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이 천만관객을 가뿐히 넘으면서 좀비라는 비주류 장르를 메이저로 끌어 올리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가 있다. 좋은 평가에 비해 안타까울 정도의 성적을 받아 들었던 영화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감독이 하정우라는 함정카드를 뽑아 들고 만든 터널이다.
현재 스코어 600만을 돌파했고 아직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터널은 흥행성적도 성적이지만 2시간 짜리 장편상업영화가 되기에는 너무도 단순한 네러티브,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세월호 사태, 그리고 저런 사고가 났으면 진짜 저럴것만 같은 터널 밖의 사태에 비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터널속 묘사 등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요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감상기나 영화평이 많이 보이곤 하는데 나는 기존의 평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이 영화를 한번 살펴 볼까 한다.(왜냐고 묻지마라 잉여력의 폭발에는 이유따위는 없으니까.. 쓸쓸하게 고개를 들며 창밖을 본다~~)
터널은 재난영화다 그리고 한국 영화 시장에서 상징적인 흥행스코어인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중에 이미 재난영화가 두편이 포함되어 있는데 1300만 관객으로 역대 흥행 5위에 랭크된 괴물과 1100만 관객으로 역대 흥행 11위에 랭크된 해운대다.(사실 해운대야 말로 중복 관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천만영화라는 믿거나 말거나한 주장들도 있다.)
터널은 이 두편의 선배 재난영화중 괴물을 치밀하게 벤치마킹했고 거기에 괴물과의 차별을 가지기 위해 괴물을 보면서 관객들이 가졌던 갈증을 체워 주는 구성이라는게 본좌의 주장 되겠다.
그럼 터널은 괴물의 어떤 부분을 벤치마킹 했을까?
첫번째는 바로 바로.. 배두나의 출연.. ..어이 거기 잠깐. 아직 뒤돌아 가기엔 좀 이르지 않은가?
다시.. 이제 부터가 진짜다.. 첫번째는 재난영화의 일반적인 공식을 깨고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재난이 바로 시작된다는데 있다.
괴물은 첫장면에서 누가봐도 사고가 일어 날것만 같은 실험실 장면을 시작으로 대낯의 한강변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재난이 일어난다. 괴물이 등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잡아 먹고 주인공의 딸을 삼킨 후 도망쳐 버린다.
터널은 어떤가? 누가봐도 저 두병의 생수와 케익이 하정우를 위한 감독의 배려일것만 같은 도입부를 거쳐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누구나 자주 통과 하는 터널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이 무너져 버린다.
두번째 공통점 무쓸모인 공권력
괴물에서 송강호는 괴물이 삼켜 버린 딸아이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공권력은 송광호를 믿지 않는다 단순히 믿지않을뿐 아니라 딸을 구출하기 위한 온 가족의 몸부림을 방해하기만 한다.
터널에서도 공권력은 말그대로 무쓸모하다. 현장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인 장관이 구출작업을 좌지우지한다. 수행원들은 사건의 해결 보다는 자신이 모시는 고위관료들의 의전과 사진촬영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세번째 공통점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개인
괴물에서도 딸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송강호를 비롯한 가족들은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괴물과 맞선다. 변희봉은 젊은날 갈고 닦은 총포술, 박해일은 대학시절 던지던 꽃병, 배두나는 현직을 살린 양궁 등등
터널에서도 살아 남는것은 하정우가 알아서 해야할 몫이고 구조에 고군분투하는 오달수는 결국 모두가 포기한 가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들어 하정우를 구출한다.
그렇다고 이 두영화가 공통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점이 다를까?
괴물은 재난 자체가 판타지일뿐(괴물이라는 미지의 생명체에 의한 습격) 나머지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사이 사이에 이런 저런 웃음코드가 섞여 있지만 봉준호의 시선은 냉냉하기만 하다. 이 영화에서 괴물만 빼고 나면 어이 없는 초기 대응이나 매스미디어의 삽질, 합동분향소의 울음바다 등 민망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재난이 일어났을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감독은 결국 어린딸의 생환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터널은 다르다. 괴물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상황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황당한 상황들을 다룬다. 이를테면 설계도면이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자본의 논리로 구조에 대해 적대적 시선을 보낸다거나, 하지만 정작 무너진 터널속은 국산 중형차의 믿을 수 없이 튼튼한 차체라던지 그 극한 상황에서 강아지에게 까지 물을 나눠주는 극단적인 친절함, 그리고 30여일을 식량없이 버텼음에도 너무나 정상적인 하정우의 신체 등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묘사들로 가득하다.
많은 평론가들이나 감상기들에서 터널 내부의 이런 상황을 허술한 네러티브라고 공격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의 현장에서 국민들이나 사고자의 가족들이 느꼈을 힘겨운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기 위해 이런 저런 네러티브의 중대한 구멍을 만들면서 까지도 주인공을 살려내오는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터널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시간짜리 상업영화가 되기엔 네러티브가 단조로울수 밖에 없다.(주인공이 사고로 터널에 갖히고 같은 고생끝에 빠져나와 가족의 품에 안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상황이라는 다큐와 주인공의 무사귀환이라는 판타지, 투트랙으로 구성되었다고도 볼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촘촘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스피디하게 밀어 붙일 수 있는지 증명한바가 있다. 그런 그의 능력에 비추어 보자면 터널의 투트랙 구성은 너무 약하다 오히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붕괴, 대구가스폭발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최근의 세월호사태까지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감독의 배려라고 생각하는것이 훨씬 더 설득력있지 않은가? (아니면 밀고 김밥도 말고 ...)
조금 느닷없지만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와중에도 어쨌거나 인기를 얻는 책들이 있고 많이 팔리는 책이 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나온다는거다.
드래곤라자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같은 소설책, 한때 사회적 현상까지 만들었던 자기개발서 아침형 인간, 지금은 아재나 부장으로 불리는 X세대에게 열광적 지지를 받은 오디션 같은 만화책들이 100만부를 거뜬히 넘게 팔아치웠다. 로마인 이야기,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식객, 묵향같은 책들은 300만부, 장편 소설이면서 스테디셀러인 토지나 지리산도 40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하지만 이 책앞에서는 모두 모두 작아지기만 한다. 바로 수학의 정석
1966년에 발행된 수학의 정석은 지금까지 4000만부 이상이 팔렸고 필자인 홍성대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그런데 만약 홍성대가 수학의 정석과 같은 퀄리티로 그 당시 영어참고서를 썼다면 과연 이만큼의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장수 할 수 있었을까?
영어쪽에서 한가닥 하던 성문종합영어의 판매부수는 약 1000만부 정도로 역시 엄청난 판매부수지만 수학의 정석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학은 특히 수학의 정석이 설명하고 있는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은 변한것이 거의 없다. 행렬부터 무한급수까지 적분이나 미분이 고등학교 과정에서 잠깐 빠진적도 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던거다. 그에 비하면 영어는 문법을 강조하는 단조로운 방식에서 말하기 강조와 듣기의 추가 등 영어를 교육하는 흐름과 함께 교수법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결국 홍성대가 송성문보다 수학을 더 잘 설명해서가 아니라 수학이라는 분야를 잘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터널은 어떤가. 감독은 터널을 제작하면서 굳이 세월호를 염두에 두고 쓴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감독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터널이 세월호와 그렇게 많은 부분 겹친다고는 하지만 앞서 예를 든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때나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등 대규모 참사중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개봉했어도 사람들은 그 사건을 떠올릴수 밖에 없었을꺼다.
수학이 변하지 않은것 처럼 재난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목숨을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할 수 있는 시트 위 숫자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가치관 또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는 어느나라에서도 어느때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고를 대하는 자세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우리는 언제쯤 터널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대응과 너무 동떨어졌다고 느끼게 될까. 우리는 언제쯤 판타지에 기대지 않고도 살수 있는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나라가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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