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가문의 위기와 평론가들의 평론

초하류 2005. 10. 4. 10:19
조폭 가족의 이야기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가문의 영광과 스토리적으로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건만 어쨌든 속편이라 명명된 이 영화는 평단의 반응과 관객들의 반응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저질 섹스 코메디 영화라는 평단의 싸늘한 반응은 500만이 넘는 관객동원력 앞에서 별 의미가 없어진다. 어차피 평단의 좋은 평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도 아닐바에는 이렇게 확실한 관객 동원력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 없지 않을까

전국의 극장은 이제 점 점 멀티플렉서 일색이 됐다. 단관 상영을 하는 곳은 손에 꼽을 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굳이 어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가는 대신 일단 극장에 가서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고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의 예술적 가치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편안하게 친한 친구들과 팝콘을 씹어 가며 보고는 다음 이벤트에서 공통 화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면 만족한다. 친절한 금자씨를 5번 6번 보면서 각 장면의 의미를 곱씹는 관객과 함께 그냥 소비해 버릴 펄프픽션 류의 편안한 영화를 찾는 사람도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가문의 위기는 적지 않은 관객동원수로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류의 영화가 어렵거나 예술성이 높은 영화보다 만들기 쉬운 것도 아니거니와 1편과 2편이 잘 됐다고 3편을 만들면 흥행 한다는 보장도 없건만 어쨌든 가문의 위기는 전작들의 흥행성적을 바탕으로 3번째 이야기를 준비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 가문의 영광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우르르 비슷한 영화가 쏟아 지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영화계는 이미 무척 성숙한 것 같다. 하지만 가문의 위기에 저질 섹스 코메디 영화 운운 하면서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평론가들은 뭐랄까.. 좀 깝깝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중 예술인 영화에서 관객의 움직임과 반대로 가는 평론은 아무리 잘 봐 주어도 50점 정도가 아닐까? 분명 미흡한 점이 많고 허점도 많지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면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관객동원이 가능했다고 한다면 평론가들은 어째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 대중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칭찬하지 못하는 걸까?

대중은 장동건처럼 깔끔하고 잘생긴 조각 같은 미남에게 열광하지만 엉뚱하고 개구진 MC몽이나 푼수같은 조정린에게도 호감을 느낀다. 그것이 대중이 가진 다양성 아니겠는가 대중 예술을 평론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대중의 다양성을 무시한다면 다양성을 파악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모자란 반 쪽짜리 프로이거나 천박하거나 쌍스러운 느낌이 주는 쾌감을 부정하는 엄숙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돌 댄스 그룹 일색으로 고사 위기 직전의 가요계의 선례에서 보는 것 처럼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저질 싸구려 쎅스 코메디 영화가 아니라 혹시 우리 대중 문화가 다양성을 잃어 버리지는 않았나 살피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