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인터넷 실명제? 이미 너무 실명제다

초하류 2005. 7. 13. 10:00
인터넷 실명제가 화두에 올랐다.

그동안 온갖 게시판에서 덧글로 찌질거리던 초딩으로 대표되는 매너 우주로 던져 주신 많은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 찌질이를 잡기 위해서 바야흐로 초가 삼간에 불을 붙이려 하기 일보 직전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찌질이들이 설치고 사람들의 불편 소리가 높아지자

찌질 거리는 애들? 그럼 민증 까고 하지 머

라는 단순 무식한 해결법 참으로 지극히 대한민국적이다.

하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자 고등학생들을 모아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의 하는 것 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터넷 실명제가 왜 문제인가 하나 하나 짚어서 살펴 보도록 하자 찌질한 초딩의 키보드 몇번 따닥 거림에 뚜껑 열려서 차분히 생각할 여력이 없는 어이 거기 네티즌 언니 오빠 여러분 잠시만 앉아서 이 글을 한번 살펴 보자

첫번째 인터넷은 이미 실명제다.

인터넷 실명제 하자는 이유가 뭔가? 인터넷에 자기 정체를 숨기고 삽질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거 아닌가. 너무 공해스럽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 찌질이들이 정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어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서 히히덕 거리고 있을까?

우리나라 웬만한 포탈 사이트에 글을 남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의 IP를 남겨야 한다. 남겨진 IP 만으로도 그 사람의 정보 중 많은 부분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IP로 끝나지 않는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크고 작은 홈페이지부터 포털 사이트까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되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정보를 키보드 몇 번으로 손쉽게 얻어 낼 수 있다는 것 정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대부분의 포탈 사이트에서 우리는 이미 실명제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P로 그 사람의 현재 위치를 대강 추적해 낼 수 있고 주민등록번호로 그 사람의 모든 정보를 키보드 몇 번 또닥거려서 빼내 올 수 있다. 이 정도면 실명제를 넘어서 거의 국민감시 수준인 셈이다.

두 번째 인터넷의 찌질이 초딩 박멸에 실명제는 별로 힘이 없다.

버젓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으로 회원가입을 한 우리나라 각종 포탈 사이트의 뉴스 덧글란에 한번 가봐라 더 이상의 개차반이 없을 정도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남발하는 육두문자와 인격모독 그러다 서로의 아이디를 물어 뜯는 아비규환의 현장인 그곳은 버젓히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명제로 인터넷을 정화 하겠다는 시도가 얼마나 웃기는 짜장같은 소린지 금방 깨닫게 해 준다.

자 그렇다면 현재의 아이디 수준이 아니라 실명을 걸고 인터넷을 하게 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진짜 이름을 걸어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면 지금 분위기 보다는 조금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인터넷이라는 해방된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을 송두리째 날려 버려야 한다.

쿨한 성담론을 써 재 낄 수 있는 어느 여성이 자신의 실명을 걸고 서야 글을 적을 수 있다면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유치하기 끝간 데 없이 재미있는 아마추어 만화를 그리고 싶은 점잖은 부장님도 자신의 끼를 펼쳐 보일 수 없을 것이고 현실 사회에서 왜소한 외모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어떤 남자도 인터넷이란 가상의 공간에서 완전히 다르게 제어된 자신의 이미지로 대리만족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타고난 외모나 조건이 아니라 글이란 것으로 표현되는 네트 상에서 자신의 모습은 현실의 물리적인 자신의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고 그 다른 모습을 숨길 수 있을 때 훨씬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수많은 작가들이 필명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겨 온 것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상한 창작의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디저털로 이루어진 넷트상에서 실명만으로 움직인 다는것은 사생활이란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걸 의미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 이 사람이 어느 사이트에서 어떤걸 언제 사고 어떤걸 봤고 어떤 게시물을 쓰고 하는 사소한것 하나 하나까지 모두 첨단 컴퓨터의 우악스런 0과 1의 연산앞에 까발려 지게 된다.

빅브라더도 이런 빅브라더는 없는 셈이다.

넷트는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유리된 어떤 곳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일부분이다. 현실세계에 있는 것과 현실세계에 필요한 것은 그 무엇이 되었건 어떤 사소한 것이 되었건 필요하고 만들어지고 소비 된다.

현실 세계를 한번 돌아 보자

서로가 인사 하려면 자신의 정보가 빼곡히 박힌 명함이란 공식적인 증명을 주고 받아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지극히 공식적인 자리가 있는가 하면 본인 자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임을 증명하는 복잡한 카드와 인증이 없으면 볼일을 볼 수 없는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곳도 있고 몇 달 라면만 먹더라도 명품으로 한 꺼풀 살짝 자신을 포장하고 하루 정도 거들 먹 거릴 수 있는 클럽이나 나이트도 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민원 게시판처럼 글 하나 하나가 신중하게 다루어 지는 곳이라면 현재도 이미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은행은 몇 겹의 비밀번호와 인증카드로 자신을 증명해야 겨우 발을 디딜 수가 있다.

포탈 사이트들에 가입할 때는 자신의 인적 사항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입력 받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크게 주목 받지 않는 일반인 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의 원래 모습을 숨기고 평소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게시판의 저 찌질이들은 어떡하냐고?

길을 걸어 가 봐라 클락션 울리면 당연히 안되는 곳에서 클락션 울리는 놈 파란불인데 마구 지나가는 자동차, 어깨를 부딪히지 않으면 걸어가기 힘든 아침의 지옥철 에서 부터 이 남자 저 여자한테 부비 부비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클럽 몸을 부딪혀 슬램 해도 괜찮은 공연장 등 등 등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내가 보기에 쓰잘대기 없고 짜증만 유발 시키는것 같은 이 모든 곳과 그곳의 룰은 저마다의 존재가치가 있고 실재로도 필요한 것들이다. - 모든곳이 은행 수준의 자기증명을 요구 한다면 사람들은 아마 숨이 막혀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당장 이 글을 읽는 당신 그런곳에서 버텨낼 자신 있으신가-

물론 너무 크게 잘 못하는 사람은 제지를 받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히는 정도는 누구나 넘어 가겠지만 아무나 붙잡고 멱살을 잡으면 그 사람은 당장 제지를 받는다. 파란불인데도 눈치껏 지나가는 자동차는 겨우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집요한 카파라치에 의해서 벌금 몇만원 내고 끝나겠지만 120km로 마구 달려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치게 되면 실형을 선고 받고 남은 인생을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인터넷에도 그저 찌질 거리는 정도는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는 정도로 끝날 수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허위 사실을 유포 시키면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법적으로 처벌 받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는 지극히 통제하기 어려운 성격의 개체들이 모여서 북적거리는 곳에는 언제나 잡음이 생기고 문제가 생긴다. 단순히 통제의 수준을 높이는 것 만으로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찌질이들이 박멸된다는 지극히 단세포적인 발상은 공산권 국가에서 이미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임상실험을 했고 실패로 판명 되었지 않는가

현실 세계가 공자왈 맹자왈 거리는 성현의 말씀대로 깔끔하게 돌아 가지 않는 것 처럼 인터넷도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돌아갈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받아 들일 때 지금의 실명제 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