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출산 이중국적 그리고 국적포기 요즘 우리나라의 최대 이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민감할수 없는 국방의 의무를 중심으로 이중국적을 이용한 각종 혜택을 받아 왔던 사람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법을 상정한 홍준표의원에게 국민들이 열광하는 까닭은 그런 혜택이 이른바 상류층에서 대부분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무시되고 폄하되고 있는 국방의 의무와 자신의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서 국방의 의무를 요리 조리 빠져 나가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볼수 밖에 없던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집중되고 있는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과다
하지만 만약 이중국적이나 국적포기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미묘한 사태를 잠시 밀어 놓고 볼수만 있다면 국적포기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민족과 국가가 동일시 되던 고대로 부터 근대 까지와 현재의 상황은 전혀 틀리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여행이 자유롭고 네트웍과 미디어의 발전으로 국가 사이에 존재했던 이질감과 문화적 차이는 점 점 줄어 들고 있다.
100년전 우리나라 서울에 살던 사람 한명을 유럽 어느 나라에 떨어 뜨려 놓으면 받을 문화적 충격과 적응하는데 드는 노력이 100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음식과 언어 그리고 사고방식 생활양식등 모든 면에 있어서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는다고 하더라고 50 이하일것이다. 100년전 부산에서 살던 사람이 서울로 이사 오는 정도의 문화적 층격정도와 오늘날 국가를 옮기는대 드는 충격이 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빠르게 진행중인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화적 동질화는 결국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많은 부분 희석시켜 버렸다.
이렇게 되면 결국 미래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주요한 차이는 국민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추이로 본다면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물건을 살 쇼핑몰을 고르거나 자신이 다닐 학원을 고르는것 처럼 국가들이 제공하는 교육 그리고 복지정책 그리고 국민이 부담해야할 세금과 의무를 비교해서 자신의 국가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국가를 이루는 기본적인 근간이 국민의 숫자이고 점차 인구 증가율이 둔화 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지속된다면 결국 국가간의 인구이동은 가까운 미래에 자칫하면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이 적어서 파산하는 국가가 나오지 않으리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대국민 서비스는 과연 어느정도 일까 30, 40대의 이민이 줄을 잇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의 모습은 낙관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점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를 자신의 의지로 택할 것이며 좋은 서비스를 가진 나라는 수준 높은 국민들을 선택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것이고 이런 현상은 국가의 힘이 빠르게 편중되는 경향을 보일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이 예언한 21세기의 모습에 현재 개발도상국인 국가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것이 일반적이다.
좋은 국가에는 저절로 높은 수준의 국민이 그렇지 않은 국가에는 저절로 낮은 수준의 국민이 모이고 그들이 하는 노동의 질과 댓가는 현격한 차이가 생길 것이고 그 차이는 점점더 커져 가기만 할것이라는것이 미래학자들의 암울한 21세기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지는 브렌드파워를 높이기 위해서 지금부터 노력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외침에도 면면히 이어져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외침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외면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민감할수 없는 국방의 의무를 중심으로 이중국적을 이용한 각종 혜택을 받아 왔던 사람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법을 상정한 홍준표의원에게 국민들이 열광하는 까닭은 그런 혜택이 이른바 상류층에서 대부분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무시되고 폄하되고 있는 국방의 의무와 자신의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서 국방의 의무를 요리 조리 빠져 나가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볼수 밖에 없던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집중되고 있는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과다
하지만 만약 이중국적이나 국적포기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미묘한 사태를 잠시 밀어 놓고 볼수만 있다면 국적포기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민족과 국가가 동일시 되던 고대로 부터 근대 까지와 현재의 상황은 전혀 틀리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여행이 자유롭고 네트웍과 미디어의 발전으로 국가 사이에 존재했던 이질감과 문화적 차이는 점 점 줄어 들고 있다.
100년전 우리나라 서울에 살던 사람 한명을 유럽 어느 나라에 떨어 뜨려 놓으면 받을 문화적 충격과 적응하는데 드는 노력이 100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음식과 언어 그리고 사고방식 생활양식등 모든 면에 있어서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는다고 하더라고 50 이하일것이다. 100년전 부산에서 살던 사람이 서울로 이사 오는 정도의 문화적 층격정도와 오늘날 국가를 옮기는대 드는 충격이 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빠르게 진행중인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화적 동질화는 결국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많은 부분 희석시켜 버렸다.
이렇게 되면 결국 미래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주요한 차이는 국민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추이로 본다면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물건을 살 쇼핑몰을 고르거나 자신이 다닐 학원을 고르는것 처럼 국가들이 제공하는 교육 그리고 복지정책 그리고 국민이 부담해야할 세금과 의무를 비교해서 자신의 국가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국가를 이루는 기본적인 근간이 국민의 숫자이고 점차 인구 증가율이 둔화 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지속된다면 결국 국가간의 인구이동은 가까운 미래에 자칫하면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이 적어서 파산하는 국가가 나오지 않으리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대국민 서비스는 과연 어느정도 일까 30, 40대의 이민이 줄을 잇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의 모습은 낙관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점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를 자신의 의지로 택할 것이며 좋은 서비스를 가진 나라는 수준 높은 국민들을 선택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것이고 이런 현상은 국가의 힘이 빠르게 편중되는 경향을 보일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이 예언한 21세기의 모습에 현재 개발도상국인 국가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것이 일반적이다.
좋은 국가에는 저절로 높은 수준의 국민이 그렇지 않은 국가에는 저절로 낮은 수준의 국민이 모이고 그들이 하는 노동의 질과 댓가는 현격한 차이가 생길 것이고 그 차이는 점점더 커져 가기만 할것이라는것이 미래학자들의 암울한 21세기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지는 브렌드파워를 높이기 위해서 지금부터 노력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외침에도 면면히 이어져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외침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외면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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