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매미

초하류 2009. 8. 8. 18:30
흙벽들이 따듯해 지기 시작했다. 땅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만큼 따뜻해졌다. 껍질속의 몸도 벌써 근질 근질 한것이 변태할 준비가 끝난것 같다. 드디어 기다리던 일곱번째 여름이 찾아왔다.

이곳으로 들어올때 그랬던 것처럼 이제 혼자 힘으로 이곳을 헤쳐 나가야 할 때가 온것이다. 그동안 작은 흙방에서만 7년을 지냈는데 과연 저 지붕을 뚥고 흙을 헤치고 지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앞발을 모아서 눈을 몇번 쓰다듬고는 지붕을 한번 처다 보았다.

오줌으로 버무려 단단하게 발라놨던 지붕은 어느세 여기 저기 균열이 생겨 있었지만 그렇게 녹녹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앞발을 잔뜩 세워서 흙을 긁어 냈다. 파고 내려 올때는 그저 흙을 파헤쳐서 오줌으로 버무린 후 조금씩 통로를 만들면 됐었지만 이번엔 흙을 헤치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흙벽에 메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힘이 들었다. 흙이 바짝 말라서 긁어 내면 눈을 향해 떨어지는것도 곤역이었지만 파헤치는데는 얼마간 도움이 돼던 바짝 마른 흙이 몸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벌써 세번이나 잡고 있던 흙이 무너져 떨어져 내릴뻔 하는 아찔한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서 흙벽에 메달렸다. 변태 직후의 연약한 몸을 가려줄 새벽녘의 어둠이 끝나기 전에 근처 나무에 메달려서 성체로 무사히 변태를 마칠려면 숨돌릴 틈조차 없었다.

얼마나 남았을까.. 흙사이로 스며드는 공기의 양이 점차로 많아 지는걸 보니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앞발은 조금전에 흙을 긁어 내다가 돌을 잘못 쳐서 쓰리고 아팠지만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다.

커다란 나무의 뿌리를 하나 만나서 조금 둘러 가느라 힘이 들긴 했지만 이제 조금만 더 올라 가면 틀림없이 정확한 시간에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위에 커다란 돌이 나타났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돌은 내 앞발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하지 말자 아까의 나무 뿌리를 피해 간것 처럼 이 돌도 옆으로 피해서 가면 될꺼 같았다. 수직으로 올라가는것 보다는 훨씬 수월했지만 그 돌은 머리위에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초조해 졌다. 이 상태로라면 너무 밝아져서 변태 하고 나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간힘을 쓰며 돌을 따라 앞으로 파나가다 드디어 돌과 돌 사이에 조그만 균열을 발견 했다.

가능할까?

하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좁은 틈을 비집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너무 늦은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조바심이 더해갔다. 돌 위쪽 틈으로 보이는 바깥 세상이 생각보다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등과 배가 여기 저기 날카로운 돌에 긁혔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지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드디어 앞발이 바깥 세상쪽에 걸쳐 졌다. 마지막 안간힘을 내서 몸을 끌어 당겨 올렸다. 드디어 바깥세상이다.

하지만

감격할 틈도 없이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찍"

"어 아이씨 오늘 아침부터 재수없게 이게 뭐야 벌레잖아"

남자는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보도블럭에 발을 한참 비벼서 벌레를 털어 내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여자를 처다 보며 말했다.

"어 여보 방금 어디까지 말했지?"

"매미 여기 아파트 단지엔 나무는 많은데 이상하게 매미가 없다고 그랬잖아"

"아 맞어 진짜 이상하지 않어? 벌써 8월인데 말야. 아마 가로수에 약을 너무 많이 처서 매미가 살지 못하는거 아닐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버스가 왜 이렇게 안와 회사 지각하겠다. 어 버스왔네 자기야 나 먼저 갈께 있다가 퇴근 하고 봐"

"어 나 오늘 회식 있으니까 좀 늦을지도 몰라 전화 할께~"

"알았어 술 너무 많이 마시면 안돼는거 알지"

오늘도 주공 아파트의 여느때와 별 다를것이 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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