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외계어와 국어

초하류 2005. 2. 16. 17:03
(1) 글로 말하다.

인터넷 게시판들을 돌아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특이한 글투(?)를 만나게 된다.

OTL이나 ^^ 같은 이모티콘에 하대도 존대도 아닌 어정쩡한 하오체에 ~~삼, ~~다눈 같은 특이한 어미를 붙이기도 하고 발음 나는 데로 타이핑한 글이 보이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가끔 이런 인터넷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글투 들이 우리말과 글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내보내고 있다.

실제로 이력서나 공적인 문서에서 이런 글투 들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도 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특이한 글투 들은 우리말과 글을 오염 시키는 없어 져야 할 나쁜 것 일까?

우선 좋다 나쁘다를 평하기 전에 어째서 사람들이 그런 글투를 사용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글이란 말의 기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글로 적힌 말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과는 차이가 있다.

예전의 글일수록 일상언어인 구어와 글로 적는 문어의 차이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당시에 글을 종이나 옷감 대나무 등에 적었었는데 이들은 모두 많은 글자를 적어 넣기에는 작거나 비싼 물건 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짓이나 전후 사정 등 여러 가지 보조적인 의미전달 수단이 동원되는 구어와는 달리 오직 글로만 전달하고 싶은 것을 묘사 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금방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말과는 달리 스스로의 생각을 조리 있게 담아 비교적 큰 덩어리로 전달해야 하는 글은 간결하고 축약되는 경향이 있어 일상적으로 쓰이는 구어와는 차이를 보이게 된다.

하지만 요즘의 온라인상에서 쓰여지는 글들은 말을 옮겨 적는 도구가 아니라 말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초기의 채팅방에서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상대와 글로 이야기 하는 새로운 문화를 접했고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매체로 옮겨 오면서 글은 말을 옮겨 적는 것이라는 예전의 쓰임새를 벗어 던지고 말을 대신 하여 글로 말한다라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 되었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말하기에는 기존의 글투가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글은 그 쓰임에 맞게 빠른 유행과 변화가 생겼고 이른바 온라인적인 글투를 쓰는 사람들은 국어 파괴의 원흉으로 지목 받기에 이르렀다.

"했다면서요" 정도의 평범한 구어에 "했다면서요 ^^" 나 "했다면서요 T.T" 처럼 끝에 이모티콘을 붙이는 것 만으로도 글 자체가 받아들여 지는 느낌이 180도 달라진다. 억양의 미묘한 차이에 비견하기는 아직 미흡하지만 나름대로의 대안인 셈이다.

그리고 지방이나 또래집단 사이에서 타인과 차별화 되는 소속감을 가지기 위해서 사용되는 각종 은어와 사투리에 대응되는 여러 가지 특이한 표기법과 글투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하오체로 대표되는 DCInside의 글투 인데 DC폐인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들어내고 일체감을 가지는데 하오체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수단이었다.

예전의 글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현재의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각종 글의 변화는 말 그대로 국어 파괴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글의 많은 부분은 글이 아니라 글로 말하는 말인 까닭에 예전과 같은 잣대로 이해하거나 제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글이 말로 대치된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국어의 올바른 사용을 목놓아 외친다 하더라도 말로써 글이 가지는 여러 가지 특징과 현상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