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용기 감상기

동서울에서 강릉까지 15시간의 긴 버스여행

초하류 2006. 7. 17. 12:09
7월 15일 두달전 집사람이 예약해둔 주문진 근처 팬션으로 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이미 호우주의보가 경보로 바꼈지만 이미 지불한 팬션비와 일부러 토요일 근무에 오프를 낸 집사람의 일정 때문에 가서 비구경만 하더라도 일단 출발 하기로 했다. 2박 3일동안 먹을것을 준비한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하지만 이미 주문진으로 가는 버스는 모두 매진이고 11시 59분 주문진 버스표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요즘 사소한 것들도 모두 카드 결재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4만원돈인 버스표가 카드 결재가 되지 않는 것은 작년에도 격었었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11시 30분 시외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왕 좌왕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없었다. 버스 운전기사분들은 자신의 버스가 몇시에 출발 하는 버스인지 알고 있지 못했고 팔린 표와 타야할 버스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채 따로 놀고 있었다.

버스회사 직원인듯한 분과 기사분들이 잠시 모여서 웅성 거리더니 주문진행 11시 59분표 끊으신 분들은 타라며 승강장에 정차한 버스 뒤쪽에 어정쩡하게 주차된 버스를 가르켰다. 기사분은 자신도 자다가 전화 받고 나왔다며 정해전 좌석은 없고 임시차니까 아무대나 앉으라고만 이야기했다. 하긴 우리가 끊은 표의 좌석은 38, 37이었는데 그 버스는 30석도 안돼는 우등버스였으니까. 그렇게라도 가나 앉았지만 잠시후 갑자기 버스회사 직원인듯한 남자분이 뛰어와서 기사분에게 걷은 표를 건너 받고는 같이 뭐라고 하더니 주문진으로 가는 분들은 내리란다.

그리고 이미 승객들로 가득한 버스로 우리를 대리고 갔다. 버스는 드문드문 자리가 비어 있었고 집사람이 두사람 자리가 없다며 항의를 하자 일어 나기 싫어 하는 여자분을 일으켜 세워서 자리를 만들어 주고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짜증이 밀려 오면서 대중교통 이용은 역시나 고난의 연속이고 역시 차를 사야 한다는 느낌이 마구 밀려 왔다.

이미 승차권에 표시된 시간인 11시 59분이 지난 12시 4분에서야 버스는 출발 할 수 있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매끄럽지 않은 시작은 그날 겪을 고난의 예고편이자 복선이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휴계소에 정차하고 집사람은 화장실을 갔다왔다. 버스기사분은 출발하기 전 다리가 하나 끊어져서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다며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들거란 말을 남기고 버스를 출발 시켰다. 3시 30분 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눈을 떴을때 차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위성티비에서는 영동고속도로 몇곳에 토사가 유출되 지나가던 버스를 덥쳤고 승객의 안전은 확인 되지 않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영동고속도로가 통제 되고 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시간은 5시를 넘고 있었다. 집사람의 핸드폰으로 예약한 팬션에서 만약 오시기 힘들면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전액 환불해 드린다는 전화가 왔지만 상황을 봐서 다시 전화 드리겠노라고 전화를 끊었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트고 차들을 우회 시키고 있을 무렵 버스기사분은 다시 내려갔다 오더니 길이 막혔고 조금 더 올라가서 버스를 돌릴 것인지 아닌지 정하겠다고 하면서 다시 버스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핸드폰까지 불통되어 사람들의 불안은 커저만 가고 잠시 달리던 버스는 이내 멈췄고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은 이미 흘러 흘러 7시를 넘어 서고 있었다. 모자를 쓴 어린 친구가 내려가더니 사람들을 주목 시켰다.

지금 앞쪽은 도로가 끊어져서 가지 못하고 다른 차들은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고 강릉으로 갈 사람을 나눠서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중에 강릉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 왔다.

불안에 떨던 사람들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다수와 강릉에 가야 한다는 몇몇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버스기사분이 올라 오자 사람들은 서울로 돌아가 줄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한명이라도 반대하면 서울로 갈 수 없고 강릉으로 가기로한 버스이기 때문에 서울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위험한데 왜 궂이 강릉으로 가야 하냐며 항의했지만 본사의 지시 없이는 버스를 돌리는것은 불가능 하다는 말만 남기고 버스 기사는 다시 버스에서 내렸다. MBC SBS의 카메라가 여기 저기 버스를 비추고 있었고 차들을 돌리라는 경찰들의 방송이 시작 되었다.

한 아가씨는 답답한 마음에 버스에서 내려 경찰에게 하소연 했지만 '버스를 돌리고 말고는 버스회사의 방침이라 어쩔수가 없고 승객들이 버스회사에 소송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듣고 올라왔다. 잠시후 버스기사분이 다시 올라 왔고 2시간을 기다리면 도로가 뚫릴수 있다며 기다렸다가 출발 하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방송에서도 이미 도로가 통제 되고 있고 도로공사에서 밖에서 계속 차를 돌려서 가라는 방송을 하고 있는데 2시간 후에 도로가 개통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따졌지만 9시에 출발한 자기 회사 버스도 앞에 있고 그중에 대표로 한명이 앞에 갔다 왔다며 저 방송 하는 사람들은 앞에 가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버스기사와 언성을 높이던 여자승객은 답답한 마음에 울음이 비집고 나왔고 그때 SBS로 보이는 방송 카메라가 다짜고짜 버스로 올라와서 라이트를 비추며 카메라를 비췄다. 여자승객은 카메라를 꺼줄것은 요구했지만 완전히 무시하고 촬영을 계속 하려고 하자 나를 비롯한 승객들의 거센 항의에 카메라는 버스를 내려갔다. 그전까지 방송에라도 호소해 보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뒤 설명도 없이 불쑥 카메라를 들이 대고 찍지 말아 줄것을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차별 적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방송국의 행태에 사람들은 혀를 내 둘렀다. 남자 승객 한명이 서울로 가는 차를 잡아 타겠다며 차에서 내려 버렸다.

잠시후 4~5명의 여자승객들도 차를 잡아 타고 가겠다며 버스에서 내렸고 버스기사는 버스를 돌려 태백을 거쳐 강릉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고속도로에서 내려 국도를 이용해 버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12시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좁은 국도를 가끔 100k를 넘는 속도로(G300PDA에 작착된 GPS를 이용하여 측정한 속도) 위험하게 달리던 버스는 가던 길을 돌아 나오기도 하고 태백쪽 도로 상태도 좋지 않다며 정선쪽으로 우회 하여 결국 강릉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 12시 4분에 출발하여 장장 15시간 이상을 좁은 버스에서 시달린 우리 부부는 강릉역으로 이동 4시 10분 첫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왔다.

호우경보가 내린 상황에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한 우리 부부도 잘못은 있지만 허술하고 막무가네인 시스템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 버스표 구매에 카드 결재가 불가
  • 배차된 차와 관계없는 버스표
  • 도로가 유실되고 토사가 버스를 덥친다는 뉴스가 나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승객의 안전보다 스케쥴이 중요한지 버스를 돌리지 않는 버스회사
  • 사람들의 동의없이 마구 잡이로 카메라를 들이 대는 방송국
  • 도로 교통국의 발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운전기사
  • 발표한 도로 상황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없이 발표만 하는 도로 교통당국(그렇게 위험 하면 강제로 차를 돌리게 해야 정상 아닌가?)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에 대해 얼마나 무기력 혹은 무관심 한가를 뼈저리게 느낀 기나긴 버스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