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장

이브를 위하여

초하류 2011. 8. 5. 17:43

신령스럽게 타고 있는 불의 가운데가 살짝 이지러졌다. 마치 여호와의 미간이 찌프려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호와는 벌써 30분째 주저리 주저리 불평을 하는 아담을 과연 신적인 인내심으로 꾸욱 참고 들어주고 있었다.

 

"여호와여 저는 이브가 왜 토라져 저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지 도저히 알지 못하겠나이다. 어제 여호와께서 일러주신 대로 이브가 정말 바라는 것을 해주기 위해 갖은 과실과 약초를 먹고 자란 통통한 산비둘기를 사냥해 주었고 낮에 잠시 내린 소나기에 조금 젖은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동굴에 보관해 두었던 부드럽고 푹신한 면화 솜으로 바꿔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 지기는 커녕 점점 얼굴이 어두워 지더니 푹신한 잠자리 대신 딱딱한 바위 위에서 하늘만 처다 보고 있습니다. 정말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내가 어제 너에게 무어라 했느냐?"

 

"이브가 정말 바라는 것을 해주라 하였나이다."

 

"그러면 너는 이브가 정말 바라는 것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느냐?"

 

"저는 제가 바라는 것이 이브가 바라는 것이고 제게 필요한 것이 이브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굳이 이런 저런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먹을 것과 잠자리는 어떤 생명이라도 가장 중요한것 아닐까요?"

 

말을 이어가던 아담은 불꽃이 갑자기 확 커지면서 자신에게 가까워지자 움찔 몸을 움 추리고 고개를 땅에 더 바짝 조아렸다.

 

"내가 너에게 지난번에도 일러주었건만 너는 도대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구나. 이브는 너의 갈비뼈를 취해 만들어졌지만 너와는 많은 부분이 다른 존재이니라. 생명을 품어주고 그 생명을 길러 주어야 하는 어미가 될 이브가 너와 같아서 그 아이가 안전하게 크기가 쉽지 않다는 걸 너는 이해가 가지 않느냐?

 

이브는 말 하지 못하는 너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아이의 표정을 보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섬세한 존재이니라. 그런 섬세함 때문에 이브는 단지 배가 부르고 편안한 생활 이상의 것을 바라게 되어 있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지 않느냐"

 

"하지만 여호와여 제가 사냥을 하고 잠자리를 돌볼 때마다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 하고 모두 물어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브는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은 말로도 할 수 있지만 표정과 몸짓 말투에서 풍기는 뉘앙스 등 수많은 부분들이 한꺼번에 전달되는 것이다. 단순히 필요 없다라는 말 만으로 이브의 대답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둔한 니가 이브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브와 이야기 할때 사나운 맘모스를 사냥할 때 처럼 집중하고 긴장하는 자세가 필요 하느니라."

 

뒤돌아서 가는 아담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아름다운 이브를 처음 만났을 때 기뻐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여호와는 세삼 이브를 창조할 때 아담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섬세하게 창조한 건 아닌지 살짝 불안해졌다. 섬세한 이브의 기분을 맞춰주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담은 너무 무던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고 깜짝이야"

 

아담은 정말 깜짝 놀랐다. 늘 여호와를 만나러 가는 신령한 장소가 아니라 오늘 먹을 음식을 위해 사냥을 가는 길에 갑자기 여호와의 신령한 불덩어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브는 아직도 토라져 있더구나"

 

아담이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기도 전에 신령한 불과 아담 사이에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것을 이브에게 가져다 주도록 하여라"

 

아담이 그것을 들어 보니 거미줄 같이 얇고 반짝 거리는 실을 섬세하게 꼬아서 만들어졌는데 아래쪽은 마치 소의 밥통같이 생겼고 그 위에 길다랗게 끈이 달려서 손에 들거나 어깨에 걸 수 있어 보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것을 이브에게 주면 이브의 기분이 풀릴 것이다."

 

"이건 그냥 뭔가를 담을 수 있게 생긴 거 같은데 맛있는 산비둘기 고기와 포근한 잠자리로도 풀리지 않은 이브의 마음이 이런 걸로 풀릴 수 있을까요?"

 

"아담아. 그것은 단지 뭔가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브의 표상 같은 것이니라. 이브는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고 자루니라. 그 물건은 니가 보기에는 그저 물건을 담는데 소용이 있는 도구일 뿐이지만 생명을 담는 이브의 눈에는 그 자신으로 느껴 지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자신과 일체화 되는 그 물건이 지금 내가 너에게 내려준 것 같이 진귀한 소재와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을 때 이브는 마치 자신 스스로가 아름답고 중요하게 된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느니라"

 

아담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머리를 글적 이며 그 물건을 이리 저리 훑어 보다 말했다.

 

"신이시여 이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담아 창조하는 것은 나의 일이지만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너의 일이라는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이냐? 니가 잘 생각해서 그 물건의 이름을 지어 주도록 하여라"

 

아담은 먹거리를 위해 사냥을 가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에도 잔뜩 토라져서 자신을 처다 보지도 않던 이브가 여호와가 내려준 이 선물로 기분을 풀고 다시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로 돌아 오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사냥을 갈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거 이름을 뭐라고 하나? 그래 bliss at girl. Bag이 좋겠다"

 

아담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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