출발점 시흥초등학교옆에서 올레길의 시작 팻발을 찾을 수가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휙휙 지나다니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질수도 있었지만 걷기에는 무리가 없는 날씨~~ 고고씽~~~ ^^
1코스 경로(총 15Km)
시흥초등학교 - 말미오름 - 말오름 - 종다리 회관 - 종다리소금밭 - 성산갑문 - 광치기 해변
길을 걷는 것은 즐거웠다. 처도 나도 걷기를 싫어 하지 않는 사람들인 탓도 있지만 주변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다지 피로를 느낄 새도 없었다고나 할까..
낯선 길이었지만 제주올레블루(공식적인 명칭이 아니고 내가 정한 명칭.. ㅋ)로 여기 저기 조그마하게 표시된 화살표가 이끄는데로 느긋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이 여행 방식은 이제껏 내가 경험한 제주를 순식간에 몇십배로 확장시켰다. 단순히 자동차를 타고 휙휙 다니다 눈에 뛰는 해변가에서 잠깐 감탄하고 지나가 버리던 제주에 비해 내 발로 직접 밟으며 보는 제주는 몇십배로 커져있었고 몇십배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오름을 따라가는 길은 날씨와 어우러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멋진 풍경을 시시각각 펼쳐보였다.
올레길은 사유지인 방목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는데 사유지를 선뜻 사람들이 걷도록 허락해준 대인배 땅주인분과 그 땅을 조심 조심 문단속 하며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감을 느낄수 있었다.(처의 강력한 요청으로 전신 모자이크 처리하였음다 ㅋ)
구름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그늘과 햇빛으로 땅에서도 그대로 보이고 저쪽에 구름에 구멍난곳과 이쪽의 그늘은 색깔과 입체감을 극대화 시켜서 마치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조작한 사진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사진은 발로 찍은바 그때의 풍광을 단지 0.000001%정도밖에 전달 할 수 없음을 진짜 엄청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쓰고 온라인으로 다 느껴 버리면 돈 쓴 나는 병진이냐고 생각하는 속좁은 초하류다. ㅋ
오름정상을 지나 호젓한 산길 내리막을 걸어 내려 오자 돌담으로 둘러쳐진 종달리 골목길로 들어섰다.
꼬불 꼬불 말그대로 한적한 시골마을 파란색 화살표가 없었다면 지나가도 되나 가슴이 조일만큼 한적한 마을을 가로지르는 동네길을 지나자 드디어 저쪽에서 넘실 거리기만하던 바다가 눈앞으로 화악 다가왔다.
왼편에 바다를 끼고 한참을 걸어가자 올레꾼의 쉼터가 나타났다. 조그만 컨테이너에서 한치와 준치를 구워서 파는 곳이었는데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궁금한점에 대답까지 해주는 네이버 저리가라 하는 올레길 지식인이셨다.
민박을 알아 보다 실패한 우리는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가파적 심정으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목표를 정하고 온것도 아니고 어디 모텔이라도 자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느긋하기로서니 고파오는 배를 어찌할 수 없는 일 올레 설명에 명성이 자자한 시흥해녀의 집을 들러 조개죽으로 속을 체웠다.
시흥해녀의 집은 리모델링중인지 나무로된 임시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명성에 걸맞게 푸짐하고 저렴한 조개죽이 우리를 흐믓하게 만들었다.
조개죽으로 속을 든든히 체운 우리는 느긋하게 걸으며 해변의 풍광에 감탄 또 감탄 하는 동안 너무나 천천히 걸은 나머지 성산갑문을 지나 성산일출봉에 도착하자 해는 지고 가방에 어깨도 아파오고 날씨도 조금 쌀쌀져 버렸다. 딱히 정해 놓은 숙소가 있는것도 아닌 우리는 광치기 해변으로 가는것은 포기하고 여기저기 민박을 알아 보다 성산일출봉 초입의 작은 모텔에 묵기로 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듯 하였는데 3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처가 커피포트를 빌려 달라고 청하자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넣어서 종이컵과 함께 가져다 주시는 친절을 발휘해 주셨다. 민박은 미어터지는데 모텔은 방이 남았다. 도시들마다 넘처나는 모텔이라는 숙박시설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것 같아 기분이 조금 ..
4캔의 캔맥주를 비운 우리 부부는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제주올레] 올레에 없는 길을 먼저가다 - 둘쨋날 우도편도 기대해 주세요~~ ㅋ
올레 : 제주 사투리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의 거리길로 들고나는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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