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다

국가는 교육에 대한 독과점을 포기하라

초하류 2005. 5. 7. 16:10
이소룡하면 쿵후 쿵후 하면 이소룡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쿵후 이게 뭘까? 工夫 흔히 우리가 공부라고 읽고 Study라고 세기는 중국어의 영어식 음역이다.

공부라는것의 원래 의미는 어떤것이든 능숙하게 되는것이다. 노래를 잘하는것도 공부를 잘한 것이고 못을 잘 밖는것도 공부를 잘한 것이고 공을 잘차고 공을 잘 받는것도 공부를 잘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부란 극히 지엽적인 것이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 하는것 그것도 국가에서 지정한 교과서에 한한 것일 정도니까 원래 공부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 지엽적인 의미로 바껴져 버렸다.

그 공부라는것의 근간을 이루는 현제의 공교육은 전 국민으로부터 전혀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학교에서는 쉬고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것으로 인식할 정도다.

즉 학교가 학교로서의 역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쟁력이 없어진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학교는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의 중심에 서있을수 있을까

그것은 국가가 교육이라는 거대한 페러다임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제 교육의 잘못된점을 고치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 대안학교라는 말그대로의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국가에서는 그 대안학교들을 교육기관으로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를 졸업하더라고 고등학교 졸업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쳐야 한다.

학교는 촌지와 왕따 학원폭력 등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로 변모해 가고 있지만 그 대안을 제시하는 시도들에 대해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것이다.

세상은 점차 다변화 되고 예측하기 힘든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서울대에 연고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사가 되기만 하면 변호사가 되기만 하면 모든게 만사 OK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며 미래에는 더욱 아닐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다변화해 가는데 국가는 전 국민을 같은 조건과 같은 잣대로 잘라내서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인 밋밋한 공산품을 만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조금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대안교육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평가기준을 가지고 인정해 나가고 성공적인 모델이 발견되면 공교육 전체에 적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능으로 한번에 평가하던것을 고등학교 중간 기말로 나눠서 평가한다는 얄팍한 조삼모사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